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원·이세돌, 3년 만에 갈등 재점화

이홍렬 바둑전문기자
입력 2019.07.16 03:00

[화요바둑]
이세돌 "기사회 적립금 돌려달라" 내용증명 발송하고 소송 채비

이세돌 9단이 15일 농심배서 대국하는 모습. 최근 기사회 탈퇴와 관련해 법적 해결을 시도하고 나섰다. /한국기원
3년여 동안 어정쩡하게 봉합돼 있던 프로기사들의 기전 참가 자격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한국기원은 지난 주말 임시이사회를 열고 ①한국기원 입단 절차를 통해 전문 기사가 된 자는 입단과 동시에 기사회 회원이 된다 ②한국기원이 주최·주관·협력·후원하는 기전에는 기사회 소속 기사만 참가할 수 있다는 조항을 정관에 신설했다.

이 사안의 중심엔 이세돌(36) 9단이 있다. 그는 2016년 5월 프로기사회를 향해 "친목 단체에 불과한 조직이 설립 목적에서 벗어나 회원들에게 족쇄를 채우고 있다"고 비판하고 기사회 탈퇴서를 제출했다. 한국기원이 기사 수입에서 떼는 10~15%의 발전기금과 별도로 기사회가 적립금 명목으로 또 공제(국내 기전 5%, 외국 주최 기전 3%)하는 제도를 문제 삼았다.

당시 기사회는 "한국기원이 협의해 결정할 문제"라며 즉시 해결을 미뤘고, 이세돌이 제출한 기사회 탈퇴서 수리도 보류했다. 이 9단은 이후 3년 동안 국내외 각종 기전에 제약 없이 출전해왔다. 문제는 한국기원이 이 기간 동안 이세돌의 대국 수입 적립금 일부를 지급하지 않고 '보관'해 왔다는 점. 그 규모는 3200만원으로 알려졌다.

이세돌 측은 이 돈을 지급하라고 몇 차례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법적 해결에 나서기로 하고 최근 관련 내용증명을 한국기원에 보냈다. 이세돌 측 조언을 맡고 있는 손수호 변호사는 "상금 적립금 문제는 다른 많은 기사의 문제이기도 하다. 한국기원의 무성의 탓에 법정 공방으로 이어지게 돼 안타깝다"고 했다. 사태가 급진전하자 한국기원이 황급히 내놓은 대책이 이번 정관 수정이다.

이세돌은 인공지능 알파고와의 대결, 구리와의 10번기 등 세계 최고 이벤트에 출전했고 6개월 휴직을 거치는 등 '풍운아'의 길을 걸어온 기사. 이번 사태를 보는 시선은 극단적으로 엇갈린다. 팬들의 댓글은 이세돌에게 우호적인 내용이 우세하다. 특히 기사회 강제 가입 규정과 이중 징수를 비판하는 글이 많다. 일부 고소득 기사에게 기사 수백 명의 복지 부담이 쏠리는 구조가 불합리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반대쪽에선 특정 기사를 예외로 인정할 경우 영세 구조로 간신히 지탱해온 바둑계가 하루아침에 무너질 것을 염려한다. 익명을 원한 한 프로기사는 "최정 상권 기사들은 바둑계 최대 수혜자이며, 기존 전통을 따르는 것으로 은혜를 갚아왔다. 이세돌에게 동조하는 기사는 극소수"라고 했다.

한국기원이 신설한 기전 출전 자격 규정이 발효되려면 문화체육관광부의 승인을 거쳐야 한다. 바둑계엔 이 문제가 법정까지 가기 전 대화를 통해 마무리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많다. 7월 한국 랭킹 10위에 올라있는 이세돌은 15일 이호승과 농심배 예선 대국을 소화하는 등 현재 정상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조선일보 A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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