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주식회사'에 눈뜬 2030, 경제권 밀당도 심해진다

김아사 기자
입력 2019.08.10 03:00

[아무튼, 주말]
결혼 재테크 시대… 설문조사 해보니

일러스트= 안병현
한동안 비혼과 결혼 사이를 오갔던 이지영씨는 최근 결혼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재산을 늘리는 데 결혼 제도가 유리할 수밖에 없어요. 혼자 힘만으로는 서울에 아파트 한 채 장만하기 힘들잖아요. 대출 등 제도도 부부에게 유리하고요."

이씨는 결혼을 일종의 '가정주식회사'를 차리는 일로 본다. 재테크가 결혼하는 수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결혼이 재테크를 위한 수단이 됐다는 이야기다. 한때 결혼을 피해 비용을 줄이자는 '비혼 재테크'가 유행했다면 장기적으로 늘어나는 소득을 고려한 '결혼 재테크'가 다시 주목받는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결혼 재테크는 빈말이 아니다. 2016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펴낸 '생애 주기별 소득, 재산 통합 분석 및 함의' 보고서에 따르면 2003년부터 2011년까지 독신 가구와 청년 부부 가구의 소득을 비교 분석한 결과, 독신 가구는 상대 소득과 재산이 줄었지만 결혼한 가구는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산과 부채의 차이를 나타내는 순재산은 3.5배까지 벌어졌다.

부모 세대에선 혀 차는 소리가 들린다. 사랑과 낭만이 채울 자리를 돈이라는 가치가 대신한다는 비판이다. 조건 보고 사람을 만나는 그런 결혼이 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현실주의를 물신주의로 깎아내리지 말아 달라는 게 '가정주식회사' 설립자들의 항변. "좋은 사람 찾는 기준에 재테크가 추가된 것뿐이에요. 거기에 사랑이 없어야 할 이유가 있나요."

결혼이라는 밀약

가정주식회사의 시작은 '부부 경제권' 논의. 수입과 지출 파악은 향후 예산 책정과 집행의 기초다. 최근 부부들은 연애할 때부터 부부 경제권을 이야기한다. '누가 경제권을 갖느냐'부터 '어떻게' 그리고 '왜'란 질문이 모두 포함되는 협상 테이블이 차려진다. 결과물인 경제권에는 이들이 생각하는 결혼관이 담겨 있다. '아무튼, 주말'은 SM C&C 설문 조사 플랫폼 '틸리언 프로(Tillion Pro)'를 이용해 20~60대 남녀에게 물었다. 기혼 2919명, 미혼 2106명 총 5025명이 설문에 응답했다.

'결혼의 이유 중 재테크 수단으로서 비중이 더 커졌느냐'는 질문에 응답자 절반가량인 44%가 '예'라고 답했다. 결혼 적령기인 30대 남성이 60%로 최고. 2030이 4060보다, 미혼(38%)보다 기혼(52%)의 동의 비율이 더 높았다. 실제 현실로서 결혼을 마주하거나 마주하려는 이들이 재테크로서 결혼을 바라보는 인식이 더 강하다는 뜻이다.

'누가 경제권을 가져야 하나'란 질문에 미혼 남녀 67%가 각자 관리할 것이라고 답했다. 아내(26%), 남편(7%)이란 답보다 배 이상 많은 수치. 경제권을 합치는 이유로는 '재테크 효율(50%)'이라고 답한 응답자가 절반이었다.

가정주식회사 설립자들은 재테크를 외치면서도 만능 열쇠로 신봉하지는 않는다. 좋은 재테크와 나쁜 재태크를 구분한다. 은행원 권모씨 부부는 결혼 4년 만에 1차 목표였던 내 집 마련에 성공했다. 꽤 안정적인 수입이 있지만 여전히 돈 문제로 다툰다. 처가에 주는 생활비가 말썽이다. 남편 처지에선 처남이 취직할 때까지만이라더니, 취업한 지 3년이 지났는데도 바뀌는 상황이 없는 게 불만이다. 아내로선 부모님 드리는 돈 몇 푼으로 생색 내는 남편이 밉다.

응답자들은 경제권을 합치지 않는 이유로 '각자 삶의 방식 추구(59%)'란 답을 꼽았다. 권씨 부부는 자산 증식 이외 다른 청사진을 갖고 있지 않았다. 가정주식회사를 지속하려면 삶의 지향과 목적이 담긴 경제권 논의가 전제돼야 한다는 뜻이다.

권력 관계로 이어져선 안 돼

'경제권을 쥔다'는 말 속엔 여러 역할이 포함돼 있다. 적절한 예산을 마련하고, 집행 시 발언권을 갖고, 수입과 지출 등 회계 내용도 살필 수 있다. 규모만 다를 뿐 기획재정부 관리와 비슷하다. 응답자들은 경제권의 합침 또는 배분 시 중요하게 고려하는 요소로 '경제 관념(65%)', '수입(23%)'을 꼽았다. 이유 불문 힘이 한쪽에 편중된다면 부작용이 생긴다.

10년 차 주부인 김명화씨는 아파트 모임에 갈 때마다 괴롭다. 남편의 상여금, 보너스와 관련한 이야기가 화제에 오르는데 일찌감치 경제권을 넘겨주고 나 몰라라 살았던 그는 말을 잊은 듯 앉아있기 일쑤. 결혼 초 돈과 관련한 일을 무작정 넘겨 버린 게 화근이었다. '우리가 얼마나 벌고 쓰는 것이냐'고 물을 때면 '쓸데없는 이야기 꺼낸다'는 핀잔을 받는다. 생활비와 용돈을 받아 쓰는 형편이니 뭐라도 사려면 그렇게 눈치가 보인다.

실제 기혼자 중엔 경제권을 한쪽이 가진 경우가 많다. 기혼자 절반인 51%가 아내가 경제권을 갖고 있다고 답했다. '남편'은 32%, '각자'라는 대답은 17%였다. 말 그대로 멋모르고 경제 공동체가 됐다. 기혼자들은 경제권을 합친 이유로 '부부로서 당연한 절차(57%)'라고 답했다. 재테크란 말 한번 못 들어보고 결혼한 사람도 많다.

편중된 경제권은 이혼 사유가 되기도 한다. 한 20대 직업군인은 200만원가량의 월급을 아내에게 주는 등 경제권을 넘겼다. 그런데 자신이 매달 받는 돈은 10만원 안팎 용돈뿐이었다. 모자라는 용돈을 벌기 위해 주말이면 건설 현장에서 일하다 건강에 이상이 생기기도 했다. 이후 남편이 이혼 소송을 제기했는데, 2015년 서울고법은 "아내가 경제권을 전적으로 행사하며 남편에게 인색하게 굴었다"는 것을 지적하며 이혼을 받아들였다.

부부 관계도 리모델링 필요

경제권이 권력 관계를 불러온다고 하지만 불변은 아니다. 나이가 들수록 이 관계는 변하는데, 전문가들은 변화에 적응하는 것도 삶의 기술이라고 이야기한다. 부부 관계 리모델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남자는 힘이 빠진다. 남편은 주로 밖에서 생활하고 자녀에 대한 영향력도 상대적으로 적다. 경제권까지 내줬다면 속도가 가팔라진다. 대체로 50대에 이르게 되면 아내 주도형, 아내가 주도하는 부부 협력형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남편 처지에선 과자 하나 사는 데도 아내 눈치가 보일 때가 있다. 마트 매대 앞에서 이렇게 저렇게 설명했는데 분위기가 영 안 좋아 물건을 집었다가 놓는다. 지갑이 비니 영(令)이 서지 않고 아내에게 의존하게 되는 경우가 늘어난다. 인정은 안 되고 자존심만 상한다. 결혼 적령기 아들에게 '너는 월급 통장은 절대 내주지 마라'는 소심한 복수도 해본다.

설문 조사에서 '경제권 배분이 잘못됐다'고 답한 쪽 역시 남성이 많았다. 전체로 보면 21%에 불과하지만, 모든 세대에서 남성이 여성보다 10%가량 높게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경제권 관리는 나이가 들수록 함께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한 사람이 경제권을 가져도 자산 관리는 부부의 공동 책임이라는 게 핵심. 경제권을 가진 이가 돈과 관련한 문제를 상대에게 의논해 결정하라는 뜻이다. 가계부는 한 사람이 써도 다른 이에게 가계 상황을 공유하고 예산을 함께 짜야 한다는 것이다. 최악은 정작 자신은 재테크 등에 무관심하면서 감시하듯 동분서주하는 배우자를 불신의 눈으로 쳐다보는 것이다.

3개월에 하루는 '재무의 날'… 예산안 데이트 해라

경제권 갈등 없애려면

경제권을 둘러싼 갈등이 갑작스럽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상대가 참고 참다가 곪아 터졌다는 것을 모르는 경우다.

결혼 30년간 경제권을 쥐어본 적이 없던 아내 오모씨. 남편의 말이 법이라 여기고 살았다. 어느 날 술을 마신 남편 황씨가 냉수 한 컵 떠오라고 하자 부아가 치밀었다. 큰 소리 한번 못 내는 게 사는 건가 싶었다. 오씨는 방역용 살충제를 그릇에 부어 내밀었다. 오씨는 결국 살인미수 혐의로 형사 입건됐다.

우리나라는 혼인 파탄에 책임이 있는 자는 이혼을 청구할 수 없도록 하는 유책주의를 택하고 있다. 그런데 농약을 타 살인미수 혐의까지 받은 오씨가 황씨를 향해 이혼을 청구했다. 더욱이 오씨는 황씨의 선처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법원은 "남편의 일방적인 경제권 행사 등도 혼인 파탄의 이유 중 하나"라며 "이혼하라"고 판결했다.

설문 조사에서 미혼자의 66%는 '결혼 경제권에 이견이 생기면 결혼을 재고할 수 있다'고 답했다. 가정주식회사 설립자 대부분도 혼담이 오가는 연애 시절부터 이견을 조율하고 정리하는 과정을 거쳤다.

초기엔 나만 열심히 산다는 불만을 갖는 경우가 많다. 아내는 남편이 술 먹고, 취미 생활이라며 운동 장비들을 사 모으는 게 못마땅하다. 남편은 아내가 친구를 만나고 쇼핑하는 데 돈을 많이 쓴다고 생각한다. 상대는 그렇지 않은데 나만 고생하는 게 억울하다고 느낀다. 이런 심리 상태가 지속되면 향후 돈은 더 줄줄 샐 가능성이 크다. 해답은 뭘까. 성공적인 가정주식회사를 운영 중인 이들의 조언을 싣는다. 핵심은 끊임없는 소통이다.

1. 3개월 중 하루는 재무의 날.

분기에 한 번은 재무의 날로 정한다. 돈을 어떻게 관리하고 사용할 것인지 대화한다. 목표와 우선순위도 정한다. 좋은 곳에서 데이트를 겸해도 좋다. 연말이나 초에 1년 동안 쓸 예산을 책정하고, 분기별로 이를 집행, 점검하면 된다. 나랏일 하는 사람들과 같은 구조다. 부족한 것, 남는 것 등이 머리에 들어온다.

2. 목적별 통장 만들어라.

목적별로 자금 용도를 세분화한다. 통장을 따로 만들어도 좋다. 월급, 생활비, 공과금, 교육비, 노후 자금 마련 등을 나누면 입출금 흐름과 사용처가 한눈에 들어온다.

3. 여유 자금을 허(許)하라.

서로에게 약간의 자유와 여유를 허락할 필요가 있다. 비상금이라고 모두 나쁜 것은 아니다. 납득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상대방의 지출을 눈감아 주는 배려도 필요하다. 이는 경제 활동을 하는 새로운 활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조선일보 B3면
트래블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