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발틱' 국가를 '발칸' 국가로… 외교부, 또 황당 실수

노석조 기자
입력 2019.04.03 03:01 수정 2019.04.04 15:57

영문 자료에 엉뚱한 지역 기재
라트비아 대사관 항의받고 수정

문재인 대통령과 마하티르 모하맛 말레이시아 총리가 13일 오후 말레이시아 푸트라자야 총리 궁에서 공동언론발표를 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우리 외교부가 지난달 19일 공식 홈페이지에 올린 보도 자료에 '발틱(Baltic·발트)'국가인 라트비아·리투아니아·에스토니아를 '발칸' 국가라고 잘못 기재했던 것으로 2일 뒤늦게 밝혀졌다. 이로 인해 외교부는 주한(駐韓) 라트비아 대사관으로부터 강한 항의를 받았다. 작년 말 '체코'를 '체코슬로바키아'로 잘못 표기하고, 지난달 캄보디아 방문 때 SNS에 대만 건물을 잘못 올리는 등 외교적 실수·망신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외교부는 보도 자료에 '발틱 3국'을 '발칸'으로 잘못 쓰고도 이를 인지하지 못했다. 라트비아 대사관이 곧바로 이를 지적하며 항의를 한 후에야 해당 부분을 정정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10~16일 동남아 순방 중 외교 담당자의 불찰로 엉뚱한 현지 인사말을 쓰는 등 각종 외교 논란에 휩싸이며 귀국한 지 사흘 만에 또다시 유사한 문제가 발생했던 것이다.

라트비아 대사관 관계자는 이날 본지 전화 통화에서 "지난달 19일 자로 올라온 외교부 영문 보도 자료를 살펴보다 라트비아 등 발틱 3국을 '발칸(Balkan) 지역' 나라들이라고 잘못 표기한 걸 확인했다"며 "깜짝 놀라 그날 곧바로 외교부 측에 문제 제기를 했다"고 말했다.

서울의 유럽 소식통에 따르면, 페테리스 바이바스 주한 라트비아 대사는 문제의 외교부 보도 자료를 보고 나서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화가 많이 났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해당 문제를 다른 주한 유럽 대사 등에게 이야기하며 우리 외교부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다고 한다.

외교 소식통은 "한국 내 외교관과 외국 기자들은 매일 아침마다 외교부의 영문 보도 자료를 꼼꼼하게 챙겨본다"면서 "영문 보도 자료는 한국의 국정 현안과 정책 방향을 세계에 알리는 대표적인 공식 채널"이라고 했다.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발틱과 발칸은 지정학적으로 완전히 다르다. 발틱은 북유럽 발트해 일대를 의미한다. '발틱 국가'는 20세기 초 구소련에 강제 병합됐다가 독립한 발트해 연안의 세 나라인 라트비아·리투아니아·에스토니아다. 반면 '발칸 국가'는 유럽 동남쪽 발칸반도 일대에 있는 불가리아·터키 일부 지역이나 공산주의 국가 구유고슬라비아 연방국을 의미한다.

전직 외교관은 "한국을 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 등이 있는 남아시아 국가라고 하는 수준의 어이없는 실수"라며 "다른 부처도 아니고 외교부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건 큰 문제"라고 했다.

우리 정부의 외교 업무 실수는 국내외,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터지고 있다. 지난달 문 대통령이 동남아 순방으로 캄보디아를 방문할 당시 청와대는 공식 페이스북에 이 사실을 알리면서 캄보디아 유적이 아닌 대만의 국가양청원(國家兩廳院) 사진을 올렸다. 작년 11월 대통령의 체코 방문 때는 외교부가 영문 트위터 계정에 '체코'를 26년 전 국가명인 '체코슬로바키아'로 잘못 표기했다. 또 작년 10월 벨기에에서 열린 아셈(ASEM ·아시아유럽정상회의)에선 의전팀이 엘리베이터를 제때 확보하지 못해 문 대통령이 정상들의 기념사진 촬영을 못 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낙연 총리도 작년 12월 북아프리카 모로코 방문 당시 호텔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 약 5분간 엘리베이터에 갇혔던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의 말레이시아 방문 당시 했던 '인사말 실수'도 있기 힘든 일이었다. 당시 문 대통령은 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총리와 정상회담과 국빈 만찬을 하면서 오후엔 밤 인사말을 하고 저녁 시간에는 오후 인사말을 했다. 문 대통령은 또 마하티르 총리와의 정상회담 때 말레이시아 말이 아닌 인도네시아 말로 인사말을 건넸다.

하사날 볼키아 브루나이 국왕 주재의 국빈 만찬에선 ‘건배 제의’를 해 논란이 일었다. 브루나이는 이슬람권 국가로 율법에 따라 주류 판매 및 공공장소 음주를 엄격하게 금지한다.

외교·의전 실수가 잇따라 터지자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지난달 22일 간부회의에서 “외교 업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 나온 지적에 대해 부끄러움과 책임을 통감한다”고 그간의 잘못을 인정했다. 그러면서 그는 전 직원에게 “외교관으로서의 ‘프로페셔널리즘’을 가지라”면서 외교적 실수를 방지할 수 있는 제도 개선을 주문했다. 외교부는 담당자에게 책임을 묻고 징계 조치를 할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내부적으론 “이게 실무진만의 책임이냐”는 얘기도 나온다.




조선일보 A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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