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두언은⋯한때 'MB의 남자', 비주류 길 걸은 정치권의 책사

손덕호 기자
입력 2019.07.16 17:19 수정 2019.07.16 17:38
16일 산에서 숨진 채 발견된 정두언(62) 전 새누리당 의원은 이명박 정권 탄생의 1등 공신으로 꼽힌 정치권의 책사(策士)였다. 하지만 정치적 소신이 뚜렷하고 개성이 강해 이명박 정권 출범 직후부터 정권 주류 그룹과 불화를 겪었다. 지난 2016년 20대 총선 때 서울 서대문을에서 낙선한 뒤 방송 출연과 일식당을 운영하며 제2의 인생을 살아왔지만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했다.

16일 숨진 채 발견된 정두언 전 새누리당 의원. /연합뉴스
서울에서 태어난 정 전 의원은 창서초등학교와 배문중, 경기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상대 무역학과를 졸업했다. 1980년 제24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직의 길로 들어섰다. 주로 총리실에서 근무했고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0년 2월, 국무총리 공보비서관을 끝으로 공직을 떠났다.

이후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의 권유로 정계에 입문했다. 2000년 4월 치러진 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서울 서대문을 선거구에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패배했다. 이후 이명박 전 대통령의 권유로 서울시장 선거캠프에 합류했다. 이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에 당선되면서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맡았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서울 서대문을에서 당선돼 국회에 입성했다. 이후 이 곳에서 18·19대 총선에서 당선됐다.

2007년 대선 때는 이 대통령의 대선 경선 전략기획 총괄팀장을 맡아 대선 밑그림을 그렸다. 한 야당 관계자는 "현 여권으로 치면 지난 대선 때 양정철씨 같은 역할이었다"고 했다.

정 전 의원은 이명박 정부 출범의 일등공신으로 꼽히며 '왕의 남자'라고 불렸지만 이명박 전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전 의원의 불출마를 요구하던 '55인 파동'을 주도한 뒤, 정권 주류진영에서 밀려났다. 그는 2012년 임석 전 솔로몬저축은행 회장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구속 수감되기도 했었다.

이후 대법원에서 전부 무죄 취지의 판결을 받고 정치적으로 재기했다. 하지만 20대 총선 때 4선 도전에 실패했다. 이후 정 전 의원은 종편 패널로 출연하고 일식집을 운영하며 새로운 인생을 살았다. 하지만 순탄치 않은 정치적 행로를 겪으면서 심리적 내상(內傷)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 전 의원과 가까운 한 의원은 "노래와 시를 좋아하던 정 전 의원이 거친 정치 세계에서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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