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동맹을 월세 취급 트럼프, 對美 외교 '김정은' 말고 뭐 있었나

입력 2019.08.13 03:20

트럼프 미 대통령이 9일 대선 자금 모금 행사에서 어린 시절 아버지와 임대료를 수금하러 다녔던 일화를 소개하며 "(뉴욕) 브루클린 임대 아파트에서 114.13달러를 받는 것보다 한국에서 (방위비) 10억달러를 받는 게 더 쉬웠다"고 했다. 한국민이 다른 사람도 아닌 미국 대통령에게서 이런 모욕을 당한 적은 없었다. 사람들은 이를 트럼프의 협상술이라고 한다. 그러나 한국이 침략을 당했을 때 트럼프가 어떤 행동을 할지 생각해야 한다.

지난 70년 가까이 한반도 평화가 유지돼 온 것은 북이 남침해 올 경우 대규모 추가 증원 전력이 한반도로 달려올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유사시 미군 69만명, 5개 항모(航母) 전단, 160척 함정, 2500대 항공기가 증원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작권 논란이 일었던 노무현 정부 당시 천용택 전 국방장관은 증원 병력의 금전적 가치를 1300조원이라고 추산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괌의 공군기지에서 (한반도로 날아오는 데) 7시간이나 걸리고 수억달러가 든다"고 했다. 실제로는 20억~30억원에 불과한 비용을 이처럼 부풀리면서 "한·미 연합훈련에는 엄청난 돈이 들기 때문에 반대한다"고 했다. 전폭기 한 대 띄우는 비용마저 주판알을 굴리는 트럼프가 과연 대한민국의 안위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수천조원 가치의 증원 병력을 보낼지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실제 한·미 상호방위조약에는 "'어느 쪽이 무력 공격의 위협을 받을 때 '적절한 조치'를 취한다"고만 돼 있을 뿐이며 증원 병력 관련 내용은 한·미 연합군의 작전 계획이나 미군 자체 시나리오에만 담겨 있다. 그때그때 미 대통령과 의회의 결단에 달려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미국의 '핵우산' 약속도 마찬가지다. "한국이 북핵 공격을 받으면 미국이 핵으로 보복한다"는 내용의 합의문은 없다. 한·미 정상회담이나 안보협의회(SCM) 때 나오는 "확장 억지력을 제공한다"는 말이 '핵우산'을 의미할 뿐이다. 트럼프는 한·미 연습뿐 아니라 주한 미군 자체를 부정적으로 본다. 지난해 '한·미 훈련 중단'을 일방적으로 결정한 싱가포르에서 "주한 미군을 철수시키고 싶다"는 뜻의 발언도 세 차례나 연속으로 했다.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이런 트럼프 대통령의 언행을 김정은이 누구보다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는 점이다. 자신이 남한을 겨냥한 도발을 해도 트럼프 대통령은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이 서면 김정은은 모험의 수위를 높여보고 싶은 유혹을 느끼게 된다. 그게 인간의 심리일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천박한 '럭비공'이다. 그런데 이 사람이 한국과 일본에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 일본도 트럼프로부터 '돈 내라'는 압박을 받고 있지만 우리와 차원이 다르다. 일본은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미국의 지지도 일찌감치 받아놓았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우리의 대미 외교는 김정은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소개하고 그를 미화하고 값어치를 높여준 것 외에 무엇이 있었나. 그런데 지금 북한은 사실상 문 대통령을 겨냥해 '바보'나 '개'라고 조롱한다. '김정은'뿐인 정부의 대미 외교가 우리를 동북아의 '호구'로 만든 것 아닌가.



조선일보 A31면
도시재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