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학수의 All That Golf]68년만에 북아일랜드서 열린 디오픈서... 셰인 라우리 아일랜드의 영웅이 되다

민학수 기자
입력 2019.07.22 02:11 수정 2019.07.22 02:37
엄청난 강풍속 2위 잉글랜드 토미 플리트우드에 완승 거두어...첫 메이저 우승

아일랜드의 셰인 라우리아 사실상 우승을 확정짓는 15번홀 버디를 잡은 뒤 주먹을 불끈 쥐며 기뻐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최대 시속 64km의 강풍과 비.
태풍에 버금가는 악천후가 예보돼 있는데도 아침 일찍부터 갤러리가 몰려들었다. 사람이 산과 바다를 이룬다는 ‘인산인해(人山人海)’란 말을 이럴 때 쓰는 것 같다. 올 시즌 남자 골프 마지막 메이저대회인 디오픈(브리티시오픈) 최종일 경기가 열린 21일 영국 북아일랜드 로열 포트러시 골프클럽의 던루스 링크스(파71).
이날 우승 트로피 클라레 저그를 두고 챔피언 조에서 격돌하는 두 선수가 하필 아일랜드의 셰인 라우리(32)와 잉글랜드의 토미 플리트우드(28)였다. 라우리는 16언더파로 플리트우드에 4타 앞선 상황에서 4라운드에 들어갔다.
라우리는 강풍에 선수들 우산이 날아가고 비가 쏟아져도 바위처럼 흔들리지 않았다. 아직 메이저 우승 경험이 없는 선수라고는 믿기 힘들게 보기를 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버디로 만회했다. 그가 버디퍼트를 넣고 주먹을 불끈 쥘때면 천둥 같은 응원소리가 진동했다.
라우리는 4라운드에서 보기를 5개 했지만 버디 4개를 잡아내며 합계 15언더파 269타 우승했다. 2위 플리트우드(9언더파)를 6타 차이로 따돌렸다. 라우리는 상금 193만5000달러(약22억7000만원)를 받았다.


엄청난 악천훟속에서도 수많은 팬들이 68년만에 북아일랜드 로열 포트러시 골프클럽에서 열린 디오픈을 관전했다. 대부분 팬들이 아일랜드의 셰인 라우리를 응원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대부분 갤러리가 아일랜드 출신 라우리가 우승 트로피인 클라레 저그에 입맞추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어 왔다. 아일랜드에서 온 한 갤러리는 "북아일랜드도 아일랜드다. 이곳에서 아일랜드 선수가 디오픈을 우승한다면 역사적일 것"이라고 했다. 아일랜드 국기를 펴드는 팬들까지 있었다.
라우리의 메이저 대회 최고 성적은 지난 2016년 US오픈때의 준우승이다.
3년전 US오픈에서 라우리는 이날과 마찬가지로 4타차 선두로 4라운드를 출발하고도 14번홀부터 3연속 보기를 하는 등 76타를 치며 우승컵을 더스틴 존슨(미국)에 내주었다. 그는 같은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았다. 라우리는 이날 우승으로 미국프로골프(PGA)투어 2승, 유러피언 투어 5승을 기록했다.

그가 우승을 거둔 2015년 8월 월드골프챔피언십(WGC) 브리지스톤 인비테이셔널과 이날 디오픈은 나란히 미 PGA투어와 유러피언 투어 승수로 동시에 기록된다.
이날 세계 1위 브룩스 켑카(미국)는 3타를 잃고 6언더파를 기록했다. 켑카는 베테랑 리 웨스트우드(잉글랜드)와 나란히 공동 4위를 기록하며 마스터스(준우승), PGA챔피언십(우승), US오픈(준우승), 디오픈(4위) 등 올 시즌 4대 메이저 대회를 모두 5위 이내로 마쳤다. 하지만 켑카가 1~4번홀에서 4연속 보기를 할 정도로 힘겨운 조건에서 열린 4라운드에서 라우리는 팬들의 열렬한 응원을 받으며 기대 이상의 플레이를 펼친 것이다.

라우리는 이 골프장에서 남쪽으로 차로 4시간 거리 떨어진 곳에서 태어나 자랐다. 플리트우드는 지난해 미국과 유럽의 골프 대항전인 라이더컵에서 유럽을 승리로 이끈 영웅이었지만 이날 ‘영국 땅’에서 ‘원정 경기’를 벌여야 했다.


14번홀에서 더블보기를 기록한 잉글랜드의 토미 플리트우드가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다. /AFP연합뉴스
디오픈이 북아일랜드 로열 포트러시를 다시 찾은 것은 68년 만이다. 평화가 찾아오면서 로리 매킬로이 등 이 지역 골퍼들의 간청이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공교롭게 아일랜드와 잉글랜드 선수가 우승 경쟁을 벌이면서 ‘민족감정’이 분출되는 현장으로 바뀌었다. 2002월드컵을 비롯해 30년째 스포츠 취재를 담당한 영국 BBC의 스포츠캐스터인 존 머레이는 "골프는 폭력사태까지 빚어지는 축구와는 다르다"면서도 "북아일랜드 언론인이 살해되는 등 최근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관련 정치 갈등이 고조되는 가운데 묘한 상황이 빚어졌다"고 말했다.
북아일랜드는 영국 아일랜드섬 북동부에 위치했다. 아일랜드는 1922년 독립전쟁을 통해 영국 통치에서 벗어났지만 영국계 신교도가 많은 얼스터 지방이 아일랜드에서 분리돼 영국령 북아일랜드가 됐다.
1998년 평화 협정(굿프라이데이 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북아일랜드는 친(親)영국 신교도와 친아일랜드 구교도 사이에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구교도인 로리 매킬로이의 작은할아버지 조 매킬로이가 1972년 집에 침입한 괴한들의 총에 맞아 세상을 떠난 일도 있었다. 현재 EU 회원국인 아일랜드와 영국령인 북아일랜드 사이에는 인적 왕래가 자유롭다. 하지만 영국이 EU를 탈퇴하면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사이 국경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놓고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한국 선수 중에서는 박상현이 2언더파 공동 16위를 기록하며 가장 좋은 성적을 올렸다. 박상현은 지난해 처음 출전한 디오픈에서는 컷을 탈락했지만 이번 대회를 앞두고는 아이리시오픈과 스코티시오픈에서 링크스 코스 경험을 쌓았다.
안병훈은 4타를 잃고 공동 32위(1오버파)를 기록했다. 디오픈 출전이 처음인 45세 황인춘은 공동 41위(2오버파)로 대회를 마쳤다.
/포트러시(북아일랜드)=민학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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