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응급실 좋아졌다는 복지부… 현장엔 가보셨나요

허상우 사회정책부 기자
입력 2019.08.01 03:00
허상우 사회정책부 기자

보건복지부가 31일 '2018년 응급의료기관 평가 결과'를 발표하며 "응급 의료 서비스의 질이 높아졌다"고 자평했다. 복지부는 "응급실 혼잡도는 다소 올라갔지만, 중증 환자가 권역응급의료센터 응급실에 머무르는 시간이 줄어들었다"고 했다. "필수적인 시설·장비·인력기준을 충족시킨 응급의료기관의 비율이 2017년 85%에서 지난해 91%로 늘었다"고도 했다.

서류상으론 이런 발표가 '사실'일지 모른다. 하지만 최근 돌아본 현장의 '진실'은 이와 다르다. 최근 취재팀이 돌아본 빅5 병원(상위 5개 대형 종합병원) 응급실은 가는 곳마다 환자들이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7월 11일자 A1면〉

서울성모병원은 접수부터 진료 종료까지 평균 13시간 이상 걸렸다. 입원 대기시간은 20시간이 넘었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은 아예 응급실 입구에 '빈 병상이 없어 현재 구급차로 내원해도 진료를 못한다'는 팻말을 내걸고 있었다. 서울대병원 응급실에 온 환자 임모(72)씨는 병상이 모자라 보호자 대기실에서 링거를 꽂고 있었다.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서 만난 환자 최모(68)씨는 "산에 갔다가 생긴 알레르기 때문에 왔다는 환자도 봤다. 응급실에 응급이 아닌 병으로 오는 이들이 문제"라며 언성을 높였다.

빅5 병원뿐 아니라 지방의 대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들도 "경증·중증 환자가 뒤섞여 제대로 처치할 수 없는 지경"이라고 호소했다.

응급실이 이처럼 붐비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일명 '문재인 케어'(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다. 건보 적용 항목이 늘고 선택진료비(특진비)가 폐지되면서, 급환도 아닌데 무조건 대형 병원을 찾는 사람이 늘어났다. 그들 상당수가 외래 예약 순서를 기다리는 대신 응급실을 통해 바로 진료를 받으려 들어 응급실도 덩달아 미어터지게 됐다.

의료계 관계자들은 "과거에도 대형 병원 응급실은 포화 상태였지만 사람이 더 몰려 이젠 감당이 어려운 수준"이라고 했다. 윤준성 서울성모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응급실에 24시간 이상 머무르는 환자 비율이 연 5%를 넘기면 안 된다'는 복지부 규정에 따라, 우리 병원에 입원시키지 못하고 돌려보내는 환자가 매일 5~10명씩 나온다"고 했다. 복지부는 이날 "권역응급의료센터 중증 환자의 응급실 재실 시간이 0.2시간 줄었다"고 했지만 의사들은 "현장에서 평균 12분 차이로 달라졌다 느끼진 않는다"고 했다.

필수 기준을 충족한 응급의료기관이 늘었다는 통계에도 '이면'이 있었다. 전국 응급의료기관 숫자는 2017년 416개에서 지난해 401개로 줄었다. 필수 기준을 갖춘 기관 비율이 올라간 건, 취약한 응급의료기관들이 문을 닫는 바람에 생긴 착시현상에 가깝다. 실제로 전남 고흥·영암 등지에서는 적자 누적에 의료 인력 부족이 겹쳐 문을 닫는 응급실이 늘고 있다. 복지부는 현장의 목소리에 좀 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조선일보 A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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