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노총, 시민 6000명 이용하는 문화회관 봉쇄… 외국인학교는 휴교

울산=김주영 기자 의정부=조철오 기자 권선미 기자
입력 2019.05.29 03:10

현대重 노조 2000명, 주총 열릴 울산 4층 건물 이틀째 불법점거
사장실·시청·노동청·대검 들이닥친 민노총, 이젠 민간시설까지

28일 울산 동구 전하동 한마음회관 입구는 오토바이 수백 대로 막혀 있었다. 민노총 현대중공업 노조 조합원 2000명은 전날부터 이곳을 점거했다. 오는 31일 이 건물에서 열리는 회사의 주주총회를 저지하기 위해서다. 노조가 건물을 점거하는 과정에선 경비원 등 현대중공업 직원 7명이 다쳤다.

노조원들은 이날 취사도구와 생수를 회관으로 반입하며 '장기전'에 들어간 모습이었다. 회관 건물 유리창을 판자로 막아 안을 못 보게 만들었다. 회관 주변 분수대, 주차장에는 텐트도 10채 설치했다. 지하 1층, 지상 4층짜리 건물은 노조가 설치한 현수막과 깃발로 뒤덮였다. '법인 분할 중단하라'는 대형 현수막 주변에는 '결사 항전' '단결 투쟁' 등의 깃발이 수십 개 내걸렸다.

판자로 유리창 막고… 현수막·깃발 뒤덮인 건물 - 28일 오전 현대중공업 노조원들이 불법 점거한 울산시 동구 한마음회관 건물을 둘러싸고 앉아 “법인 분할에 반대한다”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곳에서 오는 31일 현대중공업의 주주총회가 열릴 예정이다. 사측은 경찰에 두 차례 강제퇴거 요청을 했으나 이날까지 집행되지 않았다. /연합뉴스
노조 불법 점거로 이 건물 이용자들은 큰 불편을 겪었다. 현대중공업이 지었지만 학교, 식당, 수영장, 헬스장이 있어 매일 인근 주민 6000명 가까이가 이용해왔다. 건물 3층에 있는 현대외국인학교는 28일과 29일 휴교령이 내려져 학생 30여 명이 수업을 받지 못했다. 주민 박모(60)씨는 "회관 헬스장을 이용하고 있는데 노조 때문에 들어갈 수가 없다"며 "이렇게 막무가내로 막아도 되느냐"고 말했다. 조합원들은 언론 취재도 막았다. 한 카메라 기자가 시위 장면을 찍으려 하자 "나중에 실려 나가기 싫으면 좋은 말 할 때 (카메라를) 끄시라"고 했다.

이에 대해 현대중공업 노조 관계자는 "점거가 정당한 방법은 아니지만 얼마나 절박하면 이렇게 하겠느냐"며 "법인을 분할하게 되면 현대중공업은 막대한 부채를 안게 될 것"이라고 했다.

민노총은 지난해에도 한국GM 사장실(4·7·10월), 전주시청(8월), 서울고용노동청(9월), 대구고용노동청·고용부 경기지청·김천시청(10월), 고용부 창원지청·대검찰청(11월) 등을 불법 점거했다. 구조조정 반대, 정규직 전환, 관리자 처벌 등을 요구했다.

전국 건설 현장도 공사 방해에 가까운 노조 집회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 3~4월 경기 의정부시의 한 아파트 공사 현장에선 민노총 건설노조가 '민노총 소속 근로자를 고용하라'며 새벽 5시 30분부터 오전 9시까지 민중가요를 틀었다. 노조원이 인간띠를 만들어 입구를 막자 공사 차량이 들어가지 못했다. 주민 박모(39)씨는 "집회 시간이 아이들 등교 시간인데 성인 남성 수백 명이 몰려와 진을 치니 위화감이 들었다"고 했다.

일부 노조는 공사장 비리를 캔다며 공사장 주위에 드론(무인 항공기)을 띄우고, "불법 취업한 외국인이 있는지 확인하겠다"며 공사장 입구를 막고 출입하는 사람을 검문하기도 한다. 이들은 공사장에서 법·규정 위반을 발견하면 시청과 고용노동부에 신고해 공사를 중단시키는 방식으로 건설사를 압박한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노조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건설 현장에 장기간 집회 신고를 내고, 소음을 내 민원을 유발한다"며 "공기(工期)가 지연돼 손해를 안 보려면 노조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노조끼리 충돌하는 경우도 많다. 경기 하남시의 아파트 공사장에선 지난 2월 한노총 조합원 12명이 안전 교육을 받기로 돼 있었다. 그런데 민노총 조합원 30명이 '우리를 채용하라'며 안전 교육장을 점거했다.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건설노조 횡포를 막아달라는 국민 청원이 30여 건 올라와 있다. 철근·콘크리트공사협의회가 지난 3월 말 '노조의 고용 강요와 집회를 통한 공사 방해를 막아달라'며 올린 청원에는 5만명 가까운 사람이 동의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도 지난 23일 기자간담회에서 건설노조의 채용 강요에 대해 "굉장히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장 갈등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노조 때문에 신고하기도 어렵지만 막상 신고해도 경찰이 노조에 구두 경고하고 끝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또 다른 건설사 관계자는 "노조의 업무 방해 행위에 대해 국가가 나서지 않으니 건설사는 노조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고 했다.

건설 경기가 나빠져 일자리가 줄고 현 정부가 노조의 불법행위에 관대하게 대처해 갈등이 커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노총 관계자는 "건설 경기 악화로 공사 현장이 줄고 외국인 근로자는 급격하게 늘었다"며 "노조 처지에서는 조합원들의 권익을 지킬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고 했다.



조선일보 A3면
3일의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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