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집 세고 목소리 크고 친구 많던 내 남편은 어디로 갔을까

입력 2019.08.10 03:00

[아무튼, 주말- 별별다방으로 오세요!]

손오공은 날아봐야 부처님 손바닥 위일 뿐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 부처님이 가부좌를 틀고 계신 곳도 기껏해야 손오공의 눈꺼풀 위일지 모릅니다. 모든 것을 갉아 부수고, 그만큼 또 켜켜이 쌓는 세월의 흐름만이 우리를 득도하게 하고, 자유롭게 해주는가 봅니다.  홍여사

제 나이도 어느새 일흔아홉이네요. 건강한 편이긴 해도, 뭔가를 새로 배우기에는 용기가 필요한 나이이지요. 여간해 잘 배워지지도 않거니와, 기껏 익힌 것도 돌아서면 잊어버리니 말입니다. 그러나 저는 포기하지 않고 요즘도 열심히 배우러 다닙니다. 시니어 글쓰기 교실에 매주 나가고 있지요. 거기서 제가 제일 연장자이지만, 그래도 기죽지 않고 계속 씁니다. 매주 한 편씩 선생님이 내주신 주제로 글을 써가서, 앞에 나가 읽기도 하는 수업입니다. 그렇다 보니, 남들의 사는 얘길 듣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수강생들은 주로 60대인데, 이런 재미있는 사람들이 여태 어디 숨어 있었나 싶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저더러 대단하다고 합니다. 하긴 글공부 다니는 여든 살 노인이 흔치는 않겠지요.

일러스트= 안병현
나도 글이란 걸 써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건 제 나이 55세 때입니다. 기막히게도, 남편의 늦바람이 계기가 되었지요. 환갑 나이에 이르러 남편은 웬 젊은(?) 여자와 바람이 났었답니다. 오죽 빠져 있었으면 손녀 돌잔치 하다 말고 그 여자 마중하러 서울역으로 달려갔을까요? 덜미를 잡히고는 아무 사이도 아니었다고 딱 잡아떼더군요. 그러나 거짓말로 둘러대면 둘러댈수록 남편은 궁지에 몰렸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이미 눈치를 채고 조사를 철저히 마쳐놓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 모든 걸 차근차근 적어두기까지 했죠. 그러나 남편은 무조건 화만 냈습니다. 처음엔 아무 일도 아닌 거로 의심한다 화내더니 나중엔, 그동안 자기를 감시하고 자기 소지품을 뒤졌다고 화를 냈습니다. 아마 그렇게 억지를 쓰면 내가 혼자 가슴 치다가 제풀에 지칠 줄 알았겠죠. 그 심보가 하도 괘씸해서 나는 일생일대의 용기를 내서 집을 나와버렸습니다. 기껏해야 아들이나 딸 집으로 갈 줄 알았겠지만, 아예 방을 얻었지요. 평생 물 한 잔 자기 손으로 떠다 먹은 일이 없는 남편은 한동안 혼자 고생을 하다가 병까지 났습니다. 그러나 자식들도 형제들도 저더러 집에 도로 들어가라고는 않더군요. 그동안 남편의 괴팍한 성격을 제가 얼마나 맞춰가며 살아왔는지 아니까요. 남자들이란 얼마나 어리석은가요. 자기가 잘나서 떠받드는 줄 알고 거들먹대다가, 꼭 실수합니다. 지금껏 누려온 것들을 잃고 나서야 지금 자기가 무슨 짓을 한 건지 주위를 돌아보지요.

지금은 웃으며 말하지만, 그때는 심적인 고통이 말할 수 없이 컸습니다. 다른 여자가 있었다는 사실 자체보다, 내가 모르던 남편의 모습에 배신감을 느꼈지요. 아내와 자식들에게는 평생 그렇게 권위적이던 사람이, 다른 누군가에겐 가방을 들어주고 사진을 찍어주고 꽃을 보내주는 사근사근한 남자였다니….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별별 장면이 다 떠올랐습니다. 시달리다 못해 나는 차라리 내 머릿속 생각을 글로 쓰기 시작했죠. 처음엔 중구난방의 메모 형식이었는데 갈수록 살이 붙더군요. 쓰다 보니 얘기는 점점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갔습니다. 그동안 잊고 살던 온갖 얘기가 다 떠오르더군요. 미운 마음에 주로 나쁜 기억을 써 내려갔지만, 사실 좋은 기억도 함께 떠올랐습니다. 50년 결혼생활 동안 딱 1년 떨어져 살았는데, 그때 나는 책 한 권 분량의 글을 썼고, 남편은 체중이 5킬로나 빠져버렸답니다.

글쓰기 교실에서 나는 그 시절 이야기를 솔직하게 써서 들려주었습니다. 그러자 다들 배꼽이 빠지게 웃더군요. 수업에서 제일 어렸던 막내는 웃다가 눈물까지 찍어내며 묻더군요. 마지막엔 어떻게 다시 합치셨느냐고요. 있는 그대로 대답해줬지요. 마침내 남편이 잘못을 빌기에 그 여자도 데려오라고 했다. 다방에서 삼자대면을 한 건데, 내 눈앞에서 그 여자가 플라토닉한 관계니 뭐니 뻔뻔한 소리를 늘어놓기에 남편과 그 여자 둘 다 바닥에 패대기를 쳐버렸다고요. 그 망신을 당하고도 남편은 아무 말 없이 내 뒤를 따라나서더군요. 그날부터 오늘까지 우리는 25년을 더 부부로 살아온 거죠.

내 얘기에 막내는 정말로 웃다가 울다가 하더군요. 듣기로는 그이도 잘못을 저지른 남편과 당분간 따로 지내고 있다 합니다. 쉬는 시간에 혼잣말인 것처럼 묻더군요. 도대체 몇 년쯤이나 시간이 흘러야 과거의 나쁜 기억이 잊히는 거냐고요. 결국 잊히긴 잊히는 거냐고요.

대답하기도 전에 갑자기 내 휴대전화가 딩동 소리를 냅니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들리는 이 딩동 소리는 휴대전화에 연결된 우리 집 CCTV로, 남편의 상태를 확인해볼 때가 되었다는 신호입니다. 들여다보니, 손바닥 만한 화면에 멍하니 앉아 있는 영감의 모습이 보입니다. 소파에 앉아 있다가 침대에 누워 있다가 하는 걸 보니 별일 없나 봅니다. 실은 일전에 남편이 저와 마주 앉아 밥 먹다 말고 모로 쓰러져서 병원에 실려갔었죠. 무사히 퇴원하긴 했지만 앞으로 주의해서 지켜봐야 한다더군요. 그 이후로 아들은 집 안 곳곳에 CCTV를 달았습니다. 덕분에 나는 외출을 할 수가 있고 남편은 부처님 손바닥 안을 맘 놓고 돌아다닙니다. 내가 감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새 잊고 담배도 피우고 커피도 마십니다.

화면 속 남편을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기분이 묘합니다. 그렇게 고집 세고 목소리 크고 술 잘 마시고 친구 많던 남자는 어디로 갔을까요? 집 지키며 아내의 귀가를 기다리는 이 노인은 누구일까요? 남편도 한 번씩 생각하겠죠. 시간 맞춰 약 갖다 주는 백발의 저 여자가, 그 옛날 괴력을 발휘해 나와 내 애인을 메다꽂은 그 여자인가?

교실의 급우들은 나를 놀립니다. 그새 서방님이 보고 싶으셨냐고요. 그럼 나는 한술 더 뜨는 답을 합니다. 그새 어떤 여자랑 바람이나 피우는 거 아닌가 확인하는 거라고. 그럼 급우들은 깔깔 웃으며 또 묻습니다. 영감님 또 바람피우시면 그땐 어쩌실 거냐고요. 그럼 또 집 나가야지. 이번엔 아무리 싹싹 빌어도 안 돌아올 거야. 죽기 전엔….

휴대전화가 안 울렸다면 이렇게 답했을 겁니다.

시간만 흐르는 게 아니고 사람도 흐르더라고요.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하며 같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두 사람이 되라고.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사연입니다.
조선일보 B11면
도시재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