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샘재판 예상되자… 양승태 밤 11시에 "퇴정시켜 달라"

김은정 기자
입력 2019.07.22 03:00

검찰은 "재판 거부"라며 반발

"머리가 빠개지는 것 같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지난 19일 오후 11시 5분 서울중앙지법 311호 법정.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로 재판에 넘겨진 양승태(71·사진) 전 대법원장이 피고인석에서 벌떡 일어나 말했다. "제 체력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계속 있다가는 법정에 폐를 끼칠 것 같으니 퇴정 명령을 내려주시면 감사하겠다"고 했다. 그의 얼굴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이어 "판단력이 떨어지고 있어 더 이상 (재판을 해도) 아무 의미가 없는 것 같다"고도 했다.

양 전 대법원장의 이날 재판은 오전 10시부터 시작됐다. 재판이 시작된 지 13시간째 되던 이날 밤 11시쯤 재판장인 박남천 부장판사가 "남은 증인 신문을 오늘 다 하겠다. 잠시 휴정(休廷)하겠다"고 말했다. 이날은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에 연루됐던 김민수 부장판사에 대한 증인 신문이 진행됐다. 휴정 선언이 됐을 땐 검찰과 고영한(64) 전 대법관의 신문만 끝난 시점이었다.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62) 전 대법관 측의 신문 순서가 남아 있었다. 예정 시간으로만 따져도 재판은 다음 날 새벽 5시를 넘어 끝날 가능성이 컸다. 그런데 재판장이 계속하겠다고 하자 양 전 대법원장이 자기를 법정 밖으로 쫓아내 달라고 한 것이다.

이에 박 부장판사는 "남은 증인 신문은 다음 달 5일에 하겠다"며 이날 재판을 끝냈다. 그러자 검찰이 "재판 거부"라며 거세게 반발했다. 박주성(41) 검사는 "이런 피고인(양 전 대법원장)을 본 적이 없다.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양 전 원장의 변호인은 "고령에 몸이 안 좋아 본인이라도 퇴정시켜 달라고 하는 게 어떻게 재판 거부냐"고 반박했다.

한 변호사는 "재판부가 양 전 대법원장의 1심 구속 기간이 끝나는 다음 달 10일 전 최대한 재판 진도를 빼려다가 이런 일이 생긴 것 같다"고 했다. 법원은 22일 양 전 원장의 보석(조건부 석방) 문제를 직권으로 심리한다. 그러나 양 전 대법원장 측은 외부인 접촉 금지 등 여러 제약을 두는 보석은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20일 정도 더 구치소에 있다가 이런 제약이 없는 '구속 기간 만료' 석방으로 나가겠다는 것이다.


조선일보 A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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