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反日 티셔츠와 문 대통령의 얼굴

마이클 브린 前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한국, 한국인' 저자
입력 2019.08.12 03:17

反日 시위대가 나눠준 티셔츠에 문 대통령 얼굴과 태극기 새겨져
對日 강경 대응 대통령 얽힐수록 결과 나빴을 때 비판 혹독할 것

마이클 브린 前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한국, 한국인' 저자

며칠 전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데모를 준비하던 시위대가 'NO 아베'라고 적고 'O' 자에 일장기처럼 빨간색을 칠한 티셔츠를 나눠줬다. 등판에는 문재인 대통령 얼굴 사진과 태극기가 들어가 있었다. 나는 이 티셔츠에 놀랐다. 국가 그 자체와 국가의 상징은 시민 개개인의 정체성, 충성심, 애정을 담는 신성하고 신비로운 그릇으로 추앙받는다. 하지만 대통령 개개인은 우리 인생에 일시적인 영향을 미칠 뿐이다. 물론 대통령은 5년 임기 중엔 사회적으로 우리의 상급자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 세금으로 월급을 주는 공복이다.

임기 첫해와 둘째 해에 그는 국민의 사랑을 받는다. 하지만 그 뒤 여러 가지 일이 빠르게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다. 임기 3년째가 되면 성인 국민 대부분이 자기가 대통령보다 더 잘할 수 있다고 여긴다. 끝에 가면, 역시 우리 세금으로 월급 받는 특별검사가 대통령의 명성을 망가뜨리고 정치적으로 재기할 엄두를 못 내게 할 거라는 걸 안다. 그리고 우리는 다음 희생자에게 관심을 돌린다. 민주적으로 선출된 그 어떤 대통령도 이제껏 이 운명을 비켜가지 못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지금처럼 반일 데모를 문 대통령과 결부시키는 건 위험한 행동 아닐까. 만약 사태가 나빠지면, 우리는 우리가 한때 찬동했다는 걸 까맣게 잊고 문 대통령을 비난할 거라는 걸 그들은 모르는 걸까. 문 대통령 얼굴과 태극기를 나란히 찍은 반일 데모 티셔츠를 보며 나는 한 전임 대통령을 생각했다.

독자들은 아마 김영삼 전 대통령이 1992년 대선에 승리한 뒤 자신이 민주적으로 뽑힌 첫 대통령이라고 내세웠던 걸 기억할 것이다. 청와대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돼서 그는 당시 경복궁 앞에 있던 국립박물관을 해체하라고 명령했다. 그 건물은 국립박물관이 되기 앞서 38년간 한국 정부청사였고, 그 전 19년간은 일본 총독부였다. 1995년 광복절에 그 건물은 해체됐다. 벽돌 하나, 철근 하나까지 사라졌다. 1945년 광복을 맞은 뒤, 그리고 6·25 때 서울을 수복하고 한국인들이 태극기를 게양했던 역사적인 국기게양대마저 파괴됐다.

김영삼 대통령은 국립박물관이 일제 잔재라고 주장했다. 그건 사실이다. 누가 그 말에 반론을 펴겠는가. 하지만 내게 대통령의 목적은 좀 더 개인적이고 정치적인 것처럼 비쳤다. 그는 자신이 민주적으로 뽑힌 첫 대통령일 뿐 아니라, 역대 정부는 한 번도 그 건물을 파괴하지 않았다는 점을 암시하며 자신이야말로 최초의 애국적인 대통령이라고 내세우고 싶어 하는 듯했다. 하지만 현실에서 일제 식민통치는 그보다 수십년 전에 이미 끝났고 양국은 국교를 다시 맺었다. 김영삼 대통령은 건물을 부쉈다기보다 역사를 부쉈다.

이와 비슷하게, 나는 문 대통령 지지자들이 문 대통령 전임자들은 부도덕했고, 문 대통령이야말로 진정으로 깨끗한 첫 번째 민주적인 대통령이라고 묘사하고 싶어 할 뿐 아니라, 나아가 이제는 문 대통령을 '수퍼 애국자'로 보고 싶어 한다고 느낀다. 아베 총리가 한국을 향해 수출 규제를 발효하면서 한국이 알면서도 혹은 모르고서 유엔 대북 제재를 어겼기 때문이라고 말했을 때, 문 대통령 내면의 독립투사가 반격에 나섰다. 그는 아베가 일본 기업에 강제징용 배상을 명한 한국 대법원 판결을 뒤엎으라고 압박하고 있다면서 우리 국민이 그에 맞서는 투쟁에 참여하도록 독려했다. '독립운동은 못 했어도 불매운동은 한다'는 게 시위대의 슬로건이다.

내가 두려워하는 건 우리 국민이 곧 여기에 피로를 느낄 거라는 점이다. 물론 역사는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가 가장 마음 쓰는 건 우리 인생이다. 김영삼 대통령의 5년 임기가 IMF 외환 위기로 눈물 속에 끝났듯, 안 그래도 경제가 어려울 때 일본과 무역 전쟁이 점점 심해지면 한국 경제가 큰 타격을 입게 될까 걱정스럽다.

차이가 있다면, 김영삼 대통령이 비록 1997년 나라를 거의 거덜냈다고 욕먹었지만 사실 그건 김영삼 정부 잘못은 아니었다는 데 있다. 거시적인 이슈와 해묵은 재벌 부채가 문제였다. 하지만 앞으로 닥칠 수 있는 경제난은 문 대통령의 정책과 훨씬 밀접하게 얽혀 있다고 애널리스트들은 분석할 것이다. 그가 대일 대응에 가까이 얽혀들면 얽혀들수록, 결과가 나빴을 때 혹독하게 비판당할 공산이 크다. 그러니 시위대 티셔츠에서 문 대통령 얼굴을 떼라는 게 나의 개인적인 충언이다.



조선일보 A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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