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강남경찰서

입력 2019.07.22 03:16
1990년대 중반 서울 강남경찰서 강력반이 호스트바 한 곳을 급습했다. 자정 이후 영업을 못하던 때라 명목은 심야영업 단속이었지만, 실제는 변태영업을 적발한다고 했다. 출입기자들에게 "사진기자도 꼭 같이 오라"고 당부할 만큼 자신 있어 했다. 그러나 한밤중에 찾아간 호스트바는 셔터가 굳게 닫혀 있었고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기자들은 "단속 정보 어디서 샌 거냐"고 투덜댔다. 훗날 친한 형사가 "전직 강남서 출신에게 정보가 샌 것 같다"고 귀띔했다.

▶10년 전쯤 연예인이 강남에서 음주 단속에 걸렸을 때 경찰에게 무마조로 주는 돈은 600만원이 '정가'였다. 면허가 취소되면 벌금이 300만원이어서 그 두 배를 받는다는 계산법이다. 이런 이야기를 해 준 연예인은 "편의점에서라도 바로 현찰을 뽑아 즉석에서 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연예인이 음주 단속에 걸리면 활동을 중단할 수밖에 없으니 비싸지만 어쩔 수 없다"고 했다. 

▶대대적 물갈이를 앞둔 강남서 근무 공모에서 지원자 미달 사태가 났다고 한다. 기존 직원 100명을 다른 데로 보내려면 지원자가 1.5배는 돼야 하는데 90명밖에 지원하지 않았다. 추가 지원까지 받아 간신히 지원자 120명을 만들었다. 버닝썬 사건 관련 비리 때문에 강남서는 경찰청 '제1호 특별인사관리구역'이 됐고 앞으로 직원 70%가 교체될 예정이다. '강남권 반부패 전담팀'이 만들어져 고강도 감찰을 앞둔 강남서에 가려는 경찰이 적을 수밖에 없다.

▶강남서는 경찰관들이 선호하는 근무지였고 승진 코스이기도 했다. 대형 사건과 유명인이 연루된 사건이 많아 그만큼 능력 발휘하기 좋은 곳이기도 하다. 관내에 강남역, 신사역, 압구정동, 청담동, 삼성동이 있고 대기업 본사와 유명 연예기획사들도 많다. 온갖 유흥업소들도 밀집해 있어 업소 뒤를 봐주고 떡값으로 수천만원씩 받다가 적발되는 경찰들도 끊이지 않았다. 검찰이 한 룸살롱 장부를 압수했더니 강남서 경찰 명단이 한 무더기 나온 적도 있다. 버닝썬에서 2000만원을 받아 구속된 사람도 전직 강남서 경찰이었다.

▶강남서는 1976년 동부서에서 분리돼 대치동 지금 자리에 세워졌다. 2년 뒤인 78년 강동서가 신설돼 강남서에서 나간 것을 시작으로, 서초·송파·수서서가 모두 강남서에서 분리돼 독립했다. 강남 개발의 역사가 강남서의 역사인 셈이다. 신임 강남서장은 지난달 취임사에서 "경찰서 해체 수준의 위기에 봉착했다"고 말했다. 대형 비리가 또 터지면 정말 서초·송파·수서서가 강남서를 해체해 나눠 가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조선일보 A3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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