열 손가락으로 미사 드리는 이곳, 누구든 오세요

김한수 종교전문기자
입력 2019.08.19 03:00

[박민서 신부]
아시아 최초의 청각장애 사제가 8년간 150곳 성당에서 후원받아 청각장애인 신자 위한 성당 완공

서울 마장동의 한 건물 벽면엔 예수가 꿇어앉은 사람의 귀를 어루만지면서 하늘을 우러러보는 부조(浮彫)가 커다랗게 붙어 있다. 성경은 이 장면을 이렇게 전한다. '사람들이 청각장애인을 데려오자 예수님은 손가락을 그의 귀에 넣었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댔다. 그러곤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쉬고 말했다. "에파타"(열려라). 그러자 그의 귀가 열리고 묶인 혀가 풀려서 말을 제대로 하게 되었다.'(마르코복음)

청각장애인을 위한 에파타성당 주임 박민서 신부가 수어(手語)로 '사랑합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박 신부 뒤에 보이는 부조는 예수가 청각장애인을 고쳐주는 장면. 박 신부는 이 벽면에 요한복음 6장 내용을 붓글씨로 써서 새겼다. /고운호 기자
이 그림이 새겨진 곳은 천주교 서울대교구 최초의 청각장애인 성당인 '에파타성당'. 서울가톨릭농아선교회의 60년 소원이었던 에파타성당이 2년여 공사를 마치고 오는 25일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 주례로 축성식을 갖는다.

현재 농아선교회에 등록된 신자는 500여명. 그동안 서울 수유동 툿찡 포교 베네딕도 수녀회 건물을 빌려 미사를 드려왔다. 그러나 전용 시설이 아닌 데다 150명 정도밖에 수용할 수 없었다. 천주교 미사는 전례(典禮)에 따라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해야 하지만 청각장애 신자들은 앉아서만 미사를 드려야 했다. 앞사람이 일어서면 뒷사람이 수어(手語)를 볼 수 없었기 때문. 이 때문에 신자들은 전용 성당 신축을 간절히 기도했다. 신축이 본격화된 것은 아시아 최초의 청각장애 사제인 박민서(51) 신부가 직접 발로 뛰면서 가능했다. 박 신부는 2011년부터 서울대교구는 물론 지방과 해외의 한인 성당 150여곳을 찾아가 수어로 호소했다. 4만명이 후원금을 보탰다. 그 결과 지하 2층·지상 6층 연면적 2405㎡(약 727평) 규모로 대성전과 소성전, 언어청각치료실 등을 갖춘 새집을 지은 것.

어느 자리에서도 신부와 수어가 잘 보이도록 계단식으로 설계된 에파타 성당 내부 모습. /고운호 기자
지난 16일 오전 찾은 성당은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었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성당인 만큼 안팎의 세심한 장치가 눈에 띄었다. 대성전은 중간에 기둥이 없다. 바닥은 입구가 높고 제대(祭臺) 쪽이 낮은 계단식이었다. 이젠 사각지대 없이 350명이 어느 자리에서나 일어서도 제대의 신부와 수어가 잘 보이도록 한 것. 제대 뒤 벽엔 가로 3m, 세로 1.8m짜리 대형 LED 전광판도 달았다. 외벽뿐 아니라 성당 내부에도 곳곳에 시각디자인 장치가 장식돼 있다. '에파타' 그림을 비롯해 고해소 앞엔 기도하는 사람과 양팔을 벌린 예수님이 그려졌고, 대성전 출입문은 '하느님의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상징해 집 모양 부조가 새겨졌다. 박 신부는 "청각장애인은 글보다는 그림으로 내용을 더 쉽게 이해한다"고 했다. 화장실은 물론 고해소까지 모든 공간은 휠체어가 드나들 수 있다. 지방에서 올라와 미사를 드리거나 상담하는 청각장애인 신자를 위해 8명이 동시에 묵을 수 있는 게스트룸도 마련했다.

지하 다목적실은 인근 주민들에게도 개방할 계획이다. 성당은 울타리와 문이 없다. 박 신부는 "처음 주민들을 설득할 때 '언제든 주민들이 쓸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며 "약속을 지키기 위해 주민을 위한 열린 공간으로 운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청각장애 신자들이 이 성당을 많이 찾아 하느님을 깊게 만나고 힘을 얻어서 다른 신자들과 믿음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며 "특히 일반 신자들과 함께할 수 있는 소통의 장소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또 서울대교구 사제 중 수어를 할 수 있는 20여명 신부와 함께 신자들의 신앙생활을 돕고 싶다고 했다.박 신부는 "모든 게 부족한 제가 이렇게 꿈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도와주신 분들의 은혜"라며 "항상 감사 기도 드리고 있다. '고인 물'이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조선일보 A20면
말모이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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