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 파리 런웨이를 걷다

최보윤 기자
입력 2019.01.22 03:00

루이비통 남성 패션쇼에 등장… 10개국 국기와 함께 옷으로 재탄생
"인종·국가 넘어선 통합 상징"

선명한 태극기였다. 모델이 입은 셔츠 가슴팍에도, 어깨부터 떨어지는 소매에도, 등 한복판에도, 커다란 가방 중앙에도 태극기가 큼지막이 자태를 드리웠다. 지난 17일(현지 시각) 프랑스 파리 튀일리 정원에서 열린 루이비통 남성 2019 가을겨울 패션쇼 무대. 미국 성조기를 필두로 태극기에 이어 프랑스·독일·영국·이탈리아·네덜란드·스위스·가나 등 10개 나라의 국기가 서로 어우러져 트렌치코트, 재킷, 셔츠, 가방으로 재탄생했다. 지난해부터 루이비통 남성을 이끄는 패션 디자이너 버질 아블로가 선보인 것으로, 그의 디자인 스튜디오에 근무하는 팀원의 국적(國籍)에서 따왔다. 국가 간·민족 간 분쟁이 여전하지만 런웨이에서만큼은 서로 한 몸처럼, 분란과 증오에서 벗어난 정서적 해방을 꿈꾸게 했다.

◇패션, 통합의 시대를 이야기하다

태극기가 모델 의상 소매 한쪽을 장식한 2019 가을겨울 루이비통 남성복 패션쇼. 여러 국기를 이은 패션으로 분란의 시대 사회적 통합을 꿈꾸는 디자이너 버질 아블로의 의지가 담겼다. 아래 사진은 한결 넉넉해진 스타일의 디올 2019 가을겨울 남성복 재킷. /루이비통·EPA연합뉴스
지난 5일 런던을 시작으로 밀라노에 이어 파리에서 열린 '2019 가을겨울 남성 패션쇼' 무대를 수놓은 수백 개 브랜드 중 특히 화제가 된 건 루이비통의 'Flagification'(국기+통합)' 퍼레이드였다. 65개 의상 중 10개 정도였지만 화려한 색감에 한 치 어긋남 없는 균형감의 패치워크(누빔)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루이비통 창립 164년 만에 처음으로 흑인 출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된 버질 아블로는 자신의 방식으로 인종과 국가를 넘어선 통합을 선보였다. 아블로는 어린 시절 우상이었던 팝 스타 마이클 잭슨이 지난 1978년 출연했던 영화 '더 위즈'(오즈의 마법사)에서 영감을 받았다. 루이비통 관계자는 "다양한 사회에 대한 근원적인 이해와 통합을 상징하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16일 파리에서 열린 발렌티노 남성 쇼에서는 폭력을 넘어선 통합을 표현했다. 일본 디자이너 브랜드 언더커버와 협업한 것으로,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 '시계태엽 오렌지'에서 영감 받은 프린트를 코트 등에 거대하게 새겨넣었다. 베토벤 얼굴이 그려진 초상화에 거대한 UFO가 파고 들어가는 모습이다. 천상의 음악으로 꼽히지만, 극중 폭력에 노출된 아이들에게 또 다른 고통을 주입하는 매개체였던 베토벤 작품을 테마로 폭력에 대한 극복을 그리고자 했다.

◇한결 느슨해져 돌아온…슈트의 귀환

이번 시즌을 뜨겁게 달군 주제 중 하나는 슈트의 변용이다. 그동안 남성복에서 길거리 패션이 강세를 보이면서 솜씨 좋은 테일러링(재단)이 설 자리가 없는 듯 느껴졌지만, 최근 들어 슈트 스타일이 다시 패션쇼 무대를 넘실대고 있다. 크리스 반 아셰가 이끄는 벨루티와 킴 존스의 디올 옴므 모두 스트리트 감수성이 뛰어난 디자이너로 꼽히지만, 이번 시즌에선 브랜드 고유의 재단 감각을 매섭게 보였다. 단, 숨 막히듯 똑 떨어지는 스타일보다는 정석에서 일부 벗어나 패치워크를 이용하거나 긴 스카프를 목부터 발끝까지 드리우는 등 변화를 줬다. 톰 브라운은 슈트와 셔츠를 해체한 뒤 다시 엮어 멋스러움을 덧댔다. 패션계는 "최근 20~30대 젊은 층이 패션계 큰손으로 떠오르면서 아버지 스타일 슈트보다는 자유로우면서도 파격적인 슈트를 선호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A18면
3일의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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