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서 경찰 폭행한 병역 거부자… "못믿겠다" 유죄

권순완 기자
입력 2019.05.17 03:00

"폭력적 군대 못 가겠다면서 폭력 행사… 양심적 거부 아니다"
2심도 징역 1년 6월… 병역 거부 잇단 무죄 판결과 다른 결정

"폭력을 재생산하는 군대에 들어갈 수 없다"며 병역(兵役)을 거부해 재판에 넘겨진 오모(30)씨에게 법원이 유죄를 선고했다. 오씨는 '국가 폭력'에 반대한다며 양심적 병역 거부 운동을 벌여왔다. 하지만 재판부는 오씨가 2015년 민노총 집회에 참석해 경찰을 폭행한 전력을 지적하며, "모든 폭력이 아닌 특정 폭력에만 반대하는 것은 전략적이고 가변적 양심으로, 양심적 병역 거부에서 말하는 양심이 아니다"라는 취지로 판단했다.

서울서부지법 형사2부(재판장 최규현)는 16일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오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1심과 같은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오씨는 시민단체 회원으로 그간 쌍용차 해고자 복직 운동, 경남 밀양 송전탑 건립 반대 운동 등에 참여했다. 그는 작년 6월 한 매체에 기고한 '병역 거부 소견서'에서 입대를 "자국민을 총칼로 살육하고도 제대로 된 사과와 반성이 없는 군대의 병사가 되는 것" 등으로 표현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오씨는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밀양 송전탑 시위나 세월호 시위에서 경찰이 시민을 억압하는 것을 보면서 입영 거부를 결심했다"고도 했다.

작년 7월 1심 재판부는 오씨에 대해 "그 주장과 같은 양심을 가졌는지 명확히 확인되지 않는다"며 유죄를 선고했고, 오씨는 항소했다. 오씨에게 불리할 것으로 보이던 재판은 작년 말부터 다시 주목을 받았다.

작년 11월 대법원이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병역을 거부한 사람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사법부가 '양심적 병역 거부'를 처음 인정한 것이다. 지난 2월에는 수원지법이 종교가 아닌 '비폭력 신념'을 주장하며 예비군 훈련을 거부한 20대 남성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라 폭력에 경각심을 가졌고, 어머니 설득으로 군에 입대했지만 군사훈련을 거부한 정황도 있는 등 "양심이 깊고 확실하고 진실된 것이라는 사실이 소명된다"는 취지였다.

이런 상황에서 열린 오씨의 2심 재판에서는 '양심의 진정성'이 핵심 쟁점이었다. 오씨는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모든 폭력에 대해 반대한다고 말할 순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검찰 측이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의 무력행사에 대해 견해를 묻자 오씨는 "정당한 저항권 발동으로 허용된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재판부는 "양심적 병역 거부에서 양심이란 그 신념이 진실해야 한다"며 "신념이 진실하다는 것은 상황에 따라 타협적이거나 전략적이지 않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오씨가) 상황이나 조건에 따라 전쟁이나 물리력 행사도 정당화될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스스로도 이에 가담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재판부는 오씨의 전과도 판단 근거로 삼았다. 재판부에 따르면 오씨는 2015년 민노총 집회에서 경찰관을 가방으로 내려쳐 폭행한 혐의로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있다.

오씨 측은 이날 대법원에 상고할 뜻을 밝혔다. 오씨는 선고 직후 기자들을 만나 "양심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실현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판결 취지를 검사뿐 아니라 판사조차도 잘 모르는 것 같다"고 했다.


조선일보 A12면
3일의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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