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만드는 시민들 '크라우드법 운동'

이희숙 변호사
입력 2019.06.25 03:01

[이희숙 변호사의 모두의 법]

이희숙 변호사
제러미 하이먼즈는 "초연결된 대중이 세상을 바꾸는 새로운 권력"이라고 이야기한다. 먼저 우위를 차지한 소수가 독점적 힘을 누리던 곳곳에 연대한 대중이 나타나 판을 바꾸고 있다. 에어비앤비가 힐튼을 넘어섰고, 할리우드의 신과 같았던 하비 와인스틴은 미투 운동으로 추락했다.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틈타 그들만의 리그로 가고 있던 입법의 영역에서도 이와 같은 새로운 흐름이 반영되고 있는데, 미국 뉴욕대 거버넌스 랩(Governance Lab)이 이끌고 있는 '크라우드법 운동'이 대표적이다.

크라우드법 운동은 2017년 베스 노벡(Beth Noveck)에 의해 처음 주창됐다. 집단적 숙의와 소통을 기반으로 집단지성을 모아 성안, 발의, 이행 및 평가 등 입법 절차 전반에 시민의 직접 참여를 목표로 하는 운동으로, 기술 혁신을 기반으로 한다. 대표적 사례로 언급되는 핀란드의 경우 정부 공식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시민 제안을 받고 있다. 6개월 이내에 시민 5만 명 이상의 지지 서명을 받은 발의안은 의회에 제출돼 일반 법률안과 동일한 심의 과정을 거치는데 이를 통해 ▲모피산업 금지법 ▲여성 할례 금지법 등 다양한 의제가 발의·공론화됐다. 핀란드 유권자의 3분의 1 정도가 시민 발의에 서명했을 만큼 적극적인 참여가 이뤄지고 있다.

유사한 제도로 우리나라의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이나 '민주주의 서울' 홈페이지를 떠올릴 수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은 시민 참여의 확대라는 긍정적인 면이 있으나, 건설적인 정책 반영이나 제도 개선으로 이어지기보다는 정쟁의 수단이 되기도 하고, 혐오 표현이나 다수가 소수자를 억압하는 낯부끄러운 청원들이 이슈가 되기도 한다. 민주주의 서울 홈페이지의 경우 시민 제안, 시민 토론, 서울시 질의에 대한 찬반 투표로 구성돼 있다. 시민 제안의 경우 500명이 공감하면 의제 선별 과정을 거쳐 온라인 공론장에서 토론이 이뤄진다. 5000명이 공론에 참여하면 시장이 답변한다. 공론화 과정이 포함된 점이 특징이나, 조례안 발의 등 입법 연계 과정이 없고, 참여 기준 숫자나 실제 참여가 현저히 낮아 수렴된 의견이 주민의 대표성을 가진다고 하기 어렵다.

지난 4월 국회법이 개정됨에 따라, 국민 누구나 국회의원 소개 없이 일정 수 이상의 동의가 있을 경우 입법 청원서를 국회에 제출할 수 있게 됐다. 청원을 제출하는 전자시스템도 마련될 것이다. 시민의 법안 제안이나 청원에 필요한 동의 절차, 찬반 토론이 정부 온라인 플랫폼 내에서 이뤄지고 숫자가 충족된 경우 자동으로 청원서가 제출돼 의회 심의가 진행되는 방식이면 좋겠다. 또한 이 과정이 온라인상에 투명하게 공개돼 다시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구조가 된다면 금상첨화겠다. 시민의 참여 의지가 점차 높아지는 이때, 입법의 영역에서도 건설적 토론을 바탕으로 한 직접 참여의 길을 조속히 확대할 필요가 있다.
조선일보 E1면
3일의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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