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상산고와 벨러비스

입력 2019.07.20 03:16
친구가 고3 딸의 학원 자리를 맡으러 새벽 4시부터 대치동 학원가에 줄을 섰다고 했다. 유명한 족집게 특강인데 수업은 오전 9시부터다. 그 시각에 줄 서지 않으면 앞자리에 앉을 수 없기 때문에 대신 가서 줄 선다고 한다. 그렇게까지 해야 하느냐고 물으니 한숨을 쉰다. "어떻게든 좋은 대학에 보내고 봐야지."

▶전북 상산고를 자사고에서 탈락시킨 김승환 전북 교육감이 아들을 영국 케임브리지대에 보내 뒷바라지했다고 밝혔다. 아들은 일반고를 나와 아버지가 교수로 있던 지방대에 다니다 중퇴했다. 서울 강남의 한 유학원 블로그에 올라온 합격 후기를 보면 아주 착실히 준비했고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했다. 김 교육감은 "(학비는) 우리 살림살이로 보낼 정도였다"며 "양심에 어긋나거나 국민 눈높이에서 벗어난 행동을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꼭두새벽 학원 앞에 줄 서거나 상산고에 진학시키는 부모도 딱 그만큼의 살림살이고 양심의 가책도 없다. 

▶영국 학제는 초등 6년, 중등 5년까지가 의무교육이다. 대학에 가려면 2년제 대입 과정에 들어가 입시를 준비한다. 김 교육감 아들이 다닌 벨러비스 칼리지도 그런 유의 입시 과정이다. 유학원들이 "옥스브리지(옥스퍼드+케임브리지) 합격률이 높은 최고 학교"라고 광고하는 곳이다. 영국의 상산고인 셈이다. 김 교육감 아들 역시 이 학교 '옥스브리지 대비반'에서 공부했다. 합격 후기에서 "벨러비스 시험에서 계속 A+를 받았다"며 "무조건 모든 과목 100점을 받으라"고 조언했다.

▶김 교육감은 "상산고는 오로지 입시 학원으로 변했다"고 했다. 누가 유학원 컨설팅 받아 영국 벨러비스 칼리지에 아이를 보낸다면 '오로지 옥스브리지에 가기 위한 입시 학원'에 갔다고 생각하는 게 상식이다. 벨러비스 보낸 사람이나 상산고 보낸 사람이나 아이를 위해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일 뿐이다. 외국 입시 학교 보내 명문대 졸업시킨 건 '참교육'이고 "아들이 자랑스럽다"면서, 자사고는 명문대 입시 학원이라니 학부모들 분통이 터진다.

▶사람들이 김 교육감 자녀들에게 관심을 갖는 것도 그런 이유다. '그러는 당신 아이들은 어떻게 키웠느냐'고 묻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김 교육감은 개인 정보를 요구한다며 "한심한 우리나라 수준"이라고 했다. 우리나라에 한심하지 않은 사람은 자기밖에 없다는 투다. 그는 과거 "삼성에 학생들 취직시키지 말라고 전북 학교들에 지시했다"며 "삼성 성장에 국민 희생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심하든 말든 그 자녀들이 어디 취직하는지도 지켜볼 수밖에 없다.


조선일보 A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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