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외교부 나사 빠진 의전… 연이은 외교결례

안준용 기자 이민석 기자
입력 2019.03.21 03:31

캄보디아 방문땐 페북에 대만 사진, 체코를 '체코슬로바키아'…
외교부 前차관 "靑과 외교부, 의전협업 안되고 있다는 증거"

지난 13일(현지 시각) 말레이시아를 국빈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인도네시아어로 인사말을 하면서 촉발된 '외교 결례' 논란과 관련, 청와대는 20일 잘못을 인정하며 "이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해 나가겠다"고 했다. 고민정 청와대 부대변인은 이날 "방문국 국민에게 친숙함을 표현하고자 현지어 인사말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혼선이 발생했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1일 브루나이 방문 중 브루나이 왕궁에서 열린 만찬에서 하사날 볼키아 국왕과 건배를 제의하고 있다. 이슬람 국가로 공공장소 음주가 금지된 브루나이에서는 건배를 하지 않는 게 관습이어서 외교적 결례로 지적됐다. /연합뉴스
그러나 청와대는 대통령이 실수를 하게 된 구체적인 경위를 밝히지 않은 채 "현지에서 급하게 (인사말이) 들어갔다"고만 했다. 그러면서 "말레이시아 정부로부터 문제 제기는 없었다"고 했다.

◇끊임없는 외교 실수

문 대통령은 지난 13일 마하티르 모하맛 말레이시아 총리와 정상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슬라맛 소르(Selamat sore)'라는 현지어로 인사했다. 청와대는 '말레이시아의 오후 인사'라고 했지만 인도네시아어 표현이었다. 말레이시아어의 오후 인사말은 '슬라맛 프탕(Sel amat petang)'이다.

문 대통령은 12일 낮에 열린 '한류-할랄 전시회'에선 '슬라맛 프탕'이 아니라 밤 인사인 '슬라맛 말람(Selamat malam)'이라고 말했다. 청와대는 이날 "슬라맛 말람은 '굿 나잇'과 같은 의미로 문 대통령이 두 행사장에서 말한 것은 틀렸다"고 했다. 하지만 이 밖에도 문 대통령이 저녁 행사인 동포 만찬 간담회와 국빈 만찬에서 오후 인사를 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앞서 11일 문 대통령이 금주(禁酒) 국가인 브루나이에서 열린 볼키아 국왕과의 만찬에서 건배 제의를 한 것도 부적절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당시 잔에는 술이 아닌 물과 주스 등이 담겨 있었지만 국왕·왕비를 제외한 일부 브루나이 왕족 등 수행원들은 거부감을 보이면서 건배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 소식통은 "보수적인 이슬람 교도들은 건배 제의 자체에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고 했다. 청와대는 브루나이 왕궁 관련 정보 공개가 결례라는 사실을 모르고 블로그에 브루나이 살레하 왕비와 김정숙 여사의 환담 장소 등을 공개했다가 뒤늦게 수정하기도 했다.

◇"전문성·책임감·기강의 총체적 부실"

청와대는 문 대통령의 인사말과 관련, "청와대 내에는 말레이어를 아는 사람이 없어 청와대가 미리 작성했던 것은 아니다"라며 "현지에 가서 확인하고 넣은 것"이라고 했다. 현지 실무진의 실수로 돌린 것이다. 대통령의 해외 연설문은 외교부와 청와대 참모들이 기본 틀을 마련한 뒤 연설기획비서관실이 종합해 초안을 만든다. 이후 대통령의 검토·첨삭을 거쳐 최종본이 완성된다. 청와대 관계자는 "현지에서 제1부속비서관실이나 의전비서관실이 통역관을 거치지 않는 실수를 범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하지만 외교가에선 "대통령 순방 때마다 외교적 결례가 반복되는 것은 단순 실수가 아니라 의전 시스템과 정부 내 기강의 본질적 문제"라는 지적이 나왔다. 작년 11월 대통령의 체코 방문 때는 외교부가 영문 트위터 계정에 '체코'를 26년 전 국가명인 '체코슬로바키아'로 잘못 표기했다. 지난 15일엔 대통령의 캄보디아 방문을 알리며 청와대 페이스북에 대만의 국가양청원 사진을 게재했다. 또 앞서 작년 10월 벨기에에서 열린 아셈(ASEM·아시아유럽정상회의)에선 의전팀이 엘리베이터를 제때 확보하지 못해 문 대통령이 정상들의 기념사진 촬영에서 빠졌다. 이낙연 총리도 작년 12월 모로코 방문 당시 호텔 엘리베이터가 고장나 수 분간 엘리베이터에 갇혔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전직 대사는 "대통령 해외 순방 때는 간단한 인사말도 두세 번 꼼꼼히 확인해 만전을 기하는 게 외교의 기본"이라며 "시스템이 허술하고 의전팀의 전문성도 떨어지니 터무니없는 실수가 반복되는 것"이라고 했다. 청와대 의전이 기본 원칙보다 보여주기식 '쇼'에 치중한 결과라는 지적도 나온다. 전직 외교부 차관은 "청와대와 외교부의 의전 협업 자체가 안 되고 있다는 상징적인 장면들"이라며 "전문성·책임감·기강의 총체적 부실"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A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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