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실의 뉴스 읽기] 특감반, 개인폰 개수까지 알고 들이닥쳐… "협조 안하면 검찰간다 협박"

임민혁 논설위원
입력 2019.01.10 03:12 수정 2019.01.10 04:57

청와대, 외교부 어떻게 털었나

임민혁 논설위원

지난해 말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과 강경화 외교장관이 기사 유출자 색출 문제를 놓고 언쟁을 벌였다. 외교 소식통들에 따르면 '대통령 전용기가 평양을 다녀왔기 때문에 미국에 가려면 미국 정부의 제재 면제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언론 보도가 나간 뒤 정 실장이 강 장관에게 "외교부에서 정보가 흘러 나간 것 같으니 유출자를 찾아내라"고 했다. 하지만 강 장관은 "청와대에서 다 컨트롤하고 외교부에 정보 공유도 안 하는데 어떻게 우리 쪽에서 유출되나. 청와대 쪽에서 샌 거 아니냐"고 맞받았다고 한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외교부에서는 "오랜만에 장관이 할 말을 했다"는 얘기가 나왔다. 그동안 민감한 보도가 나갈 때마다 청와대가 보안 조사를 명목으로 외교부를 뒤지며 책임을 떠넘겼다는 불만이 외교부 내에 쌓여 있었다는 것이다.

외교부 조사만 10차례 이상

외교부에 대한 청와대의 보안 조사는 현 정권 출범 후 10차례 이상 이뤄졌다. 주로 언론을 통해 나온 미국·중국 관련 보도가 계기가 됐다. 그 대표적 사례가 최근 전 청와대 특감반원인 김태우 수사관의 폭로로 알려진 것이다.

2017년 말 정부가 중국과 물밑 협상을 통해 "사드 추가 배치를 검토하지 않는다"는 내용 등이 포함된 '사드 3불(不) 원칙'을 정했다는 보도가 나가자 청와대는 외교부에 대한 대대적 보안 조사를 지시했다. "미국을 불편하게 할 소지가 있는 '3불 원칙'을 막기 위해 외교부 미국 라인 등이 언론 플레이를 한다"고 의심한 것이다.

당시 상황에 밝은 관계자들이 전한 내용에 따르면, 특감반원들은 외교부 장관 보좌관실과 북미국 등 간부 10명의 업무용 휴대전화는 물론 개인 휴대전화까지 제출받아 조사했다. 개인 명의로 개통한 휴대전화가 몇 대인지까지 정확하게 알고 왔다고 한다. 사전에 감찰 대상의 개인 정보를 뒤지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내용이다.

청와대 측은 "휴대전화 임의 제출 동의서를 받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특감반원들은 당시 감찰 대상 외교관들에게 '동의서에 서명하지 않으면 검찰 조사로 갈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얘기했다. 한 외교관은 "말은 부드럽게 했지만 사실상 협박이나 다름없었다. 어떤 공무원이 그 상황에서 동의서 서명을 거부할 수 있겠냐"고 했다.

靑, 민감한 보도 나올 때마다 외교부 뒤졌다 - 외교·안보와 관련해 민감한 보도가 나올 때마다 청와대는 외교부를 의심하며 보안 조사를 벌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청와대 쪽에서 ‘리크’(정보 유출)가 이뤄진 경우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말에는 정의용(오른쪽) 청와대 안보실장과 강경화 외교장관이 언론 유출 책임 소재를 놓고 언쟁을 벌이기도 했다. /연합뉴스
이전 정부에서도 언론 유출 문제로 공무원의 휴대전화를 압수한 사례는 많다. 보통 반나절 정도 조사한 뒤 돌려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2017년 말 외교부 감찰 때 특감반원들은 휴대전화를 3~4일간 압수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당시 모 간부가 사정이 있어 휴대전화 연락이 되지 않으니 급한 일이 있으면 사무실 전화로 하라고 했는데, 나중에 보니 전화를 압수당한 상태였다"고 했다. 당시 부내에서는 "확실한 범죄 혐의가 있는 것도 아닌데 요즘 같은 세상에 사나흘씩 휴대전화를 빼앗는 건 인권침해나 다름없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당시 특감반은 휴대전화 '포렌식 조사'로 과거 흔적을 샅샅이 뒤졌다. 포렌식은 삭제된 메시지, 인터넷 기록, 사진 등을 모두 복구할 수 있는 방법으로, 주로 범죄 수사 때 사용된다. 당초 특감반이 받은 지침은 '눈으로 휴대전화를 확인한다'였다. 처음부터 포렌식 조사까지 염두에 두지는 않았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언론 유출과 관련해 문제 될 부분을 찾아내지 못하자 포렌식 기법까지 동원한 것이다.

'스모킹 건' 없는데도 사생활 문제 삼아

외교부 정보 언론 유출과 관련해 청와대 특감반이 작성한 감찰 대상자 목록. 이름, 직위 등이 적혀 있다.

포렌식을 통해 과거 흔적을 캐면서 당초 목적이었던 언론 유출 건과 다른 방향으로 감찰이 진행됐다. 일종의 별건 수사로 '사생활' 문제가 불거졌다.

한 외교부 간부는 대화 내용에서 부하 여직원과 주고받은 메시지 때문에 '특별한 관계가 아니냐'는 혐의를 받고 대면(對面) 조사까지 받았다. 특감반은 이런 내용을 '공직자의 품위 문제'로 외교부 수뇌부에 통보했다. 하지만 당시 상황에 밝은 관계자에 따르면 메시지 내용에 '부적절한 행위'가 있었다고 단정할 만한 '스모킹 건'은 없었다고 한다. 주로 부하 직원의 건강 문제를 걱정하는 등의 내용이었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일 잘하는 부하 직원을 각별히 아끼는 차원으로 볼 수는 있지만, 객관적으로 그 이상의 관계라고 할 만한 확실한 증거는 없었던 것으로 안다"고 했다. 이 간부는 결국 별다른 징계는 받지 않았지만 관련 내용이 소문나면서 곤욕을 치렀다.

외교부 관계자들은 조사 방법도 문제였지만 조사 대상 선정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당시 특감반이 작성한 조사 대상 리스트에는 미국·중국 문제를 다루는 핵심 라인과 이 라인에서 올라오는 중요 보고, 전문을 열람할 수 있는 장관 보좌관실 관계자들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장관 보좌관실에서도 몇몇 인사는 빠져있는데, 어떤 기준에 따른 것인지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었다고 한다. 한 소식통은 "애초부터 청와대에서 손보려고 찍어놓은 대상자들이 있다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보안문제 터질 때마다… '어공' 놔두고 '늘공' 폰만 쓸어갔다
민정실, 작년 靑 의전실 조사 때 임종석 측근 김종천 폰은 손 안대

청와대의 보안 조사와 관련해 외교부 인사들은 "문제가 터질 때마다 '늘공'(늘 공무원, 직업 관료)만 표적이 된다"고 불만을 표출한다. '어공'(어쩌다 공무원, 정치권·학계 출신)이 뒤짐당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지난해 청와대 의전실 쪽에서 보안 문제가 발생해 민정수석실이 의전실에 파견된 외교부 직원들의 휴대전화를 수거해갔다. 하지만 누구도 김종천 당시 의전비서관에게는 휴대전화 제출을 요구하지 않았다고 한다. 김 비서관은 임종석 당시 비서실장의 보좌관 출신으로, '어공' 중에서도 실세로 꼽혔다. 정부 관계자는 "외교부에서는 차관보의 휴대전화도 거리낌없이 가져가지만, '어공'은 손대지 못하는 거 아니냐"고 했다.

지난해 11월 '한·미 동맹 균열' 내용이 담긴 문건이 보도됐을 때도 비슷했다. 당시 문건은 남북 공동선언 이행추진위 분과 회의에 배포된 자료로 알려졌다. 언론에 이 문건이 유출되자 청와대는 외교부를 '진원지'로 지목했다. 하지만 1차 조사에서 '어공' 쪽에서 흘러 나간 것으로 파악돼 보안 조사는 흐지부지됐다고 한다.

이런 보안 조사가 수시로 벌어지면서 외교부는 언론 접촉 때 극도로 몸조심하고 있다. 비공식적으로 '과장급 이하는 가급적 기자 접촉을 하지 말라'는 지침이 내렸다. 외교부 당국자는 "보안에 한 번 더 신경을 쓰라는 권고 사항이지 취재를 막는 건 아니다"라고 했다.

당국자들이 기자들과 만날 때는 부하 직원을 데리고 나오는 경우도 많아졌다. 혹시 나중에 보도 내용의 발설자로 오해받을 경우를 대비해 '증인'을 확보하는 차원이다.


조선일보 A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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