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 6·25 터지자 트루먼에게 "한국軍 지원 왜 안했나" 따져

김기철 학술전문기자
입력 2019.06.24 03:00

6·25 당시 초대 주미 대사 장면, 안보리·백악관 찾아 지원 호소
'미국의 소리' 방송 연설만 7회… 유엔군 파병 알리며 항전 촉구

"하루 이틀 사이에 미 육군 대(大) 부대가 구원병으로 와서 우리 국군과 협력해서 적군을 진멸할 것이며, 다른 유엔 국가의 해·육·공군이 불일간 도착하게 되어 있느니…."

1950년 6월 29일 초대 주미 대사 장면(1899~1966)의 육성이 '미국의소리'(VOA) 라디오로 흘러나왔다. 북한 인민군을 물리치기 위해 유엔군이 파견된다는 희소식이었다. '동포 여러분, 최후까지 씩씩하고 용감하게 꾸준히 싸워주십시오. 우리의 승리는 다만 시간문제일 뿐입니다.' 남침 사흘 만에 서울을 함락당하고 피란길에 오른 동포들이 눈앞에 어른거렸을까. 장면은 '대한민국 만세'로 비장하게 연설을 마무리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 남침을 규탄하는 유엔안보리에 참석한 장면(오른쪽 끝)과 친필로 쓴 '미국의 한국전쟁 참가 경위'(작은 사진). /운석장면기념사업회
6·25전쟁 전후 주미 대사를 지내며 미국과 유엔 지원을 이끌어낸 장면의 6·25를 재구성한 '장면, 수첩에 세상을 담다 2: 6.25 호국전쟁의 기억'이 나왔다. 장면의 수첩(1949·1951년)과 일지, VOA 방송 원고 등 1차 자료를 수록했다.

장면이 친필로 작성한 '미국의 한국전쟁 참가 경위'(1950.6.24~1951.3.14)는 남침 소식을 듣자마자 미국을 상대로 긴박하게 움직인 기록이다. '(1950년 6월 24일·현지 시각) 장 대사는 이승만 대통령의 장거리 전화를 받고 즉시 국무성으로 달려가다' '당일 밤 미 국무부 극동담당 차관보 딘 러스크, 유엔관계 차관보 존 힉커슨, 필립 제섭 순회대사 등 국무성 집합'… '(6월 25일) 미 군용기로 레이크석세스(뉴욕) 유엔 본부로 달려가 안보리에 호소하다' '(6월 26일 오후 4시) 장 대사 백악관으로 내방. 6개월 전 국군 군비 증원안 요청했으나 들어주지 않은 것 문책, (트루먼 대통령) 초조 심정 양해, 실망 말라. 유엔이 선처할 터. 옆의 애치슨(국무장관) 묵묵불언'.

장면은 6·25 발발부터 그해 말까지 워싱턴에서 7차례 VOA 방송으로 유엔군 파병과 지원 소식을 시시각각 전했다. 신문·방송이 뉴스를 전하기 어렵던 전란기, 장면의 VOA 연설은 국민의 용기를 북돋은 한 줄기 빛이었다. "잠시의 난관을 기개 있고 절조 있게 지켜나가라"는 격려와 함께 경고도 잊지 않았다. "적색 도배들에게 아부하고 비겁하게 이적 행동을 하는 자들은 일후에 민족 반역자로 모조리 엄정한 처단을 받을 것을 명심하십시오."(7월 20일) 그해 말 마지막 연설(12월 28일) 제목은 중공군 개입에 맞서 조국 사수(死守)를 호소하는 '필승의 신년을 맞이하며'였다. 그가 쓴 VOA 연설 원고엔 서둘러 문장을 지우고 보탠 흔적이 남아 있다. 장면은 1951년 1월 말 제2대 국무총리 취임을 위해 귀국했다.

장면은 정치인으론 드물게 기록을 많이 남겼다. 수첩, 편지, 연설문 초고, 연대기, 회고록을 비롯, 그가 남긴 문헌 자료는 3000건이 넘는다. 운석(雲石)장면기념사업회는 그가 작성한 연대기를 바탕으로 한 '장면, 시대를 기록하다'(2014)와 1948년 수첩을 교주(校註)한 '장면, 수첩에 세상을 담다 1: 대한민국 그 첫걸음의 기억'(2016)을 냈다.

자료집을 발간한 허동현 경희대 교수는 "장면은 대한민국의 국제적 승인과 6·25전쟁 당시 유엔군 파병을 이끌어내면서 차후 한국을 이끌어갈 지도자로 부상했다"면서 "소심하고 우유부단한 지도자였다는 기존의 부정적 평가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A23면
말모이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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