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떡처럼 쫀득한 식감의 참치 초밥, 튀김 모음은 폭신하면서도 바삭해

정동현
입력 2019.02.01 14:51

[정동현의 pick] 일본 가정식 편

서울 을지로3가 지하상가 '타마고'

이 식당의 또 다른 대표 메뉴인 깊은 적색(赤色)의 참치 등살과 잔잔한 세공이 들어간 후토마키(일본식 김밥), 한 입 씹으면 푸근하게 이를 감싸 도는 튀김덮밥을 모아 놓으면 보는 사람 마음까지 가득 찬다./이신영 영상미디어기자
지하철에 올라타니 김밥처럼 검은 롱패딩을 둘둘 만 사람들이 가득 찼다. 그 '인간 김밥'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갔다. 간신히 허공에 매달린 손잡이를 잡았다. 몸에서는 전날 먹은 고기 냄새가 위장을 타고 올라왔다. 추우면 서러울까 이것저것 껴입은 몸은 더욱 무거웠다. 내릴 역이 다가오는데 지하철 안의 인구밀도는 그대로였다. "내려요!" 비명 아닌 고함을 치며 가까스로 열차를 빠져나와 회사로 향했다. 하늘은 또 낮고 흐렸다. 해장한다고 다시 찌개를 끓였다. 찾아오는 것은 비릿한 땀 내음과 허리춤에 추를 단 듯 묵직한 포만감이었다. 맵고 짜고 뜨거운 서울의 음식 때문인지 매일 빨리 움직이고 자주 통화하며 때로는 고함도 크게 지른다. 일하다 보면 어쩔 수 없지 싶다가도 아, 말 없는 바람처럼, 아래로 흐르기만 하는 물처럼, 노자·장자를 읊으며 살고 싶어진다. 번잡하지 않게 간단하게 그러나 알차게 살고 싶은 마음. 그런 마음이 들 때면 야무지고 똑 떨어지는 일본 가정식이 생각난다. 같은 생각을 하는 이가 많아선지 근래 일본 가정식을 내는 집이 꽤 많아졌다.

서울 신촌 '히노키공방'은 그런 집 중 꽤 긴 줄을 세우는 곳이다. 지하철 2호선 신촌역에서 나와 스마트폰 지도를 켜놓고 오피스텔촌 골목을 누벼야 한다. 골목 끝, 건물에 대롱대롱 매달린 하얀 간판이 아스라이 보이면 이미 찬 바람을 한참 맞은 다음이리라. 하얀 수건 질끈 동여맨 주인장 홀로 주방을 보는 이 식당의 메뉴는 짧지 않다. 볼이 움푹 팬 주인장은 손님이 메뉴판 읽는 소리만 듣고도 먼저 몸을 움직인다. 사내는 날랜 몸놀림에 빈틈없이 짠 동선을 작두 타듯 넘나들지만 그래도 여유 있는 마음으로 음식을 기다리는 편이 낫다. 돈가스를 소스에 끓여 올린 '가쓰나베'(냄비돈가스)를 먹으면 달짝지근한 소스에 몸이 풀리고 두툼한 고기에 마음을 채운다. 하얀 쌀알이 투명하게 빛나는 밥 한 공기는 그 자체로 모자람이 없다. 단도처럼 곧고 단단한 바다장어를 통째로 튀겨 밥 위에 올린 '아나고텐동(장어덮밥)'은 우람한 형체를 보기만 해도 맛이 느껴진다. 그 맛은 혀를 어르고 달래지 않는다. 가득 찬 흰 살 단백질로 빈 몸을 메우고, 뜨거운 기름이 만든 경쾌한 파열음으로 공기를 가로지르는 물리적인 맛이다.

서울 을지로 지하상가 ‘타마고’의 상징과도 같은 정갈하고 알찬 한상 차림./.이신영 영상미디어기자
일본 가정식을 제대로 맛보려면 꼭 가야 할 집은 지하에 있다. 같은 2호선상 을지로입구역에서 내리자. 을지로3가까지 길게 놓인 지하상가, 군데군데 가게가 빈 그곳에 '타마고'라고 작게 간판을 건 집이 있다. 일부러 찾으려고 해도 지나치기 쉬울 듯한데 알음알음 찾는 이가 꼬리를 문다. 직사각형 실내는 작고 주방은 좁다. 여기 주인장은 방랑 무사처럼 머리를 뒤로 맸다. 마르고 키가 크며 손이 빠른 것은 신촌 그 집과 닮은꼴이다. 순한 눈으로 재료를 바라보고 허리를 숙여 음식을 만든다. 단칸방 살림 같은 주방에서 내는 음식은 '빠르고 간단한' 범주를 넘어선다. 오이채, 새우, 연어, 달걀이 들어간 '후토마키(큰 김밥)'와 달걀과 김으로 밥을 감싼 '타마고즈시(계란김밥)'는 적잖은 세공이 들어가 있다. 딸려 나오는 국도 돼지고기를 일본 된장에 뭉근히 끓인 돈지루(돼지고기 된장국)다. 초밥 위에 빨간 참치 등살을 올린 '마구로모리즈시'는 참치 살에 신선한 산미와 떡처럼 쫀득한 식감이 살아 있다. 새우, 한치, 오크라 등을 튀겨낸 '텐모리아와세'(튀김 모음)는 폭신하고 바삭한 식감을 동시에 살린 기술도, 좋은 재료를 쓰고자 하는 주인장의 마음도 한데 묻어난다. 티 없이 맑은 음식을 앞에 두고 사람들은 말소리를 줄이고 조용히 앉아 젓가락질을 한다. 포장을 기다리는 여자는 하얀 깃털처럼 소리 없이 작은 의자에 앉아 있다. 아삭 하고 튀김 부서지는 소리, 졸졸 국물이 흘러가는 소리가 들린다. 발 밑으로 지하철이 지나간다. 덜컹덜컹, 잔잔히 몸이 울린다. 이 정도면 괜찮다. 이 정도면, 그래 행복하다.

조선일보 B6면
3일의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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