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하노이

임민혁 논설위원
입력 2019.02.11 03:16
화산(花山) 이씨의 시조 이용상(李龍祥)은 고려시대 베트남에서 귀화한 '리롱뜨엉'이란 인물이다. 베트남 리 왕조의 왕족이었던 그는 13세기 초 쿠데타를 피해 배를 타고 탈출했다가 황해도 화산에 닿았다고 한다. 그를 제외한 리씨 왕족은 새 왕조를 연 쩐(陳)씨에 의해 멸족당했다. 그 리 왕조가 1010년 베트남 최초의 장기 왕국을 건설하면서 수도로 정한 곳은 '승천하는 용'이라는 뜻의 '탕롱(昇龍)'이었다. 오늘날 1000년 고도(古都) 하노이의 시작이다.

▶하노이는 한자로 '河內'(강의 안쪽)다. 홍강(紅河) 삼각주에 위치한 강의 도시라는 의미다. 비옥한 데다 남중국해로 연결되는 교역의 요충지였다. 1831년 마지막 봉건 왕조인 응우옌 왕조가 탕롱을 하노이로 개칭했다. 하노이는 1946년부터 1954년까지 독립을 위한 1차 인도차이나 전쟁의 중심이었고, 1954년부터 베트남전이 끝날 때까지 북베트남의 수도였다가 1976년 통일 베트남의 수도가 됐다. 

▶베트남전 막바지인 1972년 12월 미군은 B-52폭격기를 동원해 하노이 일대에 대대적인 폭격을 가했다. 일명 '크리스마스 폭격'이다. 당시 4만t이 넘는 폭탄이 투하됐지만, 사상자는 1300여 명으로 폭격 규모에 비해 많지 않았다. 하노이 시민들이 땅굴(지하 방공호) 생활에 워낙 익숙했기 때문이다. 전쟁 당시 미 해군 폭격기 조종사였던 매케인 미 상원의원이 추락한 곳도 하노이의 쭉박호(湖)였다. 매케인은 이후 호아로 수용소에서 5년 반 동안 포로 생활을 했는데, 고문과 구타로 악명 높던 그곳을 미군들은 반어법으로 '하노이 힐튼'이라고 불렀다.

▶하노이는 이달 말 열릴 미·북 2차 정상회담 장소로 결정되면서 다시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됐다. 미국은 경호가 용이한 휴양 도시 다낭을 원했으나 북한이 김정은의 베트남 국빈 방문 가능성 등을 감안해 대사관이 있는 하노이를 고집했다고 한다. 김정은은 하노이가 할아버지 김일성이 1958년, 1964년에 호찌민 주석과 정상회담을 한 장소라는 점도 고려했을 것이다.

▶하노이는 오늘날 베트남을 있게 한 '도이머이' 개혁·개방 정책의 심장부인 데다, 미국과의 관계를 급전환시킨 정치적 상징성이 있는 곳이다. 반면에 프랑스·미국 등 서구와 싸운 사회주의 성지(聖地)이기도 하다. 김정은은 하노이의 '두 얼굴' 중 어떤 모습에 주목할까. 그에 따라 미·북 '하노이 선언'이 비핵화의 획기적 발걸음이 될지, '싱가포르 쇼'의 재탕이 될지가 결정될 것이다.



조선일보 A34면
말모이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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