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전쟁 견뎌낼 것' 자신하는 중국의 숨은 딜레마

베이징=오광진 특파원
입력 2019.06.26 11:27 수정 2019.06.26 11:58
장면 1: 중국 인민은행과 은행보험감독관리위원회는 지난 24일 처음으로 ‘중국 소기업 금융서비스 보고서(2018)’를 발표하고 설명회를 가졌다. 단일 대출규모가 1000만위안(약 17억원) 이하인 소기업과 자영업자에 대한 대출 잔액이 5월말 기준 10조 3000억위안(약 1751조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1%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작년말에 비해 증가율이 5.8%포인트 확대된 것이다.

저우란(鄒瀾) 인민은행 금융시장사 부사장(부국장)은 "소기업에 대한 대출이 비교적 빠르게 늘고 있고, 신용대출을 받는 소기업도 늘고 있다"며 "소기업 대출에서 차지하는 무담보 신용대출 비중도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중국 경제 아킬레스건으로 꼽히는 민영 중소기업 자금난 해소 정책이 효과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미⋅중 무역협상 중국측 대표인 류허 부총리는 거대한 내수시장이 추동하는 경제구조로의 전환이 외부 충격에 강한 체질을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지난 13일 상하이 포럼에서도 이같은 주장을 폈다. /중국경제망
장면 2: 지난 13일 상하이에서 열린 루자주이(陆家嘴) 포럼 연단에 선 류허(劉鹤) 중국 부총리. 미⋅중 무역협상의 중국측 대표이기도 한 그는 보통 국가급 지도자들과 달리 PPT를 보여주며 강의하듯이 중국 경제 상황을 조목 조목 설명했다. 류 부총리는 "중국의 경상수지 흑자가 전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글로벌 금융위기 발생(2008년) 이전에는 10%를 넘었는데 지금은 0.4% 안팎으로 하락했다"며 "해외 수요(수출) 중심에서 국내 거대시장이 (경제성장을) 추동하는 방향으로 경제구조가 바뀌고 있다"고 강조했다. 무역전쟁에도 중국 경제가 버틸 체력이 된다는 중국 당국의 주장 근거인 ‘내수시장의 힘’을 부각시킨 것이다.

민영경제의 회복과 내수시장의 힘은 중국 당국의 경제 자신감을 받쳐주는 핵심 근거다. 하지만 이들 자신감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중국 경제의 딜레마를 마주하게 된다. 중국이 미국과의 무역협상에서 굴복하지 않을 수 있다고 내세우는 자신감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는 얘기다.

미⋅중 무역협상 대표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28,29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정상회의에서 따로 만나기로 합의한 가운데 지난 24일 전화통화를 시작으로 5월초 이후 중단된 협상을 재개하기로 했다.

♢중소은행 자금난 차단...금융기관 시장화 개혁과 충돌

지난 5월 중국 금융당국이 바오상은행 경영권을 접수하자 중소은행 자금난이 확산되면서 민영 중소기업 자금난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바오상은행 베이징 지점 /베이징=오광진 특파원
리커창 중국 총리는 지난 3월 열린 올해 정부업무보고에서 국유 대형 상업은행의 소기업 대출을 30%이상 늘리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대출 목표를 적시한 것은 이례적이어서 중국 당국이 주창해온 시장화 개혁과는 배치된다는 지적이 따랐지만 성과는 있었다.

올들어 5개월간 이뤄진 중국 전체 소기업 대출은 8169억위안(약 138조 87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보다 4714억위안(약 80조 1300억원) 더 늘었다. 해당 소기업도 224만개 더 늘어 전년 동기 대비 10% 이상 증가했다. 소기업의 융자비용은 작년부터 이미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지난해 4분기 6개 국유 대형은행과 18개 주요 상업은행이 소기업에 내준 대출 평균 금리는 작년 1분기에 비해 각각 1.11%포인트, 1.14%포인트 하락했다.

소기업 자금난 해소는 성과를 보였지만 부실채권이 늘어나는 등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뒤따랐다. 1000만위안 이하 소규모 대출 전체 잔액의 부실채권 비중은 지난 5월말 5.9%로 대기업보다는 4.5%포인트, 중간 규모 기업보다는 3.3%포인트 높았다.

소기업 자금난 해소 정책의 지속 가능성을 가로막는 또 다른 장애물로 중소은행 자금난이 급부상했다. 소기업 대출은 주로 중소은행이 해주는데 지난 5월 24일 민영 중소은행 바오상(包商)은행을 중국 당국이 경영관리하기 시작하면서 중소은행 자금난이 불거졌다. 인민은행과 은행보험감독관리위원회의 바오상은행 경영권 접수는 1998년 하이난(海南)발전은행 이후 20년만의 중국 은행 몰락이라는 점에서 금융시장에 불안감을 몰고 왔다.

바오상은행에 자금을 빌려준 은행이나 대형 증권사들은 당국으로부터 대출자금의 10%를 떼이게 될 것이라는 통지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로 인해 은행간 자금시장에서 금리가 오르고 담보 자산을 대출의 2배 수준까지 요구하는 사례까지 나왔다. 중국 은행간 자금시장에서 한달 만기 환매조건부채권(Repo)금리가 바오상은행 사태전 3% 안팍에서 5.28%(6월 17일)까지 올랐다. 중국에서 하루에 3조 3000억위안(약 561조원)이 거래되는 Repo 시장은 중소은행과 비은행 금융기관들의 주요 자금줄이다.

니콜라스 주 무디스인베스터서비스 애널리스트는 "중소은행 리스크가 비은행 금융기관으로 확산되고 있다"며 "중소은행보다 비은행 금융기관 리스크가 더 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중소은행은 최종적으로 인민은행으로부터 직접 자금을 수혈받을 수 있지만 비은행 금융기관은 이런 채널이 없다는 것이다.

바오상은행처럼 최근 재무보고서를 공개하지 않은 중소은행들의 이름이 거론되며, 제2, 3의 바오상은행이 나올 것이라는 관측이 이어진 배경이다. 중국 당국은 바오상은행은 개별적인 사건이라고 강조하고 다른 중소은행의 신용 리스크는 없다고 강변하고 나섰다.

바오상은행 사태가 중국의 금융위기로 직결될 것이라는 우려는 과장됐다는 지적이 많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바오상은행 사태가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한 리만브라더스 사태처럼 되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문제는 당국이 시장을 설득시키지 못하자 비시장적인 구두 개입을 시작한데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주 증권감독관리위원회가 대형 은행과 증권사를 개별적으로 호출해 비공개 미팅을 갖고 은행간 자금시장에서 계속 자금을 대주고, 담보에 대해 과도한 요구를 하지 말라는 지침을 내렸다고 전했다.

바오상은행의 경영권 접수 이후 당국의 행보는 금융기관도 망할 수 있는 시장시스템을 만들겠다는 당국의 주장과 배치된다. 판궁성(潘功胜) 인민은행 부행장은 "중국 상황에 맞는 금융기관 리스크 처리와 파산시스템을 서둘러 만들겠다"고 말한다. 금융기관 파산시스템 도입이나 국유기업 채권까지 디폴트(채무 불이행)를 용인하고 나선 것은 시장화 개혁 방향과 맥을 같이한다. 정부가 뒤에서 책임주겠지 하는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해서도 필요한 개혁이라는 게 당국의 시각이다.

하지만 중국 경제를 떠받치는 소기업의 자금줄인 중소은행 자금난이 바오상은행 사태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자 다시 예전의 비시장적 수단에 의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비시장적 수단에 의존할수록 도덕적 해이 근절은 물론 경쟁력있는 금융시스템 구축은 요원해진다는 데 있다.

WSJ는 은행간 자금시장의 긴장이 완화됐지만 시스템이 여전히 충격에 취약함을 보여주고 있다며 자금 제공자와 수요자간의 불신이 증폭되면서 더 큰 문제로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내수시장 육성 집중...미국서 세계 최고를 다투는 혁신 동력 위축

장강경영대학원(CKGSB)이 조사하는 중국 민영중소기업의 단기 경기 상황을 반영한 경기상황지수(BCI)/CKGSB
류 부총리가 중국 경제의 자신감을 내세우면서 내건 PPT 자료 가운데 중국 언론들이 집중조명한 건 5개 곡선이 그려진 그래프였다. 1인당 GDP(국내총생산), 소비의 경제성장 공헌도, 도시화율, 서비스업의 경제성장 공헌도 등 4개 그래프는 시간이 갈수록 상승 곡선을 그렸다. 경상수지 흑자가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나타내는 곡선만 갈수록 아래로 떨어졌다.

류 부총리는 "중국 경제에 거대한 구조적 변화가 일어나며 재균형을 찾아가고 있다"며 "소비의 경제성장 공헌도가 76%에 이르고 서비스업의 경제성장 공헌도도 60%를 넘어섰다"고 설명했다. 중국의 거대 내수시장은 중국 당국과 관영 매체들이 미국의 관세폭탄에도 견딜 수 있다고 내세우는 근거이기도 하다.

하지만 내수시장 육성 쏠림은 오히려 혁신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톰 홀란드 컬럼니스트는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기고한 지난 24일 컬럼에서 "중국은 트럼프의 무역 폭풍을 견딜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단기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장기적으로는 힘들다"고 강조했다.

중국 당국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만 해도 35%에 달했던 GDP에서 차지하는 수출 비중이 지난해 18%로 줄어든 것을 근거로 중국 경제가 거대한 내수시장이 추동하는 구조로 바뀌었기 때문에 무역전쟁 같은 외부도전에 망가지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실제 올들어 5개월간 중국의 미국에 대한 수출은 전년 동기에 비해 150억달러 감소했다. 이는 지난해 중국 GDP의 0.1%에 불과한 수준이다. 트럼프의 관세폭탄이 중국 경제에 미칠 영향이 제한적이라는 얘기다.

홀란드는 그러나 "무역전쟁의 GDP 영향은 일면일 뿐이다"고 강조한다. 혁신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 기업들이 세계 최대 경제대국인 미국에 수출할 때는 세계 최고의 기업들과 경쟁하는 것으로 이 같은 경쟁은 중국 기업들을 더 혁신하게 하고, 생산성을 높이도록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이를 통해 쌓은 경쟁력은 중국내 일자리 창출과 소득증대로 이어져 중국 내수경제에도 긍정적인 외부효과를 가져왔다는 설명이다. 수출을 주도해온 민영기업들이 국유기업에 비해 덜 자금을 지원받는 구조에서도 중국 전체 일자리와 생산성 수준을 끌어올린 배경이기도 하다. 류 부총리가 수출 시장을 대체할 수 있다고 기대하는 내수시장은 사실 수출 덕분에 성장했다는 얘기다. 중국 당국은 무역전쟁이 기술전쟁으로 이어지면서 기술 자력갱생을 외치고 있지만 미국 시장을 잃는 건 혁신의 감퇴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미⋅중 무역전쟁에 따른 수출 위축은 중국에 장기적인 문제를 잉태할 수 있다. 현재 소득의 45% 수준을 은행에 맡기는 높은 저축률이 떨어지기 힘들고, 불확실성 고조로 민영기업들의 투자가 위축돼 결과적으로 저축이 실제 투자를 초과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민영기업 투자는 현재 중국 전체 투자의 60% 가량을 책임지고 있다. 민영기업 투자가 위축되면 이를 벌충하기 위해 국유기업이 투자를 늘리겠지만 생산성이 떨어지는 국유기업 투자는 장기적으로 성장의 질을 떨어뜨리고 금융리스크를 키울 것이라는 게 홀란드의 주장이다.

이미 민간투자는 약세를 보이고 있다. 올들어 5월까지 민간투자 증가율은 5.3%로 1~4월의 5.5%에서 0.2%포인트 둔화됐다.중국에서 민간투자 증가율은 전체 투자 증가율을 웃돌며 중국 투자를 견인하는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2016년 3.2%로 전년의 3분의 1수준으로 급락하면서 전체 투자 증가율의 절반에도 못미쳤다. 이후 민간투자 증가율이 회복세를 보이면서 지난해에는 8.7%를 기록해 3년만에 다시 전체 투자 증가율을 웃돌았지만 올들어 이를 다시 밑도는 쪽으로 급격한 둔화세를 보이고 있다.

중국의 장강경영대학원(CKGSB)이 조사하는 중국 민영중소기업의 단기 경기 상황을 반영한 경기상황지수(BCI)는 지난 5월 56.1로 전달 62.8에서 급락했다. 6개월간 지속되던 상승세가 하락세로 돌아선 것이다.

반면 중국 지방정부 채권 발행은 6월에 연중 최고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차이나데일리가 25일 보도했다. 이달들어 지난 21일까지 5940억위안(약 100조 9800억원)어치가 발행돼 6월 한달간 발행규모가 8000억위안(약 136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게 중국 시장조사기관 윈드의 전망이다.

지방정부 채권 발행으로 조달한 재원은 도로 철도 등 인프라 건설에 투입된다. 중국 당국은 올해 배정된 지방정부 채권을 9월말까지 발행도록 지시한 상태다. 지난 10일엔 지방정부 채권 발행으로 조달한 자금을 주요 인프라 프로젝트의 자본금으로 투입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를 발표했다.

대기업 위주 금융시스템 개선과 내수경제 주도로의 경제구조 전환은 중국 경제의 자신감을 뒷받침하는 변화다. 중소은행 자금난과 미⋅중 무역전쟁이 그변화에 중대한 도전을 던지고 있다.

3일의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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