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에서] 교양과목의 쓸모

곽아람 문화부 차장
입력 2019.08.14 03:14
곽아람 문화부 차장

장류진 소설 '일의 기쁨과 슬픔'에서 판교(板橋)는 청춘들의 열정을 착취하는 스타트업 밀집지로 그려진다. 신기술 산업이 집결한 테크노밸리 혹은 신도시 건설 덕에 집값 들썩이는 곳. 대부분의 사람이 갖고 있는 판교의 이미지다.

며칠 전 저녁 자리에선 좀 다른 판교 이야기를 했다. 출판인들을 만났더니 기술이나 집값보다는 '판교'라는 지명이 왜 우리나라뿐 아니라 중국이나 일본에도 흔한지를 궁금해했다. "'널빤지를 걸쳐 놓은 다리'라는 뜻이니 곳곳에 있는 것 아니겠냐"고 누군가 말했다. 경기도 판교도 운중천 널빤지 다리 부근을 '너더리(널다리) 마을'이라 부른 데서 유래했다니까. 갑자기 떠오르는 게 있어 끼어들었다. "중국 옛글에서는 관용적으로 '판교'를 '친구 만나는 곳'으로 쓰기도 한다잖아요." 사람들이 재미있어하며 어디서 들었냐고 물었다. "대학 1학년 때 교양 한문 시간에 배웠어요."

집으로 돌아온 뒤 아무래도 미심쩍어 책장을 뒤졌다. 먼지 쌓인 교양 한문 교재를 들춰 '板橋: 친구를 보내는 곳'이라고 필기한 것을 찾아냈다. 기록은 기억보다 강하다고 했던가. '만나는 곳'이 아니라 '보내는 곳'이었구나. 저녁 자리의 이들에게 문자를 보내 실수를 정정하고 나니 '판교'가 친구를 보내는 곳이 된 전고(典故)가 궁금해졌다. 결국 20년 전 교양 한문을 가르쳤던 강사의 연락처를 수소문해 이메일을 보냈다.

주말인데도 답장은 한 시간 만에 왔다. 그는 "'판교'라는 단어는 당나라 시인 온정균(溫庭筠)의 시구 '鷄聲茅店月/ 人迹板橋霜(새벽닭은 초가 주막 달빛 아래 울고/ 먼저 간 이는 서리 내린 판교에 발자국 남겨놓았네)'이 절창으로 여겨져 유명해졌을 것"이라며 "이 시에서 딱히 판교가 이별의 장소로 쓰인 것은 아니나 이후 그림에는 널다리, 즉 판교에서 친구를 보내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고 설명해 주었다.

머릿속에 어슴푸레 남아 있던 '교양으로서의 판교'가 그렇게 20년 만에 비로소 명징해졌다. '교양(culture)'이란 원래 경작(耕作)을 뜻하는 것이니, 수년 전 뿌린 씨앗의 결실을 이제야 거두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교양서로 유명한 일본 출판사 이와나미 쇼텐의 로고는 밀레의 '씨 뿌리는 사람'인데, 창립자 이와나미 시게오가 스스로를 '씨 뿌리는 사람'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 수업 덕에 '판교'라는 단어를 접할 때마다 '친구'에 대해 생각했다. 삭막한 신도시이기보다 만남과 이별 사이에 있는 애틋함의 장소라 여겼다. 인문 교양의 힘이란 남과 같은 것을 보면서도 뻔하지 않은 또 다른 세계를 품을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는 것 아닐까. 개강을 앞둔 대학가가 강사법 시행으로 뒤숭숭하다. 많은 수업이 통폐합되지만 당장의 쓸모에서 후순위로 밀리는 교양과목 폐강이 특히 심각하다 한다. 씨 뿌리는 이 사라지니, 앞으로 무엇을 거둘 것인가.



조선일보 A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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