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난 마음에 반창고를 붙여준 아이들

송혜진 기자
입력 2019.08.14 03:00

윤가은 감독… 청룡영화상 신인감독상 수상
아이들 통해 어른을 위로하는 새 작품 '우리집'으로 돌아와

그의 영화를 보고 나면 마음에 반창고를 붙인 기분이 든다. 2016년 영화 '우리들'로 그해 청룡영화상 신인감독상을 받은 윤가은(37·사진) 감독 얘기다.

'우리들'은 초등학교 여자아이들이 친구를 사귀고 또 갈등하는 과정을 세밀하게 담은 작품. 아이들 얘기지만 어른들 세상과 다를 게 없어 새롭고, 이들에게 어른들이 거꾸로 위로를 얻기에 놀랍다. 독립영화로선 드물게 5만명 넘는 관객이 찾았고, 당시 평단은 "아이들 얼굴을 통해 놀라운 풍경을 그리는 감독이 나왔다"고 열광했다. 오는 22일 개봉하는 윤가은 감독의 새 영화 '우리집' 역시 말갛고 풋풋한 아이들을 그린다. 14일 만난 윤 감독은 "어린 시절 유독 소심했고 마음을 표현할 줄 몰라 상처도 많이 받았다. 이런 개인적인 기억이 자꾸만 아이들이 주인공인 영화를 만들게 하는 것 같다"고 했다. "아이들 마음엔 아직 딱지가 없잖아요. 그만큼 연약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또 용감해요. 어른처럼 문제를 복잡하게 풀지 않고 힘들어도 일단 부딪치죠. 그 건강하고 정직한 정면 돌파의 힘에 매혹됐다고 해도 좋겠죠."

'우리집'엔 각자 다른 고민을 품은 아이들이 나온다. 열두 살 하나(김나연)는 엄마, 아빠가 싸워서 괴롭고 불안하고, 열 살 유미(김시아)는 이사 다니는 데 지쳤다. 어른들이 함부로 뱉은 말과 서툰 행동에 아이들은 끙끙대지만 그럼에도 계속 이를 돌파할 나름의 방법을 찾는다. 식구들과 함께 밥이 먹고 싶은 하나는 매일 반찬을 만들며 요리 일기를 쓰고, 유미는 재활용 상자에 색종이를 붙이고 그림을 그린다. 이렇게 영화에 등장하는 음식과 그림, 만들기는 아역 배우인 김나연·김시아·주예림이 모두 직접 만들고 그린 것. 윤 감독은 "어른들이 대신 그려준 듯한 작품이 영화에 나오는 게 싫었다. 아이들의 진짜 터치가 담기길 원했다"고 했다.

사는 게 쉽지 않은 건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걱정도 고민도 많은 하나(왼쪽)와 유미(가운데), 유진(오른쪽)은 그럼에도 서로 위로하고 놀고 대화하면서 나름의 해결책을 찾으려 애쓴다. “우리 집은 내가 지킬래”라면서. /롯데엔터테인먼트

캐스팅에만 3개월 넘게 걸렸다.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 아역 배우들과 1대1 심층면접을 했고, 그룹 오디션에선 역할 놀이를 펼치며 상황에 제일 잘 녹아드는 어린이 배우를 찾았다. 아역 배우들의 실제 말투와 감정도 상당 부분 시나리오에 반영됐다. 윤 감독은 "'이건 좀 오글거려요' '저라면 이렇게 말 안 할 것 같아요' 같은 아이들의 말을 들으며 대본을 고쳐 나갔다"고 했다.

영화 속 여름 풍경도 싱그럽다. 서울 옥인동·정릉의 다닥다닥 붙은 집과 좁은 골목, 높다란 계단과 빨래가 널린 옥상을 뭉갠 파스텔처럼 아릿하게 찍어냈다. 윤 감독은 "생동하는 에너지가 넘치면서도 한국적인 풍경을 그리고 싶었다"고 했다. 이전 작품 '우리들'에 나왔던 배우 최수인·설혜인도 깜짝 등장한다. 윤 감독은 "그때 그렇게 힘들었던 아이들이 훌쩍 큰 모습을 슬쩍 끼워넣고 싶었다"고 했다. "결국 이런 말을 하고 싶었어요. 그땐 그렇게 힘들었지만 다 괜찮아진다고요. 그렇게 우리는 또다시 자란다고요."


조선일보 A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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