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요청도 없었다면서 조화 전달 '김여정 12초 음성' 묵음처리한 통일부

윤희훈 기자
입력 2019.06.13 16:19 수정 2019.06.13 18:08
北, 음성 삭제 요청 안했는데 통일부 김여정 음성 묵음 처리
통일부 당국자 "음성 삭제 말라는 기자단 요구, 상부에 건의·설득·납득시키지 못한 점 있었다"
북 눈치보기? 남북관계 교착 속 돌발 발언 감추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동생 김여정 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오른쪽)이 12일 오후 이희호 여사 서거와 관련, 판문점 통일각에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가운데), 박지원 김대중평화센터 부이사장에게 김 위원장이 보내는 조화를 전달하고 있다. /통일부 제공
통일부는 12일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판문점 통일각에서 고(故) 이희호 여사 측에 조화와 조전을 전달하는 장면을 촬영한 영상을 언론사에 제공했다. 그런데 이 영상 속 등장인물들의 음성은 모두 묵음 처리됐다. 이를 두고 우리 정부가 지나치게 북측의 눈치를 보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통일부가 당시 언론에 제공한 영상은 총 1분 45초 분량이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이 판문점 북측 지역 통일각에서 도착해 김여정과 인사하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김여정은 정 실장을 비롯해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 서호 통일부 차관, 윤건영 청와대 국정상황실장과 악수를 하며 인사를 나눴다. 이어서 회의실에서 김여정이 정 실장에게 조의문을 전달하고 대화하는 장면이 나온다. 김여정이 12초 가량 이야기를 하고, 이어 정 실장이 19초 정도 말한다.

하지만 이 부분은 모두 묵음 처리돼 무슨 말을 했는지 알 길이 없다. 이 때문에 당시 판문점에서 오간 대화는 정의용 실장이나 박지원 의원 등의 전언을 통해 알려졌다.

이에 대해 영상 제공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통일부 당국자는 13일 "영상 제공 과정에서 여러 의사 결정 단계가 있었다"면서 "(묵음 처리를 하지 말아달라는 기자단의 요구를 상부에) 책임감있게 설득하지 못하고 건의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는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했다.

이 당국자는 '북측이 묵음 처리를 요구했느냐'는 질문엔 "북측과는 관계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답했다. '민감한 내용이 있어서 삭제를 지시했느냐'는 질문엔 "앞으로 제대로 하겠다.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고만 답했다. '삭제한 음성을 복원해 제공할 여지는 없느냐'는 물음엔 "네"라며 거부했다.

통일부 당국자의 설명대로라면 북측이 따로 요청하지 않았는데도 우리 정부가 영상 속 음성을 삭제해 언론사에 제공한 셈이다. 이 당국자는 정부가 음성을 묵음 처리한 이유는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북측이 김여정의 육성이 한국 방송을 통해 전해지는 것을 꺼릴까 싶어 알아서 음성을 제거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통일부가 북측 대표단과의 회동 영상을 공개하면서 음성을 묵음 처리해 언론에 제공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남북 간 진행된 고위급 회담 영상에서도 묵음 처리하거나 북측 주요 인사의 발언을 편집한 경우가 더러 있었다. 이 때문에 통일부 기자단에서는 영상 제공 시 음성을 제거하지 말아달라고 계속 요구해왔다. 전날도 판문점 접촉 영상의 음성을 묵음 처리 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 고위급 인사가 말을 주고 받는 과정에서 교착 상황에 처한 남북 관계의 한 단면이 드러난 것을 우려해 음성을 삭제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정 실장 등 우리 대표단이 조속한 남북 대화 재개를 제안했으나, 김여정이 확답을 하지 않았을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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