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만 vs 빈살만… 사우디 왕실 父子의 난?

허상우 기자
입력 2019.03.07 03:01

아들 독주에 권력 다툼 조짐… 父, 이집트 방문때 경호팀 교체
子, 사전에 알리지 않고 개각… 아버지 귀국할때도 마중 안가

살만 국왕, 빈살만 왕세자
권력은 정녕 부자(父子)간에도 나눌 수 없는 것인가. 지난해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살해 사건으로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던 무함마드 빈살만(34) 왕세자가 이번엔 아버지인 살만 빈 압둘아지즈(84) 국왕과의 권력 다툼설에 휩싸였다. 빈살만은 2년 전부터 왕위 승계 서열 1위였던 사촌형을 몰아내고 정적(政敵)인 왕자 11명을 체포하는 등 거듭된 '숙청'을 통해 실권을 장악한 인물이다.

5일 영국 가디언 보도에 따르면, 살만 국왕은 지난 2월 말 이집트 국빈 방문 도중 갑자기 수행 경호팀 전원을 전격 교체했다. 경호·보안요원을 해고한 뒤, 사우디 내무부에서 비밀리에 직접 선발한 30여명의 정예 요원을 공수받아 경호 임무를 맡겼다. 이는 보좌진이 "경호팀 일부가 빈살만 왕세자에게 충성한다"며 보안 우려를 제기했기 때문이라고 가디언은 전했다.

이상 징후는 또 있었다. 살만 국왕 이집트 방문 기간 중인 2월 23일 사우디 정부가 주미 대사와 국방부 차관 인사를 단행한 점이다. 리마 빈트반다르(44) 공주를 새 주미 대사에, 이전 주미 대사였던 칼리드 빈살만(31) 왕자를 국방부 차관에 임명했다. 국왕 부재중 왕권을 대리하는 빈살만 왕세자의 서명으로 이뤄진 인사였다.

외교 소식통은 "국왕이 해외 방문 등으로 부재중일 때는 왕세자가 국왕을 대리하는 것은 맞지만 '국왕 대리'의 서명을 이런 방식으로 행사한 일은 수십년간 없었다"고 말했다. 살만 국왕도 이집트 방문 기간 TV를 통해 이 사실을 알고 아연실색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칼리드 빈살만 왕자는 빈살만 왕세자와 같은 어머니를 둔 친형제다. 국방장관을 겸직하는 빈살만 왕세자가 동생을 2인자 자리에 앉혀 군(軍)과 무력을 완전히 장악하려 한다는 평가가 나왔다.

살만 국왕의 귀국 환영행사에 빈살만 왕세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서 부자간 갈등설을 더 부채질했다. 국왕이 외국 순방을 마치고 돌아오면 왕세자가 직접 맞으러 나가는 관례가 있었는데 불참한 것이다. 미 중앙정보국(CIA)에서 30년간 근무한 브루킹스연구소 브루스 리델 연구원은 "왕실 내에서 무언가 잘못됐다는, 작지만 중요한 신호"라고 했다.

이 사우디 국왕 부자의 관계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드라마와 같다. 살만 국왕은 2015년 80세의 나이로 즉위하자마자 가장 총애하는 아들 빈살만의 왕위 계승 작업에 돌입했다. 왕위 계승 서열 1순위였던 70대 이복동생과 50대 조카를 잇달아 왕세자에서 폐하는 '피바람' 끝에 2017년 빈살만을 왕세자로 올렸다. 이로써 사우디 왕실의 70년에 걸친 형제 세습이 끝나고 첫 부자 세습 체제를 갖췄다. 내내 치매 등 건강 이상설에 휩싸였던 살만 국왕은 곧바로 2선으로 물러앉아 TV나 보며 지낸다는 설이 파다했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카슈끄지 암살 배후로 빈살만이 지목돼 미국 등에서 '왕세자 폐위론'까지 나오자 살만이 다시 구원투수로 나섰다. 국정 전면에 나서 카슈끄지 사태를 수습하는 한편, 빈살만 왕세자의 지위를 국내외에 재확인시켰다.

그런데 왜 몇 개월 만에 이 부자가 불화하게 됐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미 브루킹스연구소에 따르면 2년간 국정 실권을 휘둘러온 왕세자가 갑자기 늘어난 아버지의 간섭에 불만을 품었다는 설, 여성 운전 허용 등 빈살만표 '개혁'에 불만을 품은 왕권 경쟁자들이나 이슬람교계의 보수 세력이 살만 국왕을 내세워 빈살만과 주도권 다툼을 벌인다는 설 등이 난무한다. 인사 문제뿐만 아니라 빈살만이 벌여놓은 예멘 내전 등 각종 대외 정책에서도 '반(反)빈살만파'의 저항이 거센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 부자 간 전면전의 가능성은 낮다. 영국 왕립국제문제연구소는 "빈살만 왕세자가 개혁을 이끌어 권위를 내세우려 하지만 정통성 측면에서 아버지의 지지에 의존하는 만큼 국왕과 크게 배치되는 방향으로 밀고 나갈 것으론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조선일보 A18면
3일의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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