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기업을 최전선에 내세우면 안 된다

입력 2019.07.11 01:45
문재인 대통령이 일본의 경제 보복과 관련해 기업인 30여명을 청와대로 불러 간담회를 가졌다. 문 대통령은 "전례 없는 비상 상황인 만큼 정부와 기업이 상시 소통하고 협력하는 비상 대응 체제를 갖출 필요가 있다"면서 "기업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간담회가 끝난 뒤 참석자들 사이에선 "왜 불렀는지 모르겠다" "사진 찍기용이냐"라는 불만이 나왔다고 한다.

정말 허심탄회하게 처한 상황을 털어놓는 기업인도, 진지한 대화도 없었다고 한다. 애초에 간담회 형식 자체가 '보여주기식'이었다. 청와대·정부 관계자까지 50명 가까이 참석한 자리에서 기업인 '1인당 3분 이내' 발언 시간이 주어졌다. 솔직한 심정을 토로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무역 규제와 관련없는 금융인들이 "벤처 투자 열심히 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지금 일본은 한국 경제의 버팀목인 반도체 목을 치밀하게 조여오고 있다. 그에 비해 우리 정부의 대응은 미덥지 못하다. 일본 측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화학물질 관리에 대한 한·일 간 대화가 중단됐다'고 주장하자 곧바로 산업통상자원부는 '작년 6월 회의하려 했는데 일본 측 담당 국장이 공석이어서 못했다'고 반박했다. 그런데 이틀 만에 우리 측 주장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부끄러운 일이다.

일본이 화학물질이 북한으로 넘어갔을 수 있다고 흘리자 정부는 '근거를 대라'고 했다. 그런데 지난 5월 산업통상자원부가 국회에 화학물질이 제3국으로 넘어갔을 수도 있다는 자료를 제출했다고 한다. 물론 북한 관련은 아니다. 하지만 정부 대응은 달라야 한다. 스스로 국회에 제출한 자료도 모르는 것 같다. 일본의 경제 보복 발표 이후 정부의 첫 움직임이 기업 임원들에게 "(일본의 보복을) 왜 사전에 파악하지 못했느냐"고 물은 것이었다.

지금 이 사태를 만든 것은 법원과 정부다. 법원은 한일청구권협정과 달리 일본 기업에 대한 개인의 청구권을 인정해 일본의 반발을 불렀다. 현 정부는 이 외교 갈등을 풀기 위해 고심한 전 정부와 법원을 사법 농단이라고 수사해 감옥에 넣었다. 그렇다면 문제도 정부가 나서서 풀어야 한다. 피해자일 뿐인 기업을 전면에 내세우면 방어 수단이 없는 기업이 직접 표적이 된다.


조선일보 A35면
말모이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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