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 칼럼] 반쪽짜리 대통령

입력 2019.05.03 03:17

북한 김정은에 대한 배려와 환심의 1할만 야당과 보수 쪽에 써도 '성군' 소리를 들었을 것
우리 국민 둘로 갈라놓고 북한과 대화하겠다는 건…

최보식 선임기자

그럴 기회가 없겠지만, 문재인 대통령을 인터뷰하면 '본인은 한쪽 진영을 위한 대통령에 만족하는가?'라고 첫 질문을 하겠다. 어떤 반응일지 짐작된다. '반쪽짜리 대통령'이라는 말을 꺼내는 것 자체를 자신에 대한 모독으로 여길지 모른다. 그는 여전히 "지지하지 않았던 국민도 섬기는 통합 대통령"이라는 취임사 구절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사실 역대 어느 대통령도 온 국민의 사랑과 인정을 받은 적은 없었다. 그래도 이들은 그 나름대로 어느 한쪽의 국민이 아니라 모두에게 골고루 지지받기 위해 애썼다. 대통령이 되기 전에는 국민을 갈라치기 해 지지 세력을 규합해도, 대통령이 되고 나면 나라를 위해 국민 통합보다 더 중요한 게 없다는 걸 깨닫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재임 2년이 됐지만 한쪽 진영의 맹주(盟主) 역할에 만족하는 것 같다.

그런 사례로 현 정권의 적폐 청산을 다시 끄집어낼 것은 없고, 지금 벌어지는 '패스트트랙' 충돌 사태에 한정하겠다. 국회가 난장판이 되자 문 대통령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엄중한 경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정부와 국회가 힘을 모아야 한다는 국민의 바람이 어느 때보다 높은데 정치권의 대립과 갈등이 격화해 매우 안타깝다"고 말했다. 물리력을 동원한 한국당을 겨냥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의 배후에는 어떻게든 '공수처법'을 통과시키겠다는 청와대가 있었다. 이를 위해 '연동형 비례제'를 내건 소수 야당과 거래한 것이었다. 고립된 제1 야당이 어떻게 나올지는 정치 초보도 예상할 수 있다. 정당 간판을 내리지 않으려면 한국당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제 삭발 투쟁은 좀 볼썽사납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었으면 지지자들에게 '사쿠라'로 외면받았을 게 틀림없다.

이 지경이 되었으니 국회에서 추경 예산이나 각종 법안 심의는 다 날아갔다. 아무리 한국당이 '웰빙 정당'이고 투쟁이 오래 못 갈 것이라고 해도 어느 날 슬그머니 회의장에 들어올 리는 없다. 문 대통령이 '엄중한 경제 상황'을 인식했으면 죽다 깨어나도 국회를 이런 막장 충돌로 유도하지 말아야 했다. 그렇게 시급하다는 추경 예산과 법안을 걷어차 버린 쪽은 사실상 대통령이었다. 그런 대통령이 "국민의 바람은 어떻고…'라며 관전평 말하듯 했고, '좀비' '의회주의적 타협의 성공' 같은 글을 페이스북에 올리는 조국 민정수석을 신줏단지처럼 끌어안고 있다.

'반쪽 대통령'이 되는 길은 자신과 다른 입장에 있는 야당과 국민을 깔보고 조롱하고 무시할수록 쉽게 도달한다. 설령 야당이 형편없고 마음에 안 들어도 공들여 설득해야 할 정국 운영의 파트너다. 보수는 어쨌든 우리 국민의 절반이다. 문 대통령은 왜 이들을 북한 독재자만큼도 대접하지 않는지 이해 안 될 때가 많다.

북한 김정은과의 접촉에서 봤듯이 문 대통령은 그런 설득에는 선수다. 친절하고 관대할 뿐만 아니라 이해심도 많았다. 그렇게 대변해줬던 북한 김정은으로부터 "오지랖 넓은 중재자·촉진자 행세를 할 것이 아니라 민족의 일원으로서 제정신을 가져라" 하는 수모를 받고도 인내심을 보여왔다. 어떻게 해서라도 그의 환심을 다시 사겠다는 결의는 여전하다. 그런 배려와 환심의 1할만 야당과 보수 쪽에 써도 문 대통령은 '성군(聖君)'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그러지 않으니까 왜 우리 국민은 둘로 갈라놓고 북한과는 대화해서 무얼 하겠다는 건지 의심을 사는 것이다.

정권 초반에는 그럴듯한 말의 향연(饗宴)에 절대다수 국민이 현혹됐지만 지금은 많이 깨어났다. '적폐 청산'을 운운하는 쪽이 오히려 적폐일 수 있고 입버릇처럼 '정의' 운운하는 쪽이 나라를 결딴낼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현실에서 엄청난 부작용이 나타난 경제정책과 결정을 수정하지 않는 그를 의아스럽게 보게 됐다. 통계 수치로 현 상황을 미화하며 "내년이나 다음 분기(分期)에는 문제가 사라지고 좋아질 것"이라는 헛된 약속도 덥석 믿지 않게 됐다. 오히려 우리 어깨에 얹힌 현실의 큰 짐을 받아들여야 해답을 찾을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됐다.

집권 2년이면 오만과 독선에서 빠져나올 충분한 시간이 됐다. 국민은 각성이 있는데, 대통령은 여전히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얘기하고 있다. 이를 지적하면 '기득권 적폐 세력의 저항'으로 취급하는 것도 여전하다. 문 대통령 본인은 잊어버렸는지 모르나 취임 후 첫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 지시에 이견(異見)을 제기하는 것은 '해도 되느냐'가 아니라 '해야 할 의무'다. 브리핑할 때 반대 의견이 있었다는 것이 함께 나가도 좋다." 하지만 그 뒤로 청와대는 소수 이견이 새 나갈까 봐 청와대 직원들의 휴대폰을 강제로 수거해 검사했다. 차라리 말이라도 그렇게 안 했으면 이런 실망감이 덜했을 것이다.



조선일보 A30면
3일의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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