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파문 ·대통령급 메시지… 부메랑이 된 양정철의 광폭행보

박혁진 기자
입력 2019.08.04 07:07

[주간조선]

photo 연합
최근 민주연구원의 ‘한·일 갈등에 관한 여론 동향’ 보고서가 정치권에 큰 파문을 낳은 것은 대통령 최측근이 연구원 원장으로 앉아 있기 때문이다.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은 이전에도 서훈 국가정보원장과의 회동, 윤석열 검찰총장과의 만남 등으로 야당의 공격을 받았지만, 이번에는 국익을 선거에 이용하려 했다는 점에서 과거와는 결이 다른 비판을 받고 있다.

당내 여론조사 담당 기관인 민주연구원이 한·일 갈등이 자당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고서를 만들 수는 있지만, 이를 직접적으로 총선과 연관 짓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게다가 보고서 우측 상단에 ‘대외주의’라는 빨간색 문구가 선명하게 적시되어 있다는 것은 이 보고서가 유출됐을 때 일 수 있는 파장을 해당 연구원도 잘 알고 있었단 얘기다. 민주연구원 측에서는 당과 연구원의 공식 입장이 아니라면서 유감을 표명했지만 야권에서는 ‘국가 위기를 호재로 여겼다’ ‘국가 위기 앞에서 총선만 이기면 된다는 발상이 놀랍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이번 사건이 불러올 나비효과는 작지 않을 전망이다.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최근 한·일 갈등이 지속되면서 지지율이 동반 상승하는 효과를 맛봤다. ‘국익에 있어서는 여야가 따로 없다’는 여론을 일으키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시기 당 싱크탱크에서 한·일 갈등이 총선에 미치는 효과에 대해 보고서를 작성했다는 것 자체가 ‘자해’에 가깝다는 평가다.

당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이 양정철 체제의 민주연구원에서 “언젠가는 일어났을 일”이라는 목소리가 많다. 민주당 한 당직자는 이번 사건을 이렇게 평가했다.

“당에도 엄연히 시스템이라는 것이 있다. 개인적으로 이번 보고서는 유출된 것이 문제지 내용 자체는 문제가 없다고 본다. 그런데 연구원장이란 자리가 당 대표나 원내대표 이상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면 시스템이 엉망이 된다. 양 원장이 원장 취임 전부터 주목을 받았기 때문에 언론이 쫓아다니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연구원장이 외부 활동을 활발하게 하며 청와대와 똑같은 메시지를 내면 당 의원들은 지도부가 아닌 다른 곳을 바라본다.”

당직자의 이같은 비판은 지난 7월 29일 삼성경제연구원을 방문해 양 원장이 했던 말을 염두에 둔 것이다. 이날 양정철 원장은 민주연구원 연구위원 등 10여명과 함께 삼성경제연구소 관계자들에게 1시간40분간 경제 현안 브리핑을 들은 뒤 “지금 같은 엄중한 상황에서는 수출을 많이 하는 기업들이 애국자고 특히 세계 시장에서 1등 제품을 많이 수출하는 기업들이 ‘수퍼 애국자’”라고 말했다.


민주연구원이 작성한 ‘한·일 갈등에 관한 여론 동향’ 보고서.
중국까지 이어진 광폭행보

양 원장은 지난 7월 23일 LG경제연구원에서 “재벌과 대기업을 분리해서 보는 시각이 필요하다”고 했고, 7월 25일 현대자동차그룹 글로벌경영연구소에서도 “고용을 많이 창출해서 세금을 많이 내는 분들이 애국자”라며 사실상 대통령급 메시지를 기업들에 전한 바 있다. 이 당직자는 “연구원장이 주요 기업 싱크탱크를 돌아다녔단 얘기도 이전에는 한번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당직자들이 민주연구원장의 외부 활동을 이야기하며 거론하는 한 장의 사진이 있다(14쪽 사진 참조). 지난 7월 10일 양 원장이 중국 베이징에서 공산당 싱크탱크인 중앙당교 리지(李季) 부교장과 만나는 사진이다. 중앙당교는 중국 공산당 고급 간부를 양성하는 싱크탱크이자 고급 교육연수기관이다. 그동안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마오쩌둥(毛澤東), 후진타오(胡錦濤) 전 주석 등이 중앙당교 교장을 맡아왔다. 이날 양 원장은 리지 부교장과 만나 교류협력 협약을 체결했다. 중앙당교가 한국의 정당 싱크탱크와 교류협력 협약을 체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 당직자는 기자에게 사진을 보이며 “사진만 보면 정당 연구원장의 행보라고 보기 어려운 대접을 받는 것 같다”며 “과거 민주연구원장과 비교해 봐도 해외에서 이런 식의 극진한 대접을 받는 사례는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싱크탱크 업무협약식이면 이런 식으로 떠들썩하게 할 필요는 없는데 이런 일들이 추후 논란을 만든다”며 “임종석 전 비서실장이 선글라스를 끼고 최전선에 방문한 것이 언론에 보도된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말했다.

2008년 설립된 민주연구원은 더불어민주당의 싱크탱크다. 민주연구원은 당 싱크탱크로 전략기획과 여론조사, 정책 연구, 중장기 비전 연구 등을 수행한다. 설립 후 민주연구원장 자리에는 총 6명의 원장이 거쳐갔다. 임명 당시 현역 국회의원이었던 연구원장은 김효석·변재일·민병두 총 3명이었고, 전직 의원으로는 김용익·김민석 전 의원 등이 이 자리를 맡은 바 있다. 교수 출신으로는 동국대 박순성 북한학과 교수가 유일하게 원장을 맡았다.

몇 명의 현역의원들이 원장을 맡았던 때도 민주연구원장은 연구소 성격상 크게 부각되는 자리는 아니었다. 민주연구원장이 정치권의 주목을 받은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인 양정철 전 청와대 비서관이 원장에 임명되면서부터다. 양 원장이 민주연구원장이 되면서 당내에서도 연구원을 바라보는 시각은 달라졌다.

당에서도 사람과 돈을 그에게 아낌없이 지원하고 있다. 양 원장 밑에 세 명의 현역의원들이 부원장으로 있다는 것은 민주연구원장의 위세가 어느 정도인지를 잘 보여준다. 양 원장은 민주연구원 부원장으로 김영진·이재정·이철희 의원과 백원우 전 의원, 이근형 민주당 전략기획위원장(당연직 부원장)을 인선했다. 민주연구원은 민주당이 받는 국고보조금의 30%를 사용하고 있고, 선거가 있는 해엔 예산이 두 배다. 민주당은 1년에 150억원 가까운 국고보조금을 받는다. 그가 만나는 인사들의 중량감은 현역 중진 의원들을 압도한다.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왼쪽)이 지난 7월 10일 중국 베이징에서 공산당 싱크탱크인 중앙당교 리지 부교장과 만나는 모습. photo 중국 중앙당교 홈페이지
민주연구원장으로 간 이유

양 원장의 향후 정치행보가 어떨지 알 수 없으나 그는 두 번의 대선을 치르며 ‘킹메이커’로서의 권력의지를 보였다. 양 원장이 민주연구원장으로 간 이유는 단 하나다. 내년에 있을 총선 그리고 2022년 대선 승리를 위해서다. 당도 본인도 이를 인정한다. 양 원장은 비록 본인이 출마한 선거에서는 당 공천도 받지 못했지만, 두 번의 대선을 겪으면서 선거 전략에 있어서는 나름 일가견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2년 대선에서는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에게 졌지만, 선거 막판 여론조사에서 골든크로스까지 이끌어낼 정도로 격차를 좁히는 데 기여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번 대선에서도 천주교계와 중도층이 문재인 대통령 당선에 적지 않은 역할을 하도록 양 원장이 가교 역할을 했다. 양 원장이 민주연구원장에 내정됐을 때도 그가 총선 관련 전략기획과 인재영입, 당·정·청 간 정무적 소통에 치중할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문제는 총선 승리를 위해 양 원장이 광폭행보를 보일수록 역효과가 난다는 점이다. 이번 보고서 유출 사건도 그 연장선상에서 볼 수 있다.

양 원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문재인 대통령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던 것은 논리적으로 말하기를 좋아하고 글도 잘 쓰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이 말이 많으면 반드시 어느 순간에는 그 말과 말이 부딪치기 마련이다. 이번 보고서 유출 파문이 언론의 집중포화를 맞게 된 것은 그가 이전에 했던 말 때문이다. 양 원장은 지난 7월 16일 방미를 마치고 귀국하면서 인천국제공항에서 취재진과 만나 “(정부·여당은) 내년 총선을 친일·반일 구도로 치르려는 거냐”는 질문에 “지금 국익이 걸려 있고 경제가 어려운데 그걸 어떻게 선거랑 연결 짓냐. 그러면 안 되죠”라고 답했다. 이에 대해 전희경 자유한국당 대변인은 지난 8월 1일 “양 원장은 얼마 전 총선에 반일 감정을 이용하지 않는다고 공언하지 않았나, 그래놓고 이런 보고서를 만드는 건 속 다르고 겉 다른 양두구육(羊頭狗肉·양의 머리를 걸어놓고 개고기를 판다는 뜻)의 전형”이라고 꼬집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이 정치권처럼 잘 들어맞는 곳이 없다. 양 원장의 광폭행보가 계속될수록 그의 말과 글은 부메랑이 되어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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