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엔 창문 열고 가족 모두 모기장으로… 아이들 가운데 재우다 부모는 툭하면 뜯겨

태영호 전 북한 외교관
입력 2019.07.20 03:00

[아무튼, 주말- 평양남자 태영호의 서울 탐구생활]

일러스트=안병현
본격적으로 여름휴가철이다. 주변에서 아이들 방학이다 휴가다 해서 해외 유명 관광지로 피서 떠난다는 사람이 많다. 처음에 한국 와서 여름을 맞았을 때 나한테 어디로 피서를 가느냐고 묻는 이들이 꽤 있었는데 그저 웃기만 했다. 피서(避暑)란 말을 처음 들었기 때문이었다. 슬쩍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여름철에 더위를 피하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였다. 북한에서는 한자 교육을 하지 않아 일반 사람들은 '피할 피(避)'에 '더울 서(暑)'를 봐도 뜻을 모를 것이다. 나는 1976~80년 베이징에 유학 가 중학교에 다니면서 한자를 익혀 글자를 보니 감이 대강 왔다.

북한에도 휴가는 있다. 사회복지법률상 연 20일 휴가가 있다. 국가가 운영하는 휴양소, 야영소 등이 있으나 가족 단위로 피서를 떠나기는 어렵다. 공무원은 부모 환갑이나 장례식, 자녀 결혼식, 집 수리 등 사적 용무로 휴가를 신청할 수 있지만 가족과 함께 어디 여행을 가겠다고 휴가를 신청하면 '정신 나간 놈'이란 소리를 들을 게 뻔하다. 온 나라가 강성국가 건설을 위해 뛰고 있는데 놀러 간다고 직장을 안 가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교통편이나 숙박시설이 거의 없어 가족 단위로 놀러 가기도 어렵지만 가장 큰 시스템적인 난관은 지방 여행을 하려면 사전에 여행증명서를 경찰에 신청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들 시끄러워 포기한다.

한국에선 집집마다 에어컨이 있으니 집에서 꼼짝 않고 피서한다는 사람도 있던데 북한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에어컨 있는 집은 거의 없다. 무더위가 최고조에 달하는 삼복 기간엔 집에서 버티기 어렵다.

북한 노동당 중앙당 청사를 제외한 대부분 국가기관은 중앙 냉방 시스템이 없다. 부상급(차관급)부터 사무실에 에어컨을 설치할 수 있다. 일반 사무실에선 창문을 열어놓고 선풍기를 틀어 놓는다. 부채를 들고 다니는 사람이 많다. 사무실에서 정 더위를 참기 어려우면 청사 안에 있는 목욕탕으로 달려가 찬물 샤워로 몸을 식히고 다시 사무실에서 일한다. 한국에선 집에도, 사무실에도, 카페에도 에어컨이 있으니 내겐 어디나 다 피서지다.

북한에서 한여름엔 집에 창문을 다 열어 놓고 모기장을 치고 온 가족이 그 안에서 함께 잔다. 옆에는 모기를 쫓기 위해 모기향을 피워 놓는다. 우리 가족도 북한에 있을 때 태질(몸부림을 뜻하는 북한말) 심한 아들 둘은 가운데 눕히고 나와 집사람은 양쪽 끝을 지켰다. 밤에 손이나 발이 모기장 밖으로 나가면 모기 폭격기 편대들이 맹폭격했다. 자식 사랑 흔적이 모기에 뜯겨 물린 자국에 남았다. 가끔 그 얘기를 하면서 아내와 빙그레 웃는다.

여름에 제일 큰 걱정이 음식이 쉬지 않게 건사하는 것이다. 평양시에서도 자주 정전이 되기 때문에 음식을 냉장고에 넣어도 쉽게 변한다. 살림이 좀 넉넉한 집에서는 중국산 극동기(냉동고)를 집에 둔다. 큰 바가지에 물을 넣어 극동기 안에서 얼린다. 그런 후 음식을 극동기에 넣어두면 몇 시간씩 정전되어도 음식이 변하지 않는다.

가는 곳마다 더우니 음식을 통해 더위를 이기는 음식 문화가 발전했다. 삼복 기간엔 쑥떡을 자주 먹는다. 초복엔 다들 보신탕을 먹는다. 북한에서는 보신탕을 '단고기'라고 하고 일반 주민들은 '개장'이라고 한다. 남쪽에서는 동물보호단체들의 보신탕 문화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지만 북한에서 단고기 요리는 당당한 민족 요리다. 각종 코스요리까지 만들어 먹는다.

최근 몇 년 사이 북한에서도 경치 좋은 산촌이나 해안가에 사는 사람들이 국가 몰래 집을 숙박시설로 꾸려 관광업을 하기 시작했다. 평양시로부터 원산, 남포, 함흥 등을 이어 주는 '더벌이 버스(개인택시 버스)'들도 운행해 가족 단위로 주말에 당일치기로 갔다 오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어서 통일이 돼 한국 사람들이 원산, 함흥 등 북한의 피서 명소들에 놀러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조선일보 B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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