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된장, 2016년 빈티지로 주세요”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입력 2019.06.25 10:00
[오래된 첨단 식품]① 전통장류에 빈티지 도입한 ‘죽장연’

죽장연 장독대에는 된장과 간장을 언제 만들었는지 ‘빈티지’를 적은 푯말이 장독항아리 사이사이 꽂혀있다. /김성윤 기자
맛·생산방식 전통 고수하되 소통·소비방식은 현대 소비자 맞춰 업데이트
된장·고추장찌개 HMR제품도 출시··· "아무리 좋아도 안 찾으면 무슨 소용"
청명한 초여름 하늘 아래 장독항아리 3000개가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이맘때 경북 포항에 있는 전통 장류업체 ‘죽장연’ 장독대에서 볼 수 있는 장관이다. 항아리 사이사이 꽂아둔 ‘2014년 된장’ ‘2015년 된장’ ‘2016년 간장’이라고 적힌 푯말이 눈길을 끌었다. 정연태(54) 죽장연 대표는 "된장과 간장의 빈티지(vintage·생산연도)"라며 "와인에서 사용하는 빈티지 개념을 된장·간장에 적용한 게 세계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비결이 됐다"고 했다.

죽장연은 포항에서도 차로 한 시간 넘게 들어가야 하는 첩첩산중에 있다. 2010년 설립해 2012년부터 장류를 생산했으니 역사가 엄청나게 깊달 수도 없다. 하지만 죽장연의 장맛은 세계적으로 알려졌다. 한국 음식점으로는 미국에서 처음 미쉐린 스타를 획득한 뉴욕 ‘단지(Danji)’, 미국 유명 요리사 그레고리 고데트(Godet)가 덴버와 포틀랜드에서 운영하는 레스토랑 ‘디파추어(Departure)’에서 죽장연의 된장·간장·고추장을 사용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최고의 식당으로 꼽히는 ‘베누(Benu·미쉐린 3스타)’는 이곳 메주를 사다가 직접 장을 담근다. 최근에는 홍콩 ‘시티수퍼’와 싱가포르 ‘마켓프라이스’·’페어프라이스’, 미국 브루클린 ‘말로우 & 도터스’ 등 고급 슈퍼마켓에도 입점했다.

장 담그는 방식은 전통을 고수하지만, 소통하고 소비하는 방식은 현대화·첨단화한 것이 죽장연이 짧은 기간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비결이다. 장 담그는 데 들어가는 재료는 전통 방식 그대로 콩·소금·물 딱 세 가지. 콩은 포항·청송 등 죽장연 인근 지역에서 생산된 것들이고, 소금은 오래 묵혀 간수를 뺀 천일염, 물은 죽장연 부지 내 지하 200m에서 끌어올려 정제한 암반수다. 콩은 70kg들이 무쇠가마솥에서 장작불로 삶는다. 메주는 농약 치지 않고 친환경 방식으로 쌀을 재배하는 농가로부터 얻은 볕짚으로 묶어 띄운다.

하지만 된장·간장의 맛을 이해시키는 방식은 현대의 소비자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새롭게 했다. 빈티지 개념 도입이 대표적이다. 죽장연 된장·간장 프리미엄 라인 제품에는 와인처럼 라벨에 빈티지 표시가 표기된다. 정 대표는 "와인과 된장이 매우 비슷하다는 점에서 착안했다"고 했다. "우선 된장과 와인 둘 다 대표적 발효식품입니다. 콩과 포도라는 재료만 다를뿐, 발효와 숙성을 통해 완성된다는 점에서 완전히 같습니다. 같은 와인이라도 빈티지별로 맛이 다른 것처럼, 된장도 연도별로 차이가 나더군요. 2011년산 된장은 맛이 깊고 여운이 긴 반면, 2014년산은 단맛(감칠맛)·신맛·짠맛 등 균형이 좋습니다."

죽장연 프리미엄 라인 제품에는 된장과 간장의 빈티지(생산연도)가 표기된다./김성윤 기자
서양 요리사들에게 익숙한 빈티지 개념으로 장류를 소개하자 훨씬 쉽게 이해했다. 해외 바이어들에게 전통 장류를 더 고급스런 이미지로 부각시킬 수도 있었다. "김훈이 ’단지’ 셰프는 ‘2012년산 된장 2kg, 2014년산 4kg 보내주세요’라는 식으로 구별해서 주문합니다. 김 셰프는 보다 가벼운 맛의 2012년산은 고기 재우는 양념으로, 묵직한 2014년산은 된장찌개 끓이는 데 사용하지요."

지난해 출시된 된장찌개 HMR 제품./죽장연
된장을 더 고급스럽게 해외 소비자들에게 이해시킬 수도 있었고, 오래 묵은 장을 더 비싸게 팔 수밖에 없는 이유도 이해시키기 쉬워졌다. "된장·간장을 장독에 보관하면 해마다 10% 정도 줄어들거든요. 와인도 오래될수록 비싼 이유가 물론 숙성을 통해 맛이 좋아지기도 하지만 양이 줄어들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입니다. 서양에서는 이걸 ‘천사의 몫(angel’s share)라고 부르죠. ‘된장=와인’이란 등식이 입력되자 가격 상승에 대한 저항감이 없어졌습니다."

죽장연에서는 지난해 12월 된장·고추장찌개 HMR(가정식 대체식품)제품도 내놓았다. 전통 장류업체에서 HMR을 내놓은 경우는 아직 드물다. "아무리 장이 좋아도 먹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겠어요? 갈수록 음식을 해먹지 않는 가정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쉽게 전통장을 먹을 수 있도록 HMR화했지요." 정 대표는 "다행히 괜찮은 반응을 얻고 있다" 며 "청국장, 강된장, 고추장·된장 양념 돼지불고기 등 다양한 HMR 제품을 앞으로 내놓을 계획"이라고 했다. 전통 장류의 시대와 트렌드에 맞춘 업데이트는 계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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