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그 후] 아너소사이어티 가입했던 '청년 버핏'의 몰락...거짓은 일순간 드러났다

백윤미 기자
입력 2019.07.20 14:59 수정 2019.07.20 15:07
남의 돈 20억원으로 절반은 장학금, 절반은 생활비 등
"어떻게 갚을 거냐" 묻자 "교도소서 용접 배워 갚겠다"
법원 징역 5년 선고…"피해자들 기망하고 피해줬다"

‘청년 버핏’으로 유명세를 탔던 박철상씨. /조선DB
‘청년 버핏’으로 불리던 박철상(35)씨는 꼭 4년만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대학생 신분으로 주식 투자를 해 수백억대 자산가가 됐다고 알려졌던 그는 지인 4명에게 총 20억여원을 가로채 돌려주지 않은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로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그를 "기부금을 마련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기망하고 피해를 주어 목적이 도덕적이라 하더라도 범죄행위가 정당화될 수 없다"라고 적었다. 판결문에 드러난 그의 거짓말이 탄로나는 과정은 그야말로 ‘영화’ 같았다.

◇대학생이 억대 기부...‘400억대 자산가’로 부풀려져
박씨가 이름을 알린 것은 2013년 자신이 다니던 대학에 거액을 기부하면서다. 박씨는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전해달라"며 학교 측에 1억원을 기탁했다. 박씨는 당시 학업과 자산운용사업을 병행하고 있다고 했다.

박씨가 기탁한 돈으로 대학은 장학기금을 만들었다. 언론이 그를 집중적으로 조명한 것도 이 즈음이다. 그는 2015년 2월 학교에 추가로 9000만원을 기부하면서 5년동안 모두 4억5000만원을 기부하겠다고 했다. ‘청년 버핏’, ‘기부왕’ 등의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박씨는 그해 7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의 회원으로도 가입했다. 5년간 1억원 이상을 기부하거나 약정하면 회원 가입 자격이 생긴다.

고액기부자 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 가입식 때 박철상씨의 모습. /조선DB
박씨는 강연 등을 통해 "앞으로 40년간 50억~60억원을 대학 장학금으로 내놓겠다"고도 했다. 당시 그는 "많은 돈을 벌며 기부를 하니 딴 뜻이 있는 게 아닌가 오해를 샀고, 정치권에서 연락도 많이 받았지만 외면했다"고 말했다. 2016년에는 한국사회공헌재단이 선정한 ‘2016 대한민국 사회공헌 영웅 100인'에 뽑히기도 했다. 미국 포브스지가 선정한 ‘2016 아시아 기부영웅’에도 선정됐다.

박씨의 자산이 400억원이라고 부풀려진 것도 이 시기다. 언론에서 박씨를 ‘400억대 자산가'라고 보도하기 시작했고, 그 역시 달리 부인을 하지 않았었다. 이후 다른 지역에 있는 대학에도 6억원을 기부하면서 황교안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이 주재하는 ‘선행실천 격려 간담회'에 청년자산가 자격으로 참석하기도 했다.

‘청년 성공의 아이콘’이 된 그는 독서를 권장했다.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SNS)에 글을 올리며 자신이 읽었던 책 250여권을 추천하기도 했다. 자신의 모교에 대한 장학 지원 규모를 13억5000만원까지 늘리겠다고 했다. 그의 계획은 이렇게 가면 갈수록 커져갔다.

◇유명 주식투자가들 의혹 제기에 ‘거짓말’ 들통
박씨의 사기행각은 유명 주식투자가 신준경(46)씨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의혹을 제기하면서 서서히 드러났다. 신씨는 지난 2016년 ’청담동 주식부자' 이희진씨의 실체를 폭로했던 인물이다. 신씨는 지난 2017년 8월 "실제 400억원을 주식으로 벌었다면 증거를 내놓으라"며 "박씨가 400억원을 보유하고 있다면 현금 1억원을 약정 없이 일시금으로 기부하겠다"고 했다. 박씨에게 주식 계좌 인증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당시 박씨는 페이스북에서 "일면식도 없는 분이 밑도 끝도 없는 고집을 부려 실소만 나온다"며 "마치 야바위꾼 내기 놀음하듯 대하는 모습이 저를 모욕하는 것보다 훨씬 불쾌하다"고 반박했다. 상황은 불과 몇 시간 만에 급변했다. 박씨는 몇 시간 뒤 "신씨를 만났고 내일 오전 내용을 남기겠다"는 글을 다시 올렸다.

이후 포스팅된 글은 박씨의 사과문. 그는 "사실 온갖 겉치장과 같잖은 공명심에 취해 있었던 것 같다"며 "그것이 도를 넘어 결국 이런 상황까지 벌어지게 됐다"고 했다. 그러나 박씨는 "이 기회에 휴식도 취하고 삶을 되돌아보며 이번 일을 성장통으로 삼겠다"고 했다. 그의 ‘사과 아닌 사과’는 불에 기름을 부은 것처럼 논란을 키웠다.

/신준경씨 페이스북 캡처
이어 또 다른 주식투자가인 김태석씨가 박씨와 통화한 내용 중 일부를 유튜브에 공개했다. 김씨는 "언론에 보도된 내용과 (박씨의) 행동 가운데 상당 부분이 거짓임을 박씨에게 직접 확인했다"며 "주식투자로 번 돈은 400억원이 아니라 수억원에 불과하고, 기부액 24억원 중 10억원은 다른 사람이 기부한 것을 자신의 이름으로 기부한 것"이라고 밝혔다. 김씨는 또 박씨의 당시 투자금은 5억원 정도라고도 했다. 신준경씨는 이에 대해 "박씨는 본질이 나쁜 사람은 아니며 이번 일은 약간의 허언증에 영웅 대접을 받아 거기에 심취해버린 결과"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법원 "목적이 도덕적이라도 범죄 행위 정당화 안 돼"
박씨는 결국 사기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 수사 결과 박씨는 4명의 피해자로부터 20억여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았다. 박씨가 400억대 자산가로 알려지면서 주변인들에게 주식 투자 문의가 쇄도했는데, 이를 악용해 돈을 가로챈 것으로 조사됐다.

박씨는 주식투자로 수익을 올린 적은 있지만, 당초 부풀려진 400억원에는 훨씬 못 미치는 정도였다고 한다. 그의 장학사업 종잣돈도 주식투자로 번 돈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대신 투자해 주겠다며 끌어모은 돈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박씨가 재학 중인 대학에서 ‘더 나은 미래, 청년의 삶'이라는 주제로 강의하는 모습. /연합뉴스
박씨는 페이스북을 통해 만난 A씨에게 "나를 믿고 돈을 맡기면 연 30%의 이익을 지급하겠다"며 14억원을 받아 가로챈 것으로 드러났다. 같은 대학에 다니던 동창에게도 "주말마다 홍콩에 가서 400억원 주식투자 기금을 운용할 정도로 바쁘게 지낸다. 여윳돈을 주면 고수익을 올려주겠다"면서 모두 8차례에 걸쳐 4100만원을 받아 챙겼다.

박씨는 이렇게 모은 돈 중 절반 가량을 장학금으로 내놨다. 일부는 생활비로 썼다. 또 채무를 수습하기 위해 ‘돌려막기’ 수법도 썼다. 박씨는 재판정에서 혐의를 모두 인정했다. 반성문도 28번이나 냈다. 지난달 17일 열린 결심공판에서 검찰이 "어떻게 변제할 계획이냐"고 묻자 박씨는 "교도소에서 용접을 배워 출소 후 취업해 갚겠다"고 했다. 그러나 검찰은 "피해자들이 거액의 피해를 입었고, 대부분 변제받지 못해 중형이 불가피하다"면서 그에게 징역 10년을 구형했다. 박씨에게 남은 채무는 15억여원에 이른다.

재판부는 박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박씨가 언론에 소개된 장학사업의 기부금을 마련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기망하고 피해를 준 것"이라며 "목적이 도덕적이라 하더라도 범죄행위가 정당화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피해 금액이 20억원에 이르는 데다 피해자에게 심각한 경제적·정신적 손해를 야기했고, 피해자에게 적극적으로 거짓말해 기망한 것으로 범행 방법에 대한 비난 가능성도 매우 크다"고 했다.

박씨의 1심 선고가 난 직후 ‘아너소사이어티 대구 모금회’는 그의 회원 자격을 박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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