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판사 개XX'에 침묵한 법원

박국희 사회부 기자
입력 2019.08.17 03:14
박국희 사회부 기자

법원을 담당하는 기자는 법정에서 휴대전화를 보다 법정 경위에게 쫓겨난 적이 있다. 재판부가 법정에서 방청객들이 휴대전화를 보지 못하도록 한 것이었다. 법정 경위는 "휴대전화를 볼 거면 법정 밖에 나가서 보라"고 했다. 통화를 한 것도 아니고, 재판을 녹음한 것도 아니라 억울했지만 법정에서는 판사의 말이 곧 법이라는 생각에 두말없이 따랐다.

재판 운영은 판사의 재량 사항이다. 법정 질서 유지 차원에서 판사들은 법에 근거해 재량껏 재판을 진행한다. 재판 도중 방청석에서 휴대전화가 울리면 "누구냐. 퇴정시켜라"고 명령하는 판사들은 요즘도 드물지 않다. 법정 경위들은 재판 내내 두 눈을 부릅뜨고 방청객을 감시한다. "재판 내용을 녹음하면 감치(監置)될 수 있다"는 경고도 빼먹지 않는다.

법정 안에서만 그러는 것도 아니다. 지난달 보석 석방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불구속 상태로는 처음으로 재판을 받으러 법원에 왔다. 재판이 끝나자 법원 측 관계자들은 기자는 물론 일반인들에게도 법정 출입구 앞에서 서성거리지 말라고 했다. 양 전 대법원장이 법원 밖에 대기하던 승용차를 타기까지 걸어가야 하는 동선에 있던 모든 민원인에게도 "비키라"고 했다. 과도한 제한으로 느껴졌지만 법원 측은 "안전사고를 대비한 것"이라고 했다.

지난 14일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의 세월호 보고 조작 재판 때 법원 모습은 180도 달랐다. 재판부는 이날 선착순으로 방청권을 배부했다. 뒤늦게 도착한 세월호 유족들은 "왜 법정에 들여보내 주지 않느냐"고 항의했다. 중요한 재판을 직접 방청 못하는 유족 사정은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이미 법원 측 안내에 따라 선착순으로 방청권을 배부받은 일반 방청객들로 법정은 꽉 찬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유족들은 법정 밖에서 여성 재판장을 향해 "판사 개XX" "X 같은 X 나와" 같은 욕설을 퍼부었다. 판결문을 낭독하던 재판장 귀에도 이러한 욕설은 똑똑히 들렸다. 재판은 수차례 중단됐다. 법정 경위들과 법원 보안관리대 수십명이 진을 쳤다. 하지만 누구도 유족들을 제지하지 않았다. 욕설은 재판이 진행되는 한 시간 내내 이어졌다.

욕설만 듣다 재판 방청을 끝낸 일반 방청객들은 "법원 직원들이 해도 해도 너무한다. 어떻게 이런 식으로 재판을 진행하느냐"고 했다. "세월호 유족이라는 이유로 법원이 한마디 못하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 과연 일반 사건 관계인이 판사 면전에서 '개XX'라는 욕설을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전화벨이 울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방청객을 쫓아내던 법원은 어디 갔나. 법원의 권위를 법원 스스로가 무너뜨리고 있다.



조선일보 A26면
3일의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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