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다시 보니 별로일세"

김상엽 국외소재문화재재단 팀장
입력 2019.06.12 03:01
김상엽 국외소재문화재재단 팀장
"내가 월급 5만원 받을 때야. 30만원이니 글쎄 6개월 월급을 모은 돈이지. 가불 받고 주변에서 꾸고 해서 억지로 융통했어. 글씨를 들고 오는데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 하늘을 나는 것 같았다고."

소문난 추사 마니아 선생님의 얘기다. 당시 옛 글씨 감정의 대가들이 A화랑에 있는 추사 글씨가 좋다고 했다는 전언을 듣자 그 글씨를 꼭 갖고 싶었다. 혹시 다른 사람이 가져갈까 걱정돼 동분서주하여 부랴부랴 마련한 돈으로 구입한 후 집으로 가져오니 세상을 다 가진 것 같더라고 했다. 며칠 밥 먹는 것도 잊고 보다가 이 글씨를 언급한 분들에게 보여 드리며 추사 작품 소장자의 반열에 든 자신을 자랑하고 싶어졌다.

마침 인사동 어느 식당에 대가들께서 모여 계시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 득의에 찬 표정으로 추사 글씨를 꺼냈더니 그분들의 표정이 묘했다. "그땐 좋은 줄 알았는데 다시 보니 아닐세."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씀하시며 술잔을 비우는 어르신들이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 없었다고 했다. 그 후 추사를 열심히 공부했고 추사 글씨라면 눈에 불을 켜고 뜯어보며 연구하여 이젠 가짜 추사 글씨에 속지 않을 정도는 되었다고 했다.

흔히 골동이라고 부르는 고미술품은 철저한 안목과 감식안이 없으면 가짜 물건 속에서 헤매거나 막대한 금전적 손해를 보게 마련이다. 고미술품 수집은 돈만으로는 안 되고 물건을 볼 줄 아는 능력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수집가 본인이 안목이 있거나 뛰어난 감식안의 도움이 있어야 컬렉션이 완성된다. 간송 전형필 수집품이 본인의 재력과 우리 문화재를 지켜내야 한다는 의지에 스승 위창 오세창의 감식안이 더해져 최고의 컬렉션이 이룩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물각유주(物各有主)라고 했다. "모든 물건은 제각기 임자가 있어서 어떤 물건이라도 아무 손에나 되는 대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이다. 국외에서 떠도는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를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맞닥뜨릴 때면 드는 생각이기도 하다.


조선일보 A23면
말모이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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