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통상 전문가 김현종 앞세워 '美의 제재' 풀기 나선다

이민석 기자
입력 2019.03.06 03:01

靑, 안보실 대미협상 라인 교체… 北비핵화 공조보다 경협에 무게
미국은 北압박 기조… 남북교류 성급하게 추진땐 한미갈등 우려

문재인 대통령이 국가안보실 조직을 개편하기로 한 것은 베트남 하노이 '2차 미·북 정상회담'이 결렬된 상황에서 남북 교류와 경협(經協)을 주도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대미(對美) 대화 라인의 협상력을 높이겠다는 취지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비핵화와 제재를 위한 대미 공조라는 의미보다는 경협 강화를 위한 공조에 무게를 둔 것으로 보인다. 이는 '대북(對北) 최대 압박'과 '제재 강화'라는 트럼프 행정부의 기조와는 궤를 달리하는 것이다. 미·북 회담 결렬을 정부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데다 회담 이후에도 한미 간 정책 공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현 상황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 청와대가 신설하기로 한 안보실 2차장 산하 평화기획비서관실은 남북 경협의 전제 조건인 '대북 제재 완화 및 면제' 등을 미국과 논의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관계자는 4일 "주로 대미 소통 및 협상 업무를 상당 부분 전담하게 될 것"이라며 "우선적으론 금강산 관광·개성공단 재개, 남북 도로·철도 연결 추진을 위해 필요한 조치들을 검토할 것"이라고 했다. 전날 문 대통령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 회의에서 "(대북) 제재 틀 내에서 남북 관계 발전을 통해 북·미 대화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을 찾아달라"고 했었다.

2차 미·북 회담 당일인 지난달 28일 김현종 전 통상교섭본부장을 국가안보실 2차장에 임명한 것도 본격적인 남북 경협을 추진하기 위한 인사로 해석됐었다. 김 2차장은 자유무역협정(FTA) 문제 등을 주로 다뤄온 '통상 전문가'다.

청와대는 대북 경협을 활성화하고 남북 관계를 개선하면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촉진시킬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미 정부는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최대 압박'을 강조하면서 '비핵화 전 제재 완화는 없다'는 뜻을 명확히 하고 있다. 우리 정부가 미국에 대북 제재 완화를 요구할 경우 한미 간 갈등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적잖다.

금강산 관광 재개와 관련해 정부는 '관광 대금 현물 납부' 방식이나 제3국 계좌에 관광 대금을 예치한 뒤 비핵화 조치를 이행할 때마다 돈을 지급하는 '에스크로 계좌' 방식 등 '제재 우회로'를 검토 중이다. 하지만 북한이 이런 제한적 방안을 받아들일지 미지수다.

청와대가 평화군비통제비서관실을 폐지하고 군비(軍備) 업무를 안보전략비서관실로 이관하기로 한 것은 작년 남북 9·19 군사 합의로 인해 군사적 긴장이 대폭 완화됐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정부 관계자는 "DMZ 내 남북 GP(감시 소초) 시범 철수 등을 통해 상당 부분 군축이 이뤄졌다"고 했다. 하지만 북핵이 건재한 상황에서 군비 전담 부서가 없어지면서 대북 억제 기능이 약화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9·19 군사 합의 때도 '서해 북방한계선(NLL) 기준선 양보' 논란과 함께 '무인기 비행 금지 등 공중 정찰 능력 무력화' 우려가 제기됐었다.

청와대가 안보실 조직 개편과 함께 정의용 안보실장과 주요 비서관들을 얼마나 교체할지도 관심사다. 청와대와 여권 안팎에선 "이번 미·북 협상 결렬 이후 기존 안보팀으로는 안 되겠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김현종 2차장을 비롯해 새로운 '대미 라인'이 짜일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작년 유엔사의 남북 철도 공동 점검 불허 등 불협화음이 노출됐을 때도 정치권에선 '한미 간 긴밀한 소통이 부족해서 벌진 일'이라는 얘기가 나왔었다. 여기에 겹쳐 이번 미·북 회담 결렬로 '톱다운(Top down)' 외교의 한계가 드러나자 한미 간 실무 대화의 중요성이 더 부각되고 있다.

하지만 새 대미 라인이 들어서도 우리 정부 기조가 대북 교류 강화에 치우치면 한미 공조는 더 힘들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적잖다. 위성락 전 한반도 평화교섭본부장은 "정부가 미·북 어느 한 쪽에 치우치면 정확한 상황 판단이 계속 힘들어질 것"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A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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