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에서 일주일 살아보니…백화점 할인점 상가 텅비고 미분양 아파트 넘쳐

창원=김문관 이코노미조선 차장, 정미하 이코노미조선 기자
입력 2019.06.30 06:00 수정 2019.07.01 08:58
[이코노미조선]
폐업·업종변경…" IMF보다 더해"
기계 산업 끝단인 공구상가 한산
부동산도 공실 넘쳐

왼쪽부터 롯데백화점 창원점 내부, 마산시외버스터미널 지하상가, 롯데백화점 창원점 외관, 창원 상남동 초입. /김문관 차장, 정미하 기자
일요일인 5월 26일 오후 1시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오동동 아귀찜 골목. 이곳에서 영업한 지 50년이 넘은 유명 노포에 들어섰다. 열 자리 중 세 자리는 비어 있었다. 식당 지배인은 "그나마 주말이라 타지에서 관광객들이 많이 온 편"이라며 "평일 오후에는 빈자리가 훨씬 더 많다"고 했다. 그는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오동동이 다 죽었다"고 덧붙였다. 이 식당의 올해 매출액은 전년 대비 30% 이상 급감했다.

같은 날 오후 6시 40분, 창원시 중심가인 상남동 분수광장 바로 앞 1층에 자리 잡은 대형 고깃집은 빈자리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 가게 사장은 "15년간 같은 자리에서 감자탕 전문점을 하다가 작년부터 장사가 너무 안 돼 최근 업종을 변경했다"라며 "불황을 극복하기 위한 선택이었지만 개점 효과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걱정도 된다"고 말했다.

오후 7시 고깃집 인근 상남동 중앙시장 내부 대형 수퍼마켓에는 손님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이 가게를 30년간 운영했다는 사장은 "중심가인데도 요즘 장사가 너무 안 된다"며 "조금 심하게 말하면 시장 상인 절반 이상이 가게를 내놓은 상황"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가뜩이나 지역 경기가 위축된 상황에서 최저임금 인상 직격탄을 맞아 2년 동안 단 하루도 쉬지 못했다"며 "IMF 시절조차 ‘열심히 일하면 희망이 보인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지금은 죽어라 일만 해도 눈앞이 캄캄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창원시는 5월 3~6일 소비 촉진을 위해 ‘블랙데이’ 행사를 열었다. 전통시장부터 하나로마트·이마트·롯데마트와 같은 대형마트, 백화점를 살리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이코노미조선’이 만난 지역 유통업계 종사자들은 "창원 제조업 경기가 살아나지 않는 한 블랙데이 같은 일시적인 행사는 효과를 보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이코노미조선’이 5월 26일부터 일주일간 창원 현지에서 살아보며 지켜본 지역경제는 매우 위축된 모습이었다. 유명한 상남동 유흥가도 우울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과거 창원시는 전통 오일장인 상남동 중앙시장을 현대화하는 방법의 하나로 도시환경정비사업에 들어갔다. 이어 2003년부터 상남동에 유흥업소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 결과 상남동에는 19만8000㎡(약 6만 평)에 달하는 유흥밀집지역이 만들어졌다. 이곳은 ‘한강 이남 최대 유흥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거대한 규모였다. 지역주민은 물론 창원국가산업단지에 위치한 기업 직원들이 모여든 덕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지역경제 위축으로 인해 예전 같지 않은 모습이다. 상남동 중심가에서 영업 중인 A부동산 사장은 "예전에는 상남동 유흥가에서 많은 돈을 쓰는 ‘창총(창원총각)’이라는 은어가 있었을 정도로 번성했었다"면서도 "최근에는 오가는 사람이 크게 줄었다. 한강 이남 최대 유흥가라는 말은 이미 옛날얘기"라고 했다. 한창 영업할 시간인 밤에도 불이 꺼진 가게들이 실제로 많았다.

상남동을 벗어난 다른 번화가 상가들의 상황은 더 좋지 않았다. 창원 시청 인근인 용호동 정우상가 2층에 있던 한 갈비탕 전문 식당은 장사가 안 돼 최근 폐업했다. 현재 정우상가 1층에는 1개, 2층에는 2개의 공실이 있다. 정주영 용호상업지역 상가연합회장은 "최근 6개월 동안 상가 세를 내렸지만 들어온다는 사람이 없다"며 "창원 중앙동 상권은 이미 오래전에 죽었고, 상남동과 용호동도 시원치 않다"고 했다.

정우상가 내 33㎡(10평)짜리 가게는 보증금 3000만원에 월세 100만원을 내야 한다. 6개월 전에는 보증금 3000만원에 월세 140만원이었다.

정 회장은 "인건비와 월세를 감안하면 하루에 40만원씩, 한 달에 1200만원은 벌어야 하는데 지금 상황에선 불가능하다"라며 "2층에 식당을 하겠다는 사람이 찾아오면 오히려 말리고 있다"고 말했다. 정우상가 맞은편 건물 2층은 3년째 텅 비어 있다. 바로 옆 고운치과 건물은 올해 봄 리모델링을 완료했지만, 입주할 사람을 찾지 못하고 있다.

창원 시민의 대표적 휴식처인 용지문화공원 인근 상가도 장사가 안 돼 울상이었다. 용지문화공원에서 100m 거리에 있는 라이크빌 상가는 1층에 있는 유명 김밥 체인점도 손님이 별로 없었다. 5월 31일 점심시간, 이 식당에는 단 2명의 손님이 앉아 김밥 한 줄씩을 먹고 있었다. 라이크빌 상가 관리소장 임모씨는 "인근에 용지아이파크 등 아파트도 많지만, 유동 인구 자체가 줄었다"며 "그나마 저렴한 가격대의 음식을 파는 핫도그 가게만 장사가 잘된다"고 했다. 같은 날 오후 1시부터 30분 동안 핫도그 가게를 다녀간 손님은 불과 6명에 불과했다. 이들 중 4명이 1000원짜리 기본 핫도그를 사들고 가게를 빠져나갔다.

마산 시외버스터미널 지하상가. /정미하 기자
대형 백화점 매출도 급감…명품 매장은 철수

창원 일대 백화점 매출액도 급감하는 추세다. 롯데백화점 창원점은 6년 전부터 한 해도 빠짐없이 전년 대비 매출액이 줄고 있다. 롯데백화점 창원점은 2009년까지만 해도 매해 5%씩 매출액이 증가했었다. 하지만 2014년부터 매출액이 줄기 시작하면서 2016년부터 2018년까지 매년 전년보다 매출액이 2% 정도씩 감소했다.

롯데백화점 창원점 관계자는 "STX조선해양이 구조조정을 하고 창원 인구가 인근 김해 등지로 빠지기 시작하면서 매출액이 줄었다"고 말했다. 백화점 내 여성 의류 매장 매니저는 "거제 등 경남 일대 공단 노동자들이 창원에 와서 쇼핑을 하곤 했는데 요즘은 뜸하다"며 "조선업 경기가 좋지 않아서 그런지 외부에서 오는 사람들이 줄었다"고 했다.

신세계백화점 마산점도 롯데백화점 창원점과 비슷한 상황이다. 신세계백화점 마산점 매출 증가율은 2012년부터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신세계백화점 마산점 관계자는 "2012년도 매출액이 전년 대비 3% 줄어든 것을 시작으로 2017년에 매출액은 1년 전보다 무려 14%나 감소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백화점 내 유일한 명품 매장이었던 버버리는 매출액이 기대에 못 미치자 최근 매장을 철수했다"고 덧붙였다.

현재 창원 유통가의 ‘뜨거운 감자’는 신세계가 운영하는 대형 복합 쇼핑몰 스타필드의 입점 여부다. 창원 지역 중소상인은 스타필드가 들어올 경우 지역 상권이 초토화된다며 입점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스타필드 입점 예정부지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마산 시외버스터미널 지하상가 관계자들도 입점 반대편에 서 있다. 마산 시외버스터미널 지하상가 관계자는 "2017년 말부터는 권리금이 없어졌을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은 마당에 스타필드가 들어오면 타격이 클 것"이라고 했다.

부동산 경기도 심각한 상황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4월 말 기준 창원의 미분양 아파트는 5892가구로 전국 시·군·구 단위 기준 전국 1위를 기록했다. 앞서 부영주택이 2016년 마산에 공급한 4298가구 규모의 월영부영아파트는 분양 당시 117가구만 분양되면서 건설사가 위약금을 주고 계약을 취소한 바 있다.

창원시청이 있는 의창구에 위치한 다원부동산의 서윤호(61) 사장은 "아파트 연령이 20년 이상인 경우 1년 전보다 매매가가 평균 1억~1억2000만원 하락했다"며 "급매 위주 거래만 이뤄지면서 부동산 매출(복비)도 20%가량 줄었다"고 말했다. 인근에 위치한 다른 부동산의 이모(50) 사장은 "집값이 떨어지면서 창원 사람 10명 중 7~8명은 매매를 주저하고 있다"며 "2015년 2억7000만원에 거래되던 용호무악아파트 20평대가 2016년부터 1억7000만원으로 떨어진 뒤 오를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창원 아파트 매매 가격은 4월 둘째 주까지 172주 연속 하락세를 기록하고 있다.

◇plus point

기계 산업의 ‘끝단’ 공구상가도 한산

김문관 차장, 정미하 기자

창원공구상가 전경. /정미하 기자
기계 산업 끝단인 창원공구상가도 한숨으로 가득했다. 제조업 중심지 창원에서 1990년대 중반부터 자연스럽게 형성된 공구상가단지 종사자는 10년 전인 2009년에는 2000여 명, 연매출은 2000억원에 달했다. 공구상가는 공장 가동률이 높아질수록 필수적으로 필요한 공구와 윤활유, 톱니바퀴 등 소모품을 더 많이 공급해야 해 매출이 증가하고 종사인력이 느는 속성이 있다. 그러나 최근 제조업이 침체되다 보니 매출액이 30~40% 감소한 가게들이 많다.


‘이코노미조선’이 찾은 창원시 팔용동 기계공구상가는 매우 한산한 모습이었다. 이곳에 있는 오성연마 박찬호(41) 과장은 "인근 거제, 사천 등지에서도 창원으로 공구를 사러 오기 때문에 조선소 경기에도 영향을 받는다"며 "2년 전부터 매출액이 30~40% 줄었다"고 말했다. 오성연마는 조선소에 납품하는 연마제(금속, 유리 등의 표면을 깎거나 닦는 데 쓰는 도구)를 주로 취급하고 있다. 박 과장은 "최근 조선소 수주 상황이 개선됐다고는 하지만, 공구상가 매출액이 늘어나려면 2020년 3분기는 돼야 할 것 같다"라며 "앞으로 항공 산업에서 많이 쓰이는 공업용 수세미 등을 취급하는 것을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어 "전문성 없이 잡자재와 잡공구를 파는 가게는 이미 폐업하기 시작했다"고 귀띔했다.

기계공구상가에서 40년 동안 소매 중심으로 장사한 김모(79) 사장도 "2년 전부터 부쩍 장사가 어려워져 매출액이 30% 정도 줄었다"며 "볼트와 너트를 주로 팔고 있는데 소매상이 어려워졌다는 건 공장도 도매상도 모두 어렵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김 사장의 부인은 "옆 가게는 사장이 갑자기 암에 걸리자 아예 가게 문을 닫았다"며 "한창 장사가 잘되던 시기였다면 사람을 써서라도 장사를 했을 텐데, 인건비도 나오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했다.

마산수출자유지역 인근 산호동 공구상가단지에서 수출용 컨테이너 관련 자재와 공구를 전문적으로 납품하는 태흥공구상사의 김병철(35) 사장은 30년간 이곳에서 일한 부친의 가업을 승계했다. 김 사장은 "최근 수출액이 감소하고 있어 가게 매출액이 줄어들고 있다"며 "조선업 경기 회복 등을 기대하고 있지만, 아직 눈에 띄는 변화는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plus point

한때 노래방 최대 밀집지, 세 낮춰도 안 나가

정미하 기자

창원 최대 번화가인 상남동 일대 노래방에는 사람 목소리보다 노래 전주만 흘러나오는 곳이 많았다.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한 5월 29일 오후 8시, 상남동 일대 노래방과 주점 사장들은 형형색색의 간판에 불을 켜고 손님을 기다렸다. 그러나 정작 상가 건물 안은 한산한 편이었다. 상남시장에서 100m 거리에 있는 ‘크크크노래연습장’의 정모(59) 사장은 "노래연습장에는 5개의 방, 주점에는 4개의 방이 있는데 지금 한 군데만 손님이 들어가 있다"며 "1년 전에는 이 시간이면 방이 없어서 손님을 못 받을 정도였다"고 했다.

정 사장은 "6년 동안 노래방을 운영했는데 3년 전부터 동전노래방(코인노래방)이 생기면서 장사가 되지 않기 시작하더니, 인근에 폐점하는 노래방도 생겼다"고 말했다. 과거 상남동은 낮에 기계와 씨름하던 사람들이 밤에 흥을 쏟아내던 곳이었다. 상남동 중앙시장 인근의 5~6층짜리 건물에는 한 층에만 2~3개의 노래방이 있는 경우도 많다. 상남동 대신빌딩 5층에 있는 ‘순수노래연습장’의 박모(58) 사장은 과거에는 유치원 원장이었다. 2003년부터 소유하고 있던 노래방 점포세가 나가지 않자, 8년 동안 운영하던 유치원을 접고 지난해 3월부터 노래방 주인을 하고 있다. 박 사장은 "3년 전만 해도 보증금 4000만원에 월세 290만원을 받았다"며 "지금은 보증금 2000만원에 월세 200만원에 세를 내놔도 나가지 않는다"고 했다.

노래 주점을 찾는 손님 중에서 맥주, 소주 가격을 물어본 뒤 주문을 하지 않은 경우도 늘었다. 박 사장은 "지난해 4~5월에만 해도 오후 5시가 되면 퇴근하고 온 사람들로 상남동이 북적였다"며 "불과 1년 만에 상남동 거리에 사람 자체가 줄었다"고 말했다.

◇plus point

마·창·진 출신 문화 예술인·기업인은

정미하 기자

창원통합시에 포함된 마산은 예향(藝鄕·예술을 즐기는 사람이 많고 예술가를 많이 배출한 곳)으로 불린다. 예향이라는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섞여 있다. 마산 출신 예술가도 많고 마산을 거쳐 간 예술가도 많다는 뜻이다. 조각가 문신은 마산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문신은 일본과 프랑스에서 유학한 뒤 1980년에 마산으로 돌아와 합포구 추산동에 ‘문신 미술관’을 세웠다. 문신이 숨지고 미술관은 마산에 기증됐다. 가요 ‘아빠의 청춘’ ‘불효자는 웁니다’ ‘울고 넘는 박달재’ ‘만리포 사랑’의 작사가 반야월(본명 박창오)과 일제 시대 시인 권환도 마산 출신이다. 마산에서 결핵을 치료하고 요양하면서 작품을 남긴 문인도 많다. 이들 작품을 ‘결핵 문학’이라고도 부른다. 1920~30년대에는 문인 나도향과 임화가, 1970년대에는 시인 김지하가 마산에서 치료를 받았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쉬리’를 만든 강제규 감독도 마산이 고향이다. 천하장사 출신 방송인 강호동은 마산중학교와 마산상업고를 졸업했다. 경제·기업인 중 마산고등학교를 나온 사람도 적지 않다. 허민회 CJ ENM 대표이사, 김태호 서울교통공사 사장, 배종찬 전 풀무원 대표이사, 임창섭 전 하나대투증권 사장, 이근포 전 한화건설 사장, 김외곤 전 태영건설 사장, 김병효 현대엘리베이터 부사장이 마산고를 졸업했다. 어윤대 전 KB금융지주 회장은 진해, 김철하 CJ제일제당 부회장, 노환용 전 LG전자 사장은 창원에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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