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철의 아웃룩] 청년들에게 달아놓는 국민연금 외상값

입력 2019.08.14 03:13

받는 건 선진국과 비슷한데, '내는 돈은 절반'이 문제 핵심
단일案 안 낸 정부 책임 가장 커… 경총, '현행 유지' 말고 대안 내야

김민철 선임기자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 내놓은 '한눈에 보는 연금' 통계〈그래픽〉를 보면 우리나라 국민연금의 특이한 점을 '한눈에' 찾을 수 있다. 노후에 받을 연금 규모인 소득대체율(소득 대비 연금액 비율)은 약 40%로 다른 나라와 비슷하다. OECD 평균도 40.6%다. 그런데 소득에서 얼마를 보험료로 내느냐의 비율인 보험료율은 9%로 주요 선진국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독일(18.7%), 일본(17.8%)은 우리의 두 배 수준이고, 핀란드는 3배에 가까운 25.2%다.

우리는 합계출산율 1명 이하인 극심한 저출산 국가이고, 고령사회로 가는 속도도 빨라 어느 나라보다 국민연금 개혁이 시급하다. 그런데 우리보다 사정이 나은 선진국들도 속속 고령사회에 맞게 내는 돈과 받을 돈을 조정했는데, 우리만 제대로 조정하지 못한 결과가 OECD 통계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다른 나라보다 보험료는 절반을 내고 받는 돈은 비슷한 것이 우리 국민연금이 처한 딜레마의 핵심이다.

◇21년째 그대로인 보험료율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연금특위는 작년 10월부터 국민연금 제도 개선안을 만들기 위해 논의하고 있지만 전망은 밝지 않다. 경영계와 노동계의 이견 차가 크기 때문이다. 여기에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있어서 이번 정기국회에서 국민연금 개선안을 처리하는 것은 물 건너간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작지 않다.

노동계는 대체로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12%로 올리면서 소득대체율을 45%로 인상하는 안(정부가 마련한 국민연금 개선안 중 3안)을 선호하고 있다. 반면 경영계는 "현재 경제 형편상 보험료율을 올리는 것은 기업들이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에 현행 제도를 유지하거나, 굳이 올리려면 퇴직금 일부를 국민연금 보험료로 전환하자"는 입장이다.

올해 연금제도를 손보지 못하면 5년을 더 기다려야 할지 모른다. 국민연금법 제4조는 5년마다 국민연금 재정수지를 계산하고 운영 계획을 다시 짜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번에 손대지 않으면 2023년 5차 재정추계 때로 연금 개혁을 미룰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국민연금 내는 돈과 받는 돈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김성규

국민연금 고갈 위험을 막으려면 현행 9%인 보험료율을 두 배인 18% 정도로 높여야 한다는 것이 국민연금재정추계위원회 등 여러 전문가의 분석이다. 하지만 한번에 18%로 올리는 것은 무리이므로 지속적으로 보험료율을 높여나갈 필요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국민연금 보험료율은 무려 21년째 9%에 묶여 있다. 1998년 6%에서 9%로 올린 이후 국민 반발을 우려해 손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사이 무려 다섯 정권이 들어섰다. 정권 때마다 보험료율을 1% 정도씩만 올렸어도 지금 개선 논의가 훨씬 수월했을텐데, 다음 정권으로 미루기를 반복하다 보니 지금과 같은 상황에 처한 것이다.

정부가 내놓은 4가지 개선안 중 현재 가장 유력하다는 3안(소득대체율 45%, 보험료율 12%로 인상)을 채택하더라도 고갈 시기를 6년 늦추는 데 불과할 뿐이다. 연금특위에서 김용하 순천향대 교수가 3안에다 회사가 퇴직금으로 적립하는 소득의 8.3% 중 3%포인트를 떼어내 국민연금 보험료로 사용하자는 안을 제안한 것도 고갈 시기를 늦추려는 여러 고육책 중 하나다.

◇5년 더 기다려야 하나?

이번에도 국민연금 제도를 손대지 못하면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인상한 지 26년째인 2023년에나 다시 시도할 수 있을지 모른다. 국민연금 제도 개선 논의가 이처럼 지지부진한 것은 정부 책임이 가장 크다. 우선 보건복지부 안 자체가 내나 마나 한 안이었다. 단일안을 내지 않고 사지선다형 안을 냈고, 우선순위도 정하지 않았고, 그나마 첫째 안은 현행 제도를 유지하자는 것이니 말 다 했다. 이 정부가 지지층이 조금이라도 싫어할 만한 일은 절대 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사례였다.

연금특위에서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도 좀 더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 지금처럼 '현행 유지'만 주장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 근무제 등으로 경영계가 어려운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노동계도 소득대체율 45%를 전제로 보험료율 3% 인상에 동의하는데, 사용자단체가 그대로 두자는 얘기만 하는 것은 곤란이다. 오죽하면 노동계가 그동안 반대해온 '퇴직금 전환제'라도 검토해보게 구체적인 안을 제출해달라고 경총에 요구했겠는가.

일부 젊은 층이 국민연금 제도 개선에 반대하거나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다. 젊은 층이야말로 국민연금 개혁이 빠를수록 유리하기 때문이다. 김용하 교수는 "세대별로 인구 수가 다르기 때문에 지금 보험료율 1% 올리는 것과 10년 후, 20년 후 1% 올리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했다. 예를 들어 1971년생은 100만명이 넘지만 요즘은 30만명대가 태어나 같은 1%를 내도 3배 차이가 나기 때문에 인구가 많은 세대가 남아 있을 때 올려야 기금 고갈을 늦출 수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젊은 층이 나서 보험료율 인상을 요구해야 나중에 제대로 받을 가능성도 높아지고 부담도 덜 수 있다는 얘기다.

국민연금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려면 이번 기회에 보험료율 인상 등 근본적인 처방을 마련해야 한다. 국민연금 제도를 현행대로 유지하고 지금처럼 저출산·고령화가 지속될 경우 2088년 미래 세대는 소득의 37.7%를 보험료로 내야 한다는 것이 재정 추계 결과다. 이게 가능하겠는가. 지금 무엇을 해야 할지 뻔히 보이는데 처리를 미루는 것은 미래 세대에 큰 죄를 짓는 일이다.


조선일보 A29면
3일의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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