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매, 배신 트라우마로 사법부 불신한다는 건 정말 소설"

백윤미 기자
입력 2019.05.03 17:08
법원행정처 심의관, 동료에 이메일 ‘고충’ 토로
상부 지시로 朴 전 대통령 일기 찾아 성향 분석
林 "대통령, 1장 넘어가면 보고서 안 읽는다"

박근혜 전 대통령. /뉴시스
"실례되는 질문일 수 있는데… 이메일을 ‘할매 불신 원인은 정말 소설입니다'라고 보냈다. ‘할매’가 박근혜 전 대통령으로 보이는데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측 변호인)

지난 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35부(재판장 윤종섭) 심리로 열린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재판에서 법원행정처 심의관들끼리 주고받은 이메일 내용이 공개됐다. 박상언 전 기획조정심의관이 시진국 전 기획1심의관에게 보낸 이메일이었다. 여기에 나오는 ‘할매’는 박 전 대통령을 지칭한 것이 맞는다고 했다.

이들은 2015년 법원행정처가 작성해 양승태 당시 대법원장에게 보고한 ‘상고법원 입법추진을 위한 BH(청와대) 설득 방안’이라는 문건 작성에 관여한 사람들이다. 이 문건에는 박 전 대통령의 1991년 2월 10일자 친필 일기와 2007년 출간된 자서전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를 인용해 박 전 대통령의 성향을 분석한 내용이 포함됐다. 여기에서 박 전 대통령 성향에 대해 판사들은 ‘배신 트라우마’로 인해 3권 분립의 한 축에 대해서도 쉽게 신뢰를 주지 않는 성향’이라고 적었다.

2015년 7월 작성된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의 ‘상고법원 입법 추진을 위한 BH(청와대) 설득 방안' 문서 발췌.
박 전 심의관은 이 문건을 이메일에 첨부해 보내면서 동료인 시 전 심의관에게 "박 전 대통령 성향 분석 부분은 사실이 아닌데 포함됐다"는 취지의 고충을 토로했던 것이다. 이날 재판에서 박 전 심의관은 박 전 대통령을 ‘할매’라고 부른 이유에 대해 "언론인을 접촉하게 되는데 이들이 박 전 대통령을 ‘박 여사’나 ‘할매’라고 지칭했던 기억이 있어 활용했다"고 했다.

앞서 지난 17일 시 전 심의관은 임 전 차장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이메일 속 할매 부분에 대해 "(박 전 심의관이 ‘소설’이라고 한 부분은) 임 전 차장의 지시로 추가된 것"이라는 취지로 증언했다. 그는 또 "임 전 차장으로부터 ‘BH 설득 전략’ 문건을 작성하라는 지시를 받을 때 ‘대통령은 1장 이상 넘어가면 절대 보고서를 안 읽고, 도표를 좋아하기 때문에 각각 주제마다 1페이지 분량으로 총 5페이지짜리 보고서를 쓰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두 심의관 모두 임 전 차장의 지시에 따라 보고서 작성에 관여하면서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 아닐 수도 있는 내용을 포함하게 돼 힘들어 한 정황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이처럼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 설치를 위해 박 전 대통령을 다양한 방법으로 설득하려고 한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임 전 차장이 사실상 주도한 정황도 나왔다. 시 전 심의관은 재판에서 "임 전 차장으로부터 이정현 당시 새누리당 의원을 찾아가서 만나라는 지시를 받고 이 의원을 찾아가 ‘사법 한류’에 대해 세부사항을 설명한 적 있다"고 했다. 사법 한류는 법원행정처가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구현에 기여하기 위해 만들어낸 것으로, 이 역시 ‘BH 설득 전략' 문건에 포함돼 있었다.

임 전 차장이 당시 우병우 민정수석에게도 전화해 "우리 법원을 너무 미워하지 말라. 상고법원 (도입을) 도와달라"고 말하기도 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시 전 심의관은 "임 전 차장이 상고법원 추진의 걸림돌을 우 수석의 ‘반(反)법원 정서'라고 여겨 우 전 수석에게 접근했다"면서 이를 위해 ‘우병우 민정수석 면담 기초자료'라는 문건도 따로 만들었다고 했다.

이밖에 재판에서는 ‘한일 우호관계 복원'을 위해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소송 관련 내용을 이병기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보고하려다가 취소한 정황도 드러났다. 법원행정처가 만든 ‘BH 설득 전략' 문건에 ‘우 전 수석 등 강경파가 득세하면서 이 비서실장의 ‘소외론’이 대두돼 (이 전 실장) 접촉이 의미 없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3일의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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