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戰後 일본은 도금한 민주주의… 아베 정권서 벗겨지는 것"

이한수 기자
입력 2019.08.13 03:00

서경식&다카하시 데쓰야… 20년간 日 사회 분석한 두 교수
전쟁·식민지 지배·위안부 문제 등 일본의 책임에 대한 대담집 펴내

"전후(戰後) 일본의 민주주의와 평화주의는 본성을 가리고 있던 도금(鍍金) 같은 것이었다. 아베 정권에서 도금이 벗겨지고 본성이 드러난 것이다."

서경식(68) 도쿄게이자이대 교수와 다카하시 데쓰야(63) 도쿄대 교수는 전후 일본에 대해 겉모습만 민주주의라는 뜻으로 "도금 민주주의"라고 비판했다. 재일교포 2세 학자인 서경식 교수와 프랑스철학 전공 인문학자인 다카하시 교수는 1990년대 중반부터 20여년간 일본 사회의 문제를 진단하고 비판하는 대화를 이어왔다. 지난 2000년 첫 대담집 '단절의 세기, 증언의 시대'를 낸 데 이어 작년 8월 일본의 전쟁 책임과 식민지 지배 책임을 토론한 대담집 '책임에 대하여'를 냈다. 최근 한국어판(돌베개) 출간을 맞아 방한한 두 교수는 12일 서울 광화문 대한출판문화협회에서 간담회를 열었다.

(사진 왼쪽)서경식 교수는 “일본은 과거 청산이 없었다. 한·일 갈등은 일본이 과거를 제대로 극복하지 않는 한 해결될 수 없다”고 했다. (사진 오른쪽)다카하시 교수는 “아베 정권은 반민주적 정권인데도 일본 사회는 이를 바꾸려는 힘이 약하다”고 했다. /이진한 기자

서 교수는 "일본이 동아시아에서 가장 앞선 민주주의 체제라는 평가는 잘못"이라고 했다. 민주적 헌법은 3·1운동으로 군주제를 폐지한 한국이 앞섰으며, 일본은 패전 후에도 천황제를 버리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일본의 민주화는 미국을 비롯한 연합국이 강요한 것으로 일본인 스스로 이룬 성과가 아니었다"면서 "아베 총리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가 A급 전범인 것에서 보이듯 일본 지배층이 제국주의 사상을 이어받아 지금도 정치를 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은 민주화한 나라라 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다카하시 교수도 "동감"을 나타냈다. 다카하시 교수는 "민주주의는 제도적 측면과 운동적 측면을 구별해야 한다. 일본은 패전 이후 국민 주권을 인정하고 (전쟁을 금지한) 평화주의 헌법이 나타나 제도적 측면으로는 성과가 있었지만, 운동적 측면으로는 스스로의 힘으로 민주주의를 이룬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면서 "일본은 아베 정권 같은 반민주적 정권에 대항하는 운동이 약하고, 정권을 바꿀 수 있는 힘도 약하다"고 했다.

두 교수는 책에서 "위안부 문제와 전쟁 및 식민지 책임을 묻는 피해국 사람들의 목소리에 대해 1990년대 후반부터 일본 사회에서 '역사 수정주의'라 할 반동이 보수 세력과 미디어 중심으로 전개됐다"고 진단했다. 다카하시 교수는 "지난 20년간 일본 안에서 강경 우파 세력이 강해졌다. 아베 정권 주요 인물들의 견해를 미디어가 무비판적으로 국민에게 전달하고 있다"면서 "미디어 종사자들도 아베 정권에 장악되어 있거나 정권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일본 국민 다수는 일본이 근대 시기에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 알고 있으면서도 이를 부정하고 외면하려고 한다"면서 "이런 자기 정당화의 심성이 100년 이상에 걸쳐 형성되어 온 것이 문제"라고 했다.

한·일 관계는 앞으로도 해결하기 어려운 단계가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서 교수는 "한국은 식민지 지배에 대해 문제 삼고, 일본은 이를 거절하는 흐름이 계속될 것이지만 그렇다고 과거 같은 관계를 회복하는 것만이 좋은 일은 아니다"라면서 "일본 국민이 위안부 문제나 식민지 지배 문제를 제대로 알고 과거를 청산하는 자세로 나와야 두 나라의 협력 관계가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다카하시 교수는 "아베 정권은 1965년 한·일 협정 당시로 후퇴해 있다"면서 "당시 협정에서 해결하지 못했던 위안부나 징용 문제 등에 근본적 문제점이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A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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