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 블랙리스트와 판박이인데 '산자부 의혹' 수사 미적대는 검찰

윤주헌 기자
입력 2019.05.02 03:01

한국당, 1월 백운규 前장관 등 고발
檢, 사퇴압박 받았다는 인물들 불러 당시 상황에 대해 간략히 조사만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을 수사해온 검찰은 지난 25일 신미숙 전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과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을 불구속 기소하면서 수사를 끝냈다. 하지만 이와 비슷한 혐의로 고발된 산업통상자원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의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해선 사실상 수사를 진행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1일 알려졌다. 검찰이 청와대 눈치를 보느라 수사하지 않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산자부 블랙리스트' 사건은 산자부 윗선의 압박을 받은 산자부 산하 공공기관장들이 임기를 남긴 채 사표를 냈다는 의혹이다. 2017년 9월 산자부 담당 국장이 한국전력 자회사 4곳의 사장을 서울 광화문의 한 호텔로 불러내 사표 제출을 종용했다는 것이다. 지난 1월 자유한국당은 "발전사 사장 한 명이 '정권 초기이고 사표를 제출하라고 하는데 안 낼 방법이 없더라'고 했다"며 백운규 전 산자부 장관, 이인호 전 차관 등 4명을 고발했다.

하지만 검찰은 수사 속도를 내지 않고 있다. 지난 22일 정창길 전 한국중부발전 사장과 강남훈 전 한국에너지공단 이사장 등 사퇴 압박을 받았다는 인물들을 불러 당시 상황에 대해 간략히 조사했을 뿐이다. 이에 대해서도 "피해 규모 확인 차원일 뿐 바로 수사하겠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고 있다.

이 의혹은 전(前) 정권에서 임명된 인사들을 강제로 내보내고 그 자리에 친(親)정권 인사들을 앉혔다는 점에서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과 거의 비슷하다. 다른 부처도 마찬가지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임기철 전 원장은 지난 3월 언론 인터뷰에서 "2017년 11월부터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이 사퇴를 종용했고 거부하자 감사가 시작됐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이 정부 들어 중도 사퇴한 과학계 기관장도 10명이 넘는다. 그런데도 검찰은 이런 의혹에 대해 본격적으로 수사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 사건들은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을 수사한 서울동부지검에 고발돼 있다. 인사에 부당하게 개입한 혐의(직권남용)로 신 전 비서관과 김 전 장관을 기소한 논리대로라면 산자부 등에 대한 수사를 미룰 이유가 없다. 하지만 서울동부지검은 "아직 본격적으로 수사에 착수한 건 아니다"며 선을 긋고 있다.

이에 대해 한 부장검사는 "수사할 경우 청와대를 또 수사해야 하는 부담 때문에 주저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조선일보 A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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