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하나원 20주년 취재도 봉쇄, 北 눈치 이렇게까지 보나

입력 2019.07.10 03:18
통일부 산하 탈북민 정착 교육기관인 하나원의 20주년 기념식이 열린 경기도 안성 하나원 입구에는 흔한 플래카드 하나 없었다. 통일부 장·차관과 남북하나재단 이사장(차관급)은 모두 불참했다. 보안 시설이라는 이유로 언론 취재는 봉쇄됐고 기념행사 사진 한 장도 공개되지 않았다. 10주년 행사 때는 전·현직 통일장관들은 물론 경기지사, 국회의원, 취재진이 대거 참석했었다. 통일부는 "기념식을 간소하게 내실 있게 치르기 위해서"라고 했다. 하나원 기념식 치르는 게 알려질까 봐, 그래서 "탈북민은 배신자"라는 북이 불쾌해할까 봐서라는 게 솔직한 심정일 것이다.

역대 통일장관들은 취임 직후 예외 없이 하나원을 방문했지만 김연철 장관은 4월 취임 이후 한 번도 찾지 않았다. 전임 조명균 장관도 취임 닷새 만에 하나원을 갔었다. 탈북민이 정부에 어떤 존재인지는 얼마 전 북한 목선 사건이 잘 보여줬다. 청와대 수석은 "(북한 목선의 주민) 4명이 다 귀순 의사를 갖고 넘어왔다면 그것이 보도됨으로써 남북 관계가 굉장히 경색됐을 것"이라고 했다. 2명만 귀순하고 2명은 북으로 돌아가 줘서 그나마 다행이라는 투다. 북한 체제에서는 못 살겠다며 자유를 찾아 목숨을 건 항해를 한 우리 동포를 성가신 존재로 보는 것이다. 3만명이 넘는 탈북민에 대한 애물 취급이 하나원뿐이겠는가. 정부 차원의 탈북 단체 지원이 줄면서 한 단체 대표는 운영비를 마련하느라 대리 운전을 뛴다.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가 세운 단체는 올해 20주년 행사도 포기했다.

탈북민의 성공적인 대한민국 정착은 폭압적인 북한 체제에서 신음하는 주민들에게 통일에 대한 희망을 준다. 또 북 체제를 최근까지 경험해서 내부 사정을 꿰뚫고 있는 그들은 통일 준비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할 일꾼들이기도 하다. 그래서 역대 정부들은 탈북민들을 통일의 마중물로 환영하고 대접해 왔다. 남북 이벤트에 명운을 걸고 김정은 심기를 살피는 정부에 그런 기대까지는 안 한다. 그러나 생사의 경계선을 넘어 대한민국을 선택하는 사람들을 돌보는 건 헌법적 의무다. 더구나 하나원은 정부가 원조 햇볕 정권이라며 떠받드는 김대중 정부 때 설립됐다. 그 20주년 행사를 축하까지는 못 해줄지언정 취재까지 못 하도록 막았어야 했나.
조선일보 A31면
말모이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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