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11] 책임, 사랑의 또 다른 이름

김규나 소설가
입력 2019.06.12 03:11
김규나 소설가
벤이 죽도록 내팽개치지 않은 여자. 헤리엇은 입을 열어 말하진 않았지만 마음으로는 자신을 그렇게 열렬히 변호했다. 벤을 데려오는 것 말고 다른 길은 없었다. 그러나 그렇게 했기 때문에, 죽지 않도록 그 아이를 구해냈기 때문에 그녀의 가족은 파괴됐다. 그녀 자신의 인생도 무너졌다.

―도리스 레싱 '다섯째 아이' 중에서.


울부짖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해서 배고프지 않았으리라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아프다, 외롭다 말할 수 없었다 해서 고통을 느끼지 못한 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속으로 파고든 아픔이 더 뼈가 저리는 법이다. 엿새 동안 젖은 기저귀를 깔고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철없는 부모를 기다렸을 7개월 된 아기가 자꾸만 마음에 밟힌다.

'다섯째 아이'는 2007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영국 작가 도리스 레싱의 소설이다. 헤리엇과 데이비드는 계획에 없던 다섯째 아이를 임신하자 당황한다. 주변 사람들도 무책임하다며 그 부부를 비난할 뿐, 아무도 축복하지 않는다. 배 속 아이는 독버섯처럼 자라며 임신 기간 내내 헤리엇의 몸을 힘들게 한다.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인 걸 알았기 때문일까. 벤은 귀엽지 않았고 힘은 막무가내로 셌으며 성격은 잔혹하고 누구와도 교감하지 않았다. 데이비드는 양육을 포기하고 요양소로 보내지만 구속복에 갇힌 채 약에 절어 거의 죽은 것 같은 벤을 본 헤리엇은 다시 집으로 데려온다. 그 결과 가족 누구도 행복하지 않았고 그녀를 홀로 남겨놓고 모두가 집을 떠난다. 그러나 죄책감이든 책임감이든, 헤리엇은 괴물 같은 벤을 끝까지 놓지 않는다.

21세 아빠와 18세 엄마는 아기가 죽어가는 동안 밖에서 술 마시고 게임했다고 한다. '청소년에게도 섹스할 권리를 달라'는 목소리가 커지는 사회에서 아기가 '사랑의 결실'이란 말은 너무 달콤하기만 하다. 섹스 뒤에는 생명이, 생명에는 무한한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도 끝없는 인내와 노력과 희생이 필요한 것을.


조선일보 A33면
말모이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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