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전 '직권남용죄' 반대한 헌법재판관, 다시 헌재에 묻다

양은경 기자
입력 2019.06.20 03:01

권성 前재판관, 기무사 댓글사건 변호인 자격으로 위헌심판 요청
"2006년 우려한 것보다 상황 심각, 직권남용 범위 지나치게 넓어"

권성〈사진〉 전 헌법재판관이 19일 직권남용죄에 대해 법원에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다. '직권남용의 적용 범위가 모호해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취지다. 그는 13년 전 헌법재판관 시절 직권남용죄에 대해 재판관 중 유일하게 소수 의견으로 위헌 의견을 낸 바 있다. 그런데 이번엔 자신이 맡고 있는 형사사건의 변호인 자격으로 "직권남용죄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을 헌법재판소에 제청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한 것이다.

현 정권 들어 검찰은 이른바 '적폐 청산' 수사 과정에서 '직권남용 전성시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직권남용죄를 대거 적용해 전(前) 정권 인사들을 재판에 넘겼다. 법조계에선 무리한 법 적용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재판부가 권 전 재판관의 신청을 받아들여 헌재에 위헌 심판을 제청할 경우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권 전 재판관은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된 배득식 전 기무사령관의 항소심 재판부인 서울고법 형사13부에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다. 그는 이 사건 변호인이고, 배 전 사령관은 2011~2013년 부대원들에게 여권을 지지하고 야권을 비판하는 내용의 댓글 작업을 하게 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은 상태다. 재판부가 권 전 재판관 신청을 받아들이면 헌재 결정이 날 때까지 재판이 정지된다.

직권남용은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누군가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할 때 성립한다. 하지만 '직권'과 '남용'의 범위가 모호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권 전 재판관은 2006년 헌재가 직권남용죄에 대해 재판관 8대1의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할 때 유일하게 위헌 의견을 냈다. 그는 당시 위헌 의견을 통해 "직권이나 의무 등은 그 내용과 범위가 객관적으로 확인되는 게 아니어서 적용 범위가 무한정 넓어진다"며 "(직권남용죄가) 정권 교체 시 전 정부의 실정을 들춰내거나 정치 보복을 위해 전 정부 고위 공직자를 처벌하는 데 이용될 수 있다"고 했다. "순수한 정책적 판단이 비판의 대상이 된 경우 여론 무마용으로 공직자를 처벌하는 데 악용될 수 있다"고도 했다.

그의 이런 예상은 상당히 적중했다. 직권남용죄는 한동안 사실상 '잠든 범죄'였다. 입증이 어려워 검찰이 이 혐의를 적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 정권 들어 검찰은 직권남용죄를 적용해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롯해 전 정권 인사들을 대거 기소했다. 현재 1·2심 법원에선 사건별로 유·무죄가 엇갈리고 있다.

권 전 재판관은 본지 통화에서 "직권남용이 남용되고 있다"며 "우려했던 것보다 상황이 심각하다"고 했다. 직권남용은 본래 공무원의 민간인에 대한 권한 남용을 처벌하는 범죄인데, 하급자에 대한 지시까지 모두 직권남용 범주에 넣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직권남용 범위가 이렇게까지 확장되면 부적절한 정책이나 사소한 절차 위반까지 형사처벌 대상이 돼 명확성의 원칙과 유추해석 금지 원칙에 반(反)한다"고 했다.

그와 함께 배 전 사령관 변호를 맡고 있는 배보윤 변호사(헌재 공보관 출신)는 "이번에 재판부가 직권남용죄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을 안 받아주면 직접 헌법소원을 낼 계획"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A12면
3일의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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