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폐기 시한 명시 없는 核 동결은 '핵보유 인정'과 같아

입력 2019.07.11 03:18
미 국무부 대변인이 워싱턴 외교가와 언론에서 제기하는 북핵 동결론에 대해 "동결은 (비핵화) 과정의 입구"라며 "입구에서 (동결을) 확실히 보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미국은 북 대량살상무기(WMD)의 완전한 제거를 원한다" "동결은 (비핵화) 해결이나 끝이 될 수 없다"는 기존 입장을 반복하기는 했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핵 동결이 비핵화 입구'라고 공개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동결은 고철이나 다름없는 영변 핵 시설 정도만 가동 중단하고 은밀한 곳에 쌓여 있는 핵탄두·물질은 건드리지 않는 것이다. 미·북 실무 협상을 앞두고 스티븐 비건 미 북핵 대표가 이전과 달리 '유연한 접근' 방식을 강조한 상황에서 미국이 비핵화 협상 기준을 낮추는 것 아니냐는 의심과 우려가 제기된다.

북핵 동결론은 뉴욕타임스가 미·북 판문점 회동 직후인 지난달 30일 '미국이 새로운 협상에서 북핵 동결에 만족할 수도 있다'는 제목의 기사를 실으면서 불거졌다. 동결이 애초 목표였던 'FFVD(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에는 크게 못 미치지만 내년 트럼프 대선용 카드로는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워싱턴포스트도 4일 칼럼에서 북핵은 "'스몰딜'이 유일한 외교적 방법"이라고 했다. 김정은이 완전 핵 폐기와 제재 해제를 맞바꾸는 '빅딜'을 완강하게 거부하는 만큼 동결 수준의 '스몰딜'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이제 미 정부까지 '핵 동결'을 입에 올리고 있다.

북이 보유한 핵무기·물질·시설을 하루아침에 없애기는 어렵다. 동결을 포함해 신고·검증·반출·폐기 등 여러 단계를 거치는 데 시간이 걸린다. 중요한 건 '모든 핵 폐기'를 '단기간 내' 실천한다는 명백한 합의를 하는 것이다. '단기간'은 합의 후 2년 안팎으로 보는 것이 상식이다. 비핵화라는 어두운 터널에서 입구만 정해놓고 출구까지의 로드맵과 시간표가 없으면 헤매다 길을 잃게 된다. 북이 동결만 해놓고 핵탄두를 움켜쥔 채 시간을 끌면 핵보유국이 된다. 파키스탄이 그랬다.

미 싱크탱크 북핵 전문가는 8일 "트럼프 행정부가 북을 핵보유국인 것처럼 대하고 있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판문점 공개 발언에서 핵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던 점을 주목했다. 김정은이 핵·미사일 도발을 다시 할 것처럼 협박하며 핵 동결 카드를 받으라고 하면 재선에 목을 매는 트럼프가 맞장구를 칠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가 핵 동결 합의를 과대 포장하고 완전 폐기 시한 명시를 포기하면 한국은 북핵 인질이 된다. 이를 막아야 할 한국 정부는 오히려 그 길로 가자고 하는 것 같다.


조선일보 A3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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