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조선] 환경부 블랙리스트 진짜 수사의지 있나

박혁진 기자
입력 2019.03.31 15:07

"文정부 국정동력 파악할 바로미터"

이른바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곳은 서울동부지검이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은 지난해 12월 김태우(44) 전 검찰 수사관이 청와대 특별감찰반 근무 당시 조국 민정수석, 박형철 반부패비서관, 이인걸 특감반장 등의 지시로 민간인 사찰이 포함된 첩보를 생산했다고 폭로하면서 불거졌다. 자유한국당은 이에 대해 검찰 수사를 의뢰했다. 문무일 검찰총장은 자유한국당이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던 이 사건을 동부지검 형사6부에 배당했다.

이같은 문 총장의 결정을 두고 정치권과 법조계 안팎에서는 '묘수'라는 평가가 많았다. 일단 윤석열 검사장이 수장으로 있는 중앙지검에서 수사할 경우 정치적 시비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었는데, 동부 지검이 사건을 맡으면서 이런 시비를 피해갈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게다가 형사6부 부장검사는 박근혜 정부 민정수석실에서 우병우 전 수석과 함께 근무했던 주진우 부장이다. 민정수석실을 통해 이뤄지는 청와대 인사검증 시스템을 잘 알고 있는 데다, 최순실 국정농단사태를 방조했다는 말까지 듣는 그야말로 이번 사건을 수사하기에 적임자라는 평가도 많았다.

지난 2월 26일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가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을 항의 방문, 환경부 블랙리스트 관련 철저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 조선일보

환경부 블랙리스트 수사는 예상보다 강도 높게 진행됐다. 수사 초기부터 '환경부 블랙리스트'에 청와대의 부당한 개입이 있다고 봤다. 검찰이 자유한국당 고발이 있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청와대를 전격적으로 압수수색한 것도 이때문이다. 이외에도 검찰은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청와대와 수차례 조율하며 인사 비리를 저지른 것으로 보고 청와대 인사수석실 산하 균형인사비서관실 소속 행정관 2명을 조사했다. 검찰은 김 전 장관을 구속함으로써 탄력을 받아 윗선수사를 진행한다는 계획이었다.

실제로 검찰이 3월 22일 구속영장을 청구하며 법원에 제시한 증거만 수천 쪽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검찰은 구속영장 청구서에서 '장관 보고용 폴더'를 핵심 증거로 제시했다고 한다. 검찰은 지난 1월 환경부를 압수수색해 컴퓨터에서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고 보이는 폴더를 발견했다. 해당 폴더에 담긴 문건에는 환경부 산하기관인 한국환경공단 임원 일부가 사표 제출을 거부한다는 내용과 감사 계획 등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내부에서는 나름 탄탄한 증거를 제출한 만큼 영장이 발부될 것이라고 보는 분위기가 우세했으나 법원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사실 이번 수사를 두고 검찰 내부에서는 두 가지 평가가 공존하고 있다. 우선 검찰이 정치적 판단 없이 수사에 공을 들여왔다는 평가가 있다. 취재 결과 대검은 대검 소속 연구관 3명과 평검사 1명 등 총 4명의 검사를 파견 보내는 등 수사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동부지검도 발 빠르게 청와대 및 장관 집무실을 압수수색했고, 청와대 및 환경부 관련자들 대부분을 소환조사했다. 이런 검찰의 수사 진행 강도를 보고 "검찰이 현 정부에 대한 자세가 바뀌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반대로 검찰의 부실수사가 법원의 영장 기각을 자초한 것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검찰은 지난 2월 김 전 장관을 피의자 신분으로 한 차례 비공개 소환 조사한 뒤 3월 22일 곧바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후 환경부 산하 공공기관 임원 등을 참고인 신분으로 줄줄이 불러 조사했지만, 김 전 장관에 대한 추가조사는 없었다. 통상 참고인 조사 이후 피의자를 재차 불러 사실관계나 혐의를 또다시 확인하는 것이 일반적인 수사 과정이지만 김 전 장관에 대한 추가 조사는 없었다. 한 달 전 조사를 토대로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주요 구속 근거 중 하나인 '말 맞기' 우려를 입증하지 못했다는 해석이다. 실제로 법원 역시 이례적으로 구속영장 기각 사유를 공개하며 말 맞추기 우려에 대한 다른 판단을 내놨다.

지금부터가 수사의지 판단할 시금석

언론에서는 김 전 장관의 구속영장이 기각됨에 따라 수사의 동력이 떨어졌다는 시선이 많지만, 정작 검찰 내부에서는 지금부터가 진짜 수사의지를 판단할 수 있는 시금석이 될 것이란 평가가 적지 않다. 실제로 검찰 출신 한 기업 임원은 "검찰은 정권의 힘이 빠지는 시점을 가장 동물적으로 아는 조직이고, 또 힘을 뺄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도 믿는다"며 "환경부 블랙리스트는 청와대를 겨냥한 수사인만큼 어떻게 수사가 마무리되느냐에 따라 현 정부의 국정동력을 파악할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 3월 25일 오전 '환경부 블랙리스트 문건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는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서울동부지법 법정으로 들어가고 있다. / 조선일보

일단 검찰은 환경부 전·현직 관계자들에 대한 조사를 대부분 끝낸 상황이다. 검찰은 김 전 장관을 불구속 상태에서 계속 수사하며 청와대 관계자들에 대한 조사에도 나설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곧 신미숙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을 소환 조사할 예정이다. 검찰은 김 전 장관의 구속영장 청구서에 신 비서관의 공모사실을 적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수사가 조현옥 인사수석까지 향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앞으로 검찰은 인사수석실을 중심으로 청와대 관계자들이 환경부 산하기관 임원 교체에 관여했는지 조사할 것으로 보인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을 처음 폭로한 김태우 전 검찰 수사관의 변호인이었던 석동현 변호사는 "사실 적폐수사 당시 정부 인사들에 대한 구속이 상식 밖이었던 터라 김 전 장관의 구속영장기각에 대해 이해가 된다"면서도 "구속여부가 수사 진행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만일 검찰에서 불구속 기소를 하더라도 의혹에 대해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청와대는 김 전 장관의 구속영장 기각에 대해 "영장전담판사의 결정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기자들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에서 "앞으로 장관의 인사권과 감찰권이 어디까지 적법하게 행사될 수 있는지 법원이 그 기준을 정리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동시에 이번 검찰수사를 계기로 청와대는 현재 운영되고 있는 공공기관의 장과 임원에 대한 임명절차를 보다 투명하게 하는 방법을 고민하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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