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억 들인 테마驛 전시관엔 묵은 먼지 가득

이해인 기자 임진희 인턴기자(서울대 정치외교학부 4년)
입력 2019.08.14 03:00 수정 2019.08.14 09:54

100억 투입한 서울지하철 테마驛舍 9곳 중 상당수가 부실 운영
산업기술 체험관 장비 고장나고, 지하 예술정원은 대나무 시들어

서울지하철 2호선 성수역 1·4번 출구로 이어지는 통로에는 '전시관'이 있다. 서울시가 성수동 수제화 거리를 알리겠다며 세금 7억원을 들여 설치한 '구두 장인공방 전시관'이다. 13일 오후 들여다본 전시관에는 먼지를 뒤집어쓴 공구가 널브러져 있었다. 전시품을 비춰야 할 형광등은 깨진 채 매달려 있었다. 이날 이곳을 지나던 시민 김인성(69)씨는 "외벽에 먼지가 시꺼멓게 덮여 있어 안에 전시품이 있는지도 몰랐다"며 "형광등 교체는 조금만 신경 써도 바로 할 수 있을 텐데 전혀 관리가 안 돼 아쉽다"고 말했다. 시민 김정애(61)씨도 "이곳을 지날 때마다 인상을 찌푸리게 된다"며 "차라리 철거해버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시꺼먼 먼지 - 13일 서울 지하철 2호선 성수역 대합실 ‘구두 장인공방’ 전시장의 방충망을 닦아낸 화장지에 오래 쌓인 먼지가 새까맣게 묻어나오고 있다. 전시장 내부 전시품도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다. /남강호 기자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가 서울 지하철역에 조성한 '테마 역사(驛舍)' 중 상당수가 관리 소홀과 홍보 부족으로 시민의 외면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는 지난 2014년 성수역을 시작으로 지난달까지 총 100억원을 들여 9곳에 테마역을 조성했다. 오래된 역사를 특색 있는 주제로 꾸며 시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하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수년간 사후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거액의 예산을 낭비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시는 지난해 7월 예산 7억원을 들여 지하철 1·7호선 가산디지털단지역에 G밸리 '산업관광 테마역'을 만들었다. 드론, 가상현실, 로봇 등 4차 산업 기술을 체험해보는 공간이다. 지난 8일 찾아가보니 인근 중소기업과 기술을 소개하는 태블릿PC 9대 중 4대가 고장 나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시가 지하철 5호선 장한평역에 2억5000만원을 들여 조성한 '새활용 테마역'은 인근 새활용플라자 행사를 소개하는 게시판이 텅 빈 채 방치돼 있었다. 장안동 주민 김모(29)씨는 "매일같이 이곳을 지나다니지만 딱히 의미 있는 전시나 정보를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6호선 상월곡역 과학 테마역에는 찾는 시민이 매우 드물다. 이 역에는 서울시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등이 사업비 6억원을 들여 과학 강연장과 첨단 제품 체험 공간을 만들었다. 그러나 지난해 1년간 이곳을 방문한 방문객은 총 3164명에 그쳤다. 올해 상반기에는 1283명이 방문했다. 하루 평균 약 8명이 찾은 것이다. 13일 이곳을 지나던 시민 명모(27)씨는 "일주일에 한두 번씩 오가는데도 이곳이 과학 테마역이라는 것은 처음 알았다"고 말했다. 전시관 관리를 맡은 직원은 "전시관에 1명도 방문하지 않는 날도 많다"며 "홍보가 제대로 되지 않은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누렇게 변한 대나무 - 13일 오후 서울 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 지하 4층 예술정원의 대나무가 노랗게 말라있다. 이곳은 햇볕이 잘 들지 않고 환기가 잘 되지 않는다. /장련성 기자
일부 역사는 계획 단계부터 콘텐츠 선정이 부적합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는 지난 2월 6호선 녹사평역에 약 24억원을 들여 '지하 예술정원'을 마련했다. 공개 당시부터 지하 역사가 정원을 조성하기에는 적당하지 않다는 의견이 나왔다. 13일 오후 녹사평역에 가보니 노랗게 말라버린 대나무가 버티고 있었다. 인근에 심어진 조릿대도 줄기가 앙상했다. 시는 이곳에 몬스테라, 보스턴고사리 등 약 650주(株)의 나무와 식물을 심었다. 그러나 이 중 대나무 50주, 조릿대 60주가 말라 죽어 뽑아냈다. 전체의 약 17%다. 남아 있는 대나무와 조릿대마저 정상적인 성장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태다. 관리를 맡은 시민정원사 정춘미씨는 "지하 4층 깊이다 보니 환기가 잘 되지 않고 햇볕이 안 들어 식물이 자라기에 어려운 환경"이라며 "장마가 끝난 후 추가로 20주 정도의 대나무가 죽어버려서 잘 키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 관계자는 "나머지 식물은 잘 자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테마역 조성은 서울시가 했지만 관리는 자치구가 하다 보니 문제가 생겼다"며 "앞으로 관리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했다.


조선일보 A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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