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시장 지킴이' 925명… 2명이 3시간반 동안 전단 10장 떼기도

정우영 기자 이건창 기자 임규민 기자
입력 2019.02.11 03:00

- 기자가 단기 일자리 동행해보니
정부, 23억 들여 시장 271곳 배치
상인들 "내 세금으로 무슨 짓인가"

8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중부건어물시장. '전통시장 안전지킴이' 이모(62)씨와 오모(60)씨가 시장 순찰에 나섰다. 왼팔에 '질서 확립' 완장을, 어깨에는 '친절·청결·신뢰를 실천합시다'라는 띠를 둘렀다. 두 사람은 1~2월 두 달간 일주일에 이틀 시장으로 출근한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시장을 돌고 매달 85만4400원을 받는다.

전통시장 안전·환경지킴이는 정부가 만든 단기 일자리 사업 중 하나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작년 말부터 전통시장 271곳에 925명을 배치했다. 안전지킴이들은 두 달간 주 2일 하루 8시간을 근무한다. 정부 예산 23억1000만원이 들어간다. 업무는 시장 상인회가 정한다.

8일 새벽 서울 종로구 통인시장에서 전통시장 안전지킴이 김모(75)씨가 경광봉을 들고 가게 문이 닫힌 시장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다. 김씨는 전날 오후 10시부터 이날 오전 3시까지 시간마다 10분 정도 시장 골목 200m를 순찰하는 것 외에 별다른 업무가 없었다. /남강호 기자
본지는 지난 7~9일 서울 시내 전통시장 5곳의 안전지킴이들을 인터뷰했다. 그중 3곳에서는 함께 시장을 순찰했다. 지난 8일 오후 중부건어물시장 안전지킴이들과 시장 주변을 10바퀴 돌았다. 3시간 30분 동안 안전지킴이 두 명이 한 업무는 전봇대에 붙은 전단 10장을 떼는 일이었다.

애초 시장 상인회가 두 사람에게 준 임무는 가게 좌판이 황색선(소방도로 표시선)을 침범하는지 단속하는 일이다. 전에는 상인들이 자율 감시하거나 구청 직원이 단속했다. 순찰을 마칠 때쯤 한 상인이 안전지킴이들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띠 두르고 다니는 것 이외에 한 일이 뭐 있습니까? 내 세금 가지고 무슨 짓인지."

오씨는 1월 시장에 배치된 직후 상인회가 시킨 대로 좌판 단속을 하려 했다. 오씨는 "애당초 우리에게는 단속 권한도 없는 데다 상인들이 싫어해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그는 "아내와 식료품점을 운영하지만 경기가 나빠 뭐라도 해보려 안전지킴이를 지원했다"며 "제대로 된 일자리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이런 일을 당하니 자괴감이 든다"고 했다.

지난 7일 오후 10시 찾은 서울 종로구 통인시장에는 안전지킴이 김모(75)씨가 순찰 중이었다. 김씨의 공식 업무는 '화재·안전 장비 점검, 도난 등 사고 방지'다. 김씨는 "200m 시장 골목을 1시간마다 왕복하고 있다"며 "1월 중순쯤 취객이 생선 가게 좌판을 엎은 게 가장 큰 사건이었다"고 했다.

7일 오후 찾은 서울 용산구 용문전통시장에는 '전통시장 환경지킴이' 3명이 배치돼 있었다. 그중 송모(67)씨는 "시장을 돌아다니며 떨어진 전단이나 담배꽁초를 줍고 있다"고 했다. 나머지 둘은 대학생이었다. 기자가 찾았을 때 상인회 사무실에서 개인 노트북을 펴놓고 시장 행사 사진을 웹하드에 올리고 있었다. 서울 중랑구 동부시장에서 만난 환경지킴이 이모(47)씨도 "상인협동조합 사무실에서 방문객을 맞아 차(茶)를 타거나 문서 정리를 한다"고 했다.

안전지킴이들은 대개 퇴직자, 전직 자영업자, 대학생들이었다. 안전지킴이 이모씨는 서울 동대문에서 자영업을 하다가 장사가 안 돼 몇 년 전 가게를 닫았다. 순찰을 마치고 담배를 피우던 이씨는 "이걸(안전지킴이) 일자리라고 할 수 있겠느냐"며 "주 5일 일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일자리가 없다"고 했다.

안전지킴이를 관리하는 시장 상인회들은 "상인회 인건비라도 아낄 수 있다"고 했다. 동부시장 상인회 임호현 조합장은 "원래 협동조합 사무실에 3명이 근무하다 인건비 때문에 1명으로 줄인 상황이었다"며 "환경지킴이 근무가 끝나면 다시 직원을 채용할 예정"이라고 했다. 안전지킴이가 야간 순찰을 하는 시장에서는 "사람이 있으니 화재 걱정 덜 해도 좋다"고 하는 상인도 있었다.

하지만 안전지킴이를 지켜보는 상당수 상인은 "취업난도 이해는 되지만 저런 일자리는 세금 낭비"라고 했다. 중부건어물시장에서 건어물 상점을 운영하는 김한규(62)씨는 "일자리 창출이라지만 띠 두르고 돌아다니기만 하는 걸 일자리라고 볼 수 있느냐"며 "밤낮없이 장사해서 낸 세금을 허투루 뿌리는 것 같다"고 했다.

동부시장에서 족발집을 운영하는 장모(55)씨는 기자에게 '안전지킴이 근무시간과 월급이 어떻게 되느냐'고 되물었다. 답을 듣더니 "시장 상인들은 하루 14시간, 일주일에 100시간 일하는데 기가 찬다"며 "정부는 죽어라 일하는 소상공인부터 돌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서울 도봉구 창동시장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조모(55)씨도 "아무리 세금으로 주는 월급이지만 우리 같은 자영업자가 저 돈 벌려면 몇 시간을 일해야 하는지 아느냐"며 "정부가 일자리 통계에만 치중하는 것 같다"고 했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부의 단기 일자리 사업은 취업자 수 통계를 일시나마 늘려 보려는 궁여지책 아니겠느냐"며 "세금으로 급조한 일자리는 제대로 된 일자리가 아니다"라고 했다. 김종석 자유한국당 의원이 공개한 '맞춤형 일자리 창출 계획 및 실적' 자료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해 연말 1149억원을 들여 5만1830개의 단기 일자리를 만들었다.


조선일보 A1면
3일의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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