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검찰이 헛손질한 '靑 블랙리스트', 특검 세워 전모 밝혀야

입력 2019.04.27 03:08
검찰이 이른바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과 관련해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과 신미숙 전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을 불구속 기소했다. 이들 둘만 기소하면서 사실상 수사를 마무리한 것이다. 의혹을 처음 제기한 김태우 수사관은 기소된 반면 의혹 당사자인 전직 청와대 비서실장과 민정수석, 반부패비서관은 모두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도둑 대신 신고한 사람만 몽둥이를 맞는 격이다.

이번 사건은 청와대가 정부 산하기관에 자기편 낙하산을 꽂아넣기 위해 사퇴를 거부하는 전(前) 정권 인사들을 표적 감사하고 사찰했다는 것이 핵심이다. 환경부만 문제가 아니었다. 김태우 수사관은 "청와대 특감반장이 '현 정부를 위해 일자리를 만들어줘야 한다'며 330개 공공 기관의 기관장·감사 660명 리스트 작성을 지시했다"고 했다. 국무총리실·기재부·교육부·산업부·법무부·보훈처 산하기관은 물론 과학계 인사들까지 "압력을 받아 어쩔 수 없이 물러났고, 사퇴를 거부하자 감사가 시작됐다"고 증언했다. 누가 봐도 블랙리스트다. 그런데 검찰은 다른 부처는 수사도 하지 않고 환경부 블랙리스트는 비서관이 벌인 일이라고 한다. 이 말을 믿을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검찰은 공공 기관 인사 책임자인 청와대 인사수석과 민정수석은 조사조차 하지 않았다.

청와대는 '블랙리스트' 개입 단서가 속속 드러나자 "블랙리스트가 아니라 체크리스트"라고 했다. 검찰이 환경부 장관 구속영장을 청구하자 "균형 있는 결정을 기대한다"며 법원에 압력을 넣었다. 영장 담당 판사는 "(산하기관장 사퇴 종용은) 관행이어서 고의(故意)나 위법이라는 인식이 희박했을 것"이라는 황당한 사유로 영장을 기각했다. 검찰은 권력의 심기를 살피며 꼬리 자르기 수사를 했다. 그러나 이미 너무 많은 사람이 진실을 알고 있고 블랙리스트 피해를 봤다고 증언하고 있다. 국회 주도로 특별검사를 세워 진상을 밝히지 못하면 다음 정권에서 이 또한 적폐 청산 칼날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조선일보 A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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