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 문제라면 이리 치열하게 싸울까… 고장난 한국정치

최승현 기자 김동하 기자
입력 2019.04.29 03:00

與, 선거법에 공수처법 끼워 강행… 野, 설마 하다가 뒤늦게 육탄저지
국회 패스트트랙 막장 대치 5일째

패스트트랙(신속 처리 법안) 지정을 둘러싼 여야 간 대치가 28일 닷새째 이어지면서 국회가 완전 마비 상태에 빠졌다. 모든 의사일정과 정치 협상은 중단됐고, 막말과 욕설·폭력에 쇠망치·'빠루' 등이 난무하는 전쟁터가 됐다. 어떤 방식을 동원하든 선거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신설 법안 등을 무조건 처리하겠다는 더불어민주당과 모든 협상을 거부한 채 끝까지 육탄 저지하겠다는 한국당이 볼썽사나운 막장 싸움만 벌이고 있다. 2012년 국회선진화법 도입 7년 만에 '동물 국회' '구태(舊態) 국회'로 완전히 되돌아온 모습이다. 마이너스 성장률로 무너지고 있는 민생 경제나 흔들리는 외교·안보 상황은 뒷전인 채 오로지 진영의 정치적 이익만 앞세우고 있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 1호 공약인 공수처 신설과 검경 수사권 조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정치제도의 근간이자 '게임의 룰'인 선거법 개정안을 처리하겠다고 나섰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 관계도 없는 두 사안을 연계시킨 것이다.

제1 야당의 반대에도 수적 우위만으로 선거법 개정을 밀어붙인 것은 전례가 드문 일이다. 엄격한 중립성 보장 장치 없이 공수처법이 통과되면 검경에 이어 또 하나의 수퍼 사정기관이 나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반면 한국당은 그동안 선거법 개정안과 공수처 설치안 협상에 제대로 응하지 않은 채 반대만 해왔다. 그러다 여야 4당 안이 나오자 뒤늦게 물리력으로 이를 막으려 한다는 비판이 크다. 국회선진화법은 한국당의 전신(前身)인 새누리당이 주도해 만든 법인데 본인들이 앞장서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다. 여야 모두 국민이 먹고사는 문제나 외교·안보 현안이 아닌 자기 밥그릇과 관련된 정쟁적 이슈만 갖고 싸우고 있다는 비판도 크다.

與 원내대표·사개특위장, 무슨 대화? - 더불어민주당 홍영표(오른쪽) 원내대표와 같은 당 이상민(왼쪽) 사법개혁특위 위원장 등이 27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회의장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여야는 주말에도 팽팽한 긴장감 속에 대치를 이어갔다. /뉴시스

여야는 28일에도 팽팽한 긴장감 속에 대치를 이어갔다. 지난 26일까지 격렬한 몸싸움을 벌였던 민주당과 한국당은 주말 이틀간에도 협상 테이블을 마련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대신 대대적인 맞고발전을 벌이며 재차 충돌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이날 국회 본청의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회의장을 거점으로 삼고 비상대기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4개 조로 나뉘어 예결위 회의장을 지켰고, 특히 정치개혁특위와 사법개혁특위 소속 의원들은 언제든 회의가 가동되면 소집될 수 있도록 필수 대기 인력으로 편성됐다. 민주당 관계자는 "정개·사개특위 의원들은 '5분 대기조' 개념으로 바로 달려올 수 있도록 국회에서 대기 중"이라고 했다.

한국당도 시간대별로 4개 조로 나눠 비상대기 근무조를 가동했다. 특히 한국당 의원들과 당직자, 보좌진 등 50여명은 정개특위 회의장인 본청 445호 앞을 번갈아 가며 지켰다.

양당의 협상 테이블은 주말 동안 마련되지 않았다. 양측 원내 지도부는 기자간담회를 열어 대대적인 추가 고발(민주당)과 맞고발(한국당) 방침만 밝혔다. 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는 오후 1시 30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패스트트랙 법안 접수와 정개특위, 사개특위 회의 개최를 막은 한국당 의원 등을 추가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홍 원내대표는 "신속 처리 안건이 통과될 때까지 회의 질서를 방해하는 국회의원, 보좌관, 당직자를 예외 없이 고발하겠다"고 했다. 민주당은 지난 26일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를 비롯해 의원 18명과 보좌진 2명 등 20명을 고발했었다. 정개특위 위원장인 심상정 의원도 이날 "정의당 차원에서 폭력 사태에 대해 한국당을 고발하겠다"고 했다.

이에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오후 2시 기자간담회를 열고 "불법적인 패스트트랙 강행에 대한 저항권을 행사했을 뿐"이라며 "한국당 의원 전원이 고발된다고 해도 투쟁을 멈추지 않겠다"고 했다. 한국당 역시 민주당과 정의당 등 19명을 맞고발했다. 민경욱 대변인은 "한국당 곽대훈, 김승희 의원은 갈비뼈 골절을 입었다"며 "우리당에 폭력을 행사한 홍 원내대표를 포함한 민주당 의원 15명과 정의당 여영국 의원 등 17명을 공동상해 혐의로 고발장을 제출했다"고 밝혔다. 한국당이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한 문희상 국회의장과 바른미래당 김관영 원내대표를 포함하면 19명이다. 문 의장과 김 원내대표가 사법개혁특위 위원을 바른미래당 채이배·임재훈 의원으로 교체한 데 따른 것이다.

패스트트랙에는 전체 사개특위 위원 18명 중 5분의 3 이상인 11명의 동의가 필요하다. 한국당 7명을 제외한 민주당(8명)·바른미래당(2명)·민주평화당(1명) 등이 모두 참석해야 표결이 가능하다. 사개특위 위원인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이날 호남에서 일정을 소화했다. 바른미래당 사개특위 위원인 채이배·임재훈 의원은 이날 여의도에서 대기했다. 정치권에선 여야 4당이 29일쯤 사개특위를 열고 패스트트랙 추진을 시도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이에 따라 패스트트랙을 저지하려는 한국당과의 정면충돌로 '동물 국회'가 재현될 가능성도 있다.


조선일보 A1면
말모이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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